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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구의 돈 되는 이야기] 몰이냐? 골목이냐?

입력 2016-04-19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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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지하철 노팅힐게이트역을 나와 북쪽출구로 나오면 ‘포토벨로’란 골목을 만난다. 이 골목길 양쪽에 있는 가게에선 별별 잡동사니를 다 판다. 공식적으로 이 골목의 가게들은 금, 토, 일요일 사흘만 연다. 하지만 월요일만 아니면, 평일에도 이 골목에 가면 꽤 괜찮은 물건들을 살 수 있다.

낡은 가죽가방, 지갑, 케케묵은 헌책, 과일, 바로크풍 액세서리 등 잡화류는 평일에 가면 오히려 더 차근히 고를 수 있다. 이른바 ‘주말영업’만 하는 골목이지만, 평일에도 쇼핑객들이 여기를 찾아오는 이유는 이곳이 쇼핑과 함께 런던의 다정한 일상을 느낄 수 있기 때문.

실제, 런던의 빛나는 고급주택가를 구경하려면 포토벨로의 바로 동쪽에 있는 노팅힐을 걷는 게 훨씬 낫다. 하지만 노팅힐을 걷는 쇼핑객이나 관광객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이곳은 골목이 아니라 그냥 도로이기 때문이다.

포토벨로가 ‘골목길’이 아니었다면 전세계의 쇼핑객들이 이렇게 많이 몰려들까?

세계 어디에서든 골목길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인다. 젊은이들은 골목을 좋아한다는 얘기다. 파리의 마레지구에 있는 로지에르골목을 한번 가보라. 주말이라면 지나가는 사람과 어깨를 부딪치기 일쑤다. 옛날에 이곳은 유태인거리여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지만, 상가로 조성되면서 지금은 팔라페 하나를 사먹으려 해도 길게 줄을 서야 한다. 헌옷을 파는 좁은 가게에 들어갔다가 인파에 밀려들어오는 바람에 정말 땀을 흘렸다.

도쿄 시부야에 있는 좁은 골목 ‘스페인자카’도 선글래스나 문구류 팬시제품 등을 파는 허름한 골목이지만, 매일저녁 발 디딜 틈 없이 고객들이 몰려든다. 도쿄에서 골목개발로 가장 성공한 곳은 다이칸야마. 이곳이 처음부터 쇼핑골목은 아니었다. 자치단체와 지역사회가 이 도쿄외곽의 조용한 주택가에 독특한 패션가게들을 유치하자 주말이면 데이트를 즐기려는 젊은이들이 찾아오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주말이면 점심 사먹기 힘들 정도다.

젊은이들은 왜 골목길을 좋아할까? 젊은이들이 막힌 공간보다는 골목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골목길을 걷다보면 여러 가지 숨겨진 문화와 예술적 디스플레이, 그리고 남다른 패션을 연출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서울 홍대앞 골목길이 성공한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 덕분일 것이다.

최근 들어 한국 중소기업청이 전통시장안에 청년몰을 만들도록 지원해줬는데, 그 성과가 예상만큼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성과가 없는 건 아니다.

울산중앙시장의 톡톡스트리트를 비롯, 부산 서동미로시장, 서울 열정도 야시장, 역곡 상상시장 등 여러 곳이 성공을 거두었다. 이에 비해 서울시내에 있는 몇몇 청년몰은 아직 고객들이 몰려들지 않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청년고객을 사로잡는 소상공인정책에 ‘몰’에 중점을 둬야 할지, 아니면 ‘골목’에 중점을 더 둬야 할지 선택해야 할 시점에 온 듯하다. 물론 인사동의 쌈지길은 ‘몰’인데도 젊은이들이 많이 몰린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쌈지길은 분명히 ‘몰’이지만 사각형으로 빙빙 돌면서 쇼핑할 수 있는 ‘골목길’의 특성을 가졌다.

도쿄에 있는 ‘오모테산도 힐즈’도 이와 마찬가지다. 쌈지길보다 먼저 생긴 이 ‘몰’도 사각형으로 빙빙 돌면서 구경할 수 있는 골목길 형태다. 사실 중기청은 이미 청년몰 지원보다 더 많은 예산을 ‘골목시장 조성’에 투입하고 있다.

그렇다면 청년몰과 골목시장 조성을 융합하는 정책이 나와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그래야 홍대입구, 포토벨로, 다이칸야마 같은 청년쇼핑골목들이 더 성공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이치구 브릿지경제연구소장 cetuus@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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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구 브릿지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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