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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벽화꽃·이야기꽃… '꽃마을'

[은밀한 서울 투어] 홍제동 개미마을

입력 2014-09-25 17:39 | 신문게재 2014-09-2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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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것 같지 않은 하늘이다. 하지만 분명 서울 하늘이다. 3호선 홍제역 1번 출구로 나와 7번 마을버스를 타고 도착하면 하늘은 높고 바람은 솔솔 부는 가을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정겨운 풍경이 펼쳐진다. 

 

1970년대 재개발·재건축 바람으로 내쫓긴 이들이 천막을 치고 살던 곳, '인디언촌'이라 불리던 이 마을은 1980년 2월 개명한 '개미마을'이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3동 인왕산 끝자락에 위치한 마을로 아침 일찍 일어나 열심히 일하는 이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이곳을 걸을 때 보폭은 좁게!”


그도 그럴 것이 가파른 경사와 눈을 사로잡는 풍경이 자꾸만 발목을 잡는다. 첫눈을 사로잡는 건 벽화다. 꽃들이 흐드러지는가 하면 하늘로 날아오르는 기차를 연상시키는 집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을 짓는 강아지와 돼지도 있다. 

 

 

홍제동 개미마을5
개미마을에는 빛이 바랜 혹은 선명한 벽화가 공존한다.

 

 

재개발·재건축 농성으로 전쟁터 같던 마을이 정화를 꿈꾸던 즈음이다. 2009년 금호건설이 5개 대학 미술학도들을 동원해 조성한 그림들은 모진 풍파에 빛이 바래 회색 벽이 드러났다. 반면 2012년 다시 작업한 그림들은 선명하게 빛을 뿜어내고 있으니 개미마을 벽화의 특징은 신구공존이다.  

 

 

홍제동 개미마을
마을 입구의 개미마을 약도

 

 

3년 전까지 갈대숲이었던 자리는 인왕중학교가 들어섰고 서울시에서 분양한 거리 곳곳의 텃밭에서는 고추가 영글고 있다. 나무 궤짝에는 오밀조밀 들꽃들이 피었고 땅은 온통 푸른빛이 선명하다. 집집마다 빨래가 마르고 담벼락을 타고 오른 넝쿨에는 설익은 박과 하얀 박꽃이 피었다.  

 

 

홍제동 개미마을44
아름드리나무 아래 평상에 앉은 할머니는 평온해 보인다.

 

 

TV소리와 빨래 걷으라는 고함, 아이울음소리 등 벽화를 따라 계단을 오르니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곳에서 만난 이들의 면면도 흥미롭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하고 5년째 사진작가로 살고 있는 일산의 이무련(67)씨는 “재개발 지역 중 개미마을이 제일 예쁘다”고 찬사를 보낸다.

3대째 개미마을에 살고 있다는 ‘쌀집아들’ 권오철(60)씨는 “비가 오면 산사태가 나지 않을까 걱정하는데 여기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곳에서 지내 물길을 안다”며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물길을 알고 예방한다”고 자랑이다.  

 

 

홍제동 개미마을11
삼대째 개미마을 주민 권오철(60)씨가 추천하는 뷰포인트. 감나무를 사이에 두고 종이비행기가 날고 해바라기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가 추천하는 뷰포인트는 ‘버드나무슈퍼’ 골목에 위치한 감나무 앞이다. 감나무를 사이에 두고 종이비행기가 나르고 해바라기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노부부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네슈퍼, ‘보물’로 불리는 7번 마을버스, 자리를 깔고 누워만 있어도 정화가 되는 메타세콰이어 숲, 평화롭게 모여 앉은 어르신들의 쉼터와 약수터, 지금은 좀체 볼 수 없는 맷돌, 오디오 등도 만날 수 있다. 

 

마침내 도착한 마을버스 종점에는 아름드리나무가 서있다.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다는 이 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어딘지 모를 곳을 응시하던 할머니가 손짓한다. 

 

“이 나무 너무 예쁘지 않아? 그냥 심은 요만한 나무가 세 갈래로 갈라져 높이도 솟았지!”

벌써 몇 번째 같은 말이다. 당신의 이름도 나이도, 이곳에 얼마나 살았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할머니는 평온해 보인다. 아웅다웅 싸우던 길고양이 두 마리 중 한 놈이 할머니 앞을 지나 나무 위로 쏜살같이 오른다. 

 

“싸우지들 말고 살지! 왜 자꾸 싸워 싸~~~?”

 

길고양이에게 하는 말인지 치열하게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하는 말인지, 정신도 온전치 않은 어르신의 말이 자꾸만 뒷목을 잡아 끈다.


글·사진=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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