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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고통과 개인 삶의 변화가 극렬하게 교차하는 연극 ‘비포 애프터’

입력 2015-10-25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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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비포 애프터_공연사진_2
극은 시작부터 관객들에게 마주보고 손을 잡으라 제안한다.(사진제공=두산아트센터)

 

실화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 어딘가에 있었을 법한 일들이다. 때로는 발 딛고 서 있는 현실이 실재하는 세상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 때로는 현재 겪고 있는 일이 언젠가 있었던 일처럼 데자뷔가 되기도 한다.

연극의 제목은 ‘비포 애프터’, 특정한 시점 혹은 사건이 반드시 필요한 부사어의 조합이다. 두산아트센터 창작자육성 프로그램의 첫 번째 아티스트로 선정된 이경성 연출의 신작이다. ‘당신의 소파를 옮겨드립니다’, ‘나의 시대에 고함’, ‘몇 가지 방식의 대화들’ 등 동시대 이슈를 주로 연극 무대로 옮기는 이경성 연출이 말하는 ‘비포 애프터’의 출발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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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아트센터 창작자육성 프로그램의 첫 번째 아티스트로 선정된 이경성 연출의 신작 ‘비포 애프터’.(사진제공=두산아트센터)

자신과 세월호의 ‘접점’을 찾는 데 들인 시간과 고민만도 3개월, 정치적·사회적 이슈의 껍질을 벗기고 드러낸 속살은 누군가의 ‘극심한 아픔’이었다. 그들은 자식을, 선생님을, 가족을 잃었고 상상도 못할 아픔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아픔 앞에서 세월호 참사의 사회적 의미와 인문학적 해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게 오롯이 누군가의 아픔에 집중하면서 생각은 발전하고 극은 윤곽을 드러냈다.

 

‘그날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우리네 삶을 변화시킨 사건은 무엇일까?’…. 다양한 물음의 결과는 실화도, 나의 현실도 아니지만 그저 상상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슬픔이다.

연극은 시작부터 관객들에게 이상한, 아니 낯선 제안을 한다. 비상시에 하우스어셔(공연장 안내)의 안내에 따라 대피하려면 바로 옆 사람을 알아야 한다며 5초간 안면인식의 시간을 가지자거나 손을 잡으라 제안한다.

 

관객들이 짧지만 멋쩍고 쑥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배우들은 무대 양쪽에 설치된 카메라에 얼굴과 귀를 대고 손을 잡는다. 그 과정은 고스란히 무대 벽면에 붙은 모니터로 보여진다.

그리고 극은 각자의 삶을 변화시켰고 나라 전체를 뒤흔든 사건의 전후를 끊임없이 교차시킨다. 1999년 5월 9일 장성익은 제대로 운동권도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눈 한쪽이 실명될 정도로 공권력의 폭력을 경험했다.

 

그날 맞아서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게 된 장성익은 “세상을 왼쪽 눈으로 보게 됐지만 좌파는 아니다”라고 익살이다. 김다흰은 2014년 4월 16일 히말라야 트래킹 중이었다. 소식은 들었지만 트래킹을 계속했고 귀국해 공연 무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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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28일 ‘두시탈출 컬투쇼’ 오프닝은 고장나 같은 구간을 반복하듯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을 수차례 되뇐다. 이는 실제처럼 보이지만 사실 연출과 배우가 라디오 대본을 재구성한 것이다. 그리고 7월 27일 1위 곡은 씨스타의 ‘터치 마이 바디’였다.(사진제공=두산아트센터)

 

2014년 4월 28일 ‘두시탈출 컬투쇼’ 오프닝은 고장나 같은 구간을 반복하듯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을 수차례 되뇐다. 이는 실제처럼 보이지만 사실 연출과 배우가 라디오 대본을 재구성한 것이다. 그리고 7월 27일 1위 곡은 씨스타의 ‘터치 마이 바디’였다.

서서히 죽어가는 아버지를 지켜봐야했던 성수연, 2006년 12월 26일 자살한 친구의 죽음에 부채감을 가졌던 채군은 주변인의 죽음 전후가 크게 달라졌다. 채군은 친구의 죽음에 잠식당하고 죽음을 가까이서 느끼면서 통기타 선율에 맞춘 랩곡 ‘끄덕했지’를 만들었다. 그 곡을 부를 때면 곡을 지을 때의 심정과 다짐이 완벽에 가깝게 재현되곤 한다 고백한다.

2014년 5월 10일 대통령 대국민 담화, 7월 하반기 경제 뉴스, 윤일병 사건 보도 등 최근 사회를 휩쓸었던 사건들이 퍼즐처럼 던져진다.

눈에 띄는 인물은 국가를 연기하는 장수진이다. 씨스타의 ‘터치 마이 바디’에 맞춰 섹시 댄스를 추던 그녀는 왕관을 쓰고 ‘국가’를 연기하며 눈물 흘리고 어리둥절해하며 침묵한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배안과 성수연의 아버지가 죽어가는 과정의 재현으로 죽음과 아픔, 분노는 한껏 관객 앞으로 다가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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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에 쓰인 파도소리는 제주항의 것이다. 이경성 연출이 ‘비효율적 수행’이라 표현하는 이 소리는 “마음의 문제는 언제나 비효율적이고 더 손해 보는 선택일 수 있음을 우리 안에서 연습하기 위함”이다.(사진제공=두산아트센터)

 

이경성 연출과 작곡가는 연극 마지막에 쓰일 파도소리 녹음을 위해 제주로 향했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팽목항과 제주항을 두고 고심하다 제주의 파도소리를 택했다.

세월호의 목적지, 결국 수많은 이들이 가지 못했지만 가고자 했던 곳이었다. 그 염원을 담아내려 했던 이 결정을 두고 이경성 연출은 ‘비효율적 수행’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마음의 문제는 언제나 비효율적이고 더 손해 보는 선택일 수 있음을 우리 안에서 연습하기 위함”이라고 연출의 변에 적었다.

개인의 삶과 사회의 변화, 타인의 고통을 공유하는 ‘비포애프터’는 23일부터 11월 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된다(문의 02-708-5001).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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