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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조선시대 동성애, 문종의 두 번째 부인이 레즈비언이었다니?

입력 2016-04-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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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일찌감치 문종을 후계자로 점찍었습니다. 성품이 올곧고 학문의 깊이도 뛰어난 덕분이죠. 나무랄 것 없어 보였던 문종에게도 아픔이 있었습니다. 3명의 부인을 모두 잃은 거죠. 이유도 가지각색입니다.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한데요. 문종의 삶을 한 번 들여다볼까요?

문종의 첫 번째 부인은 휘빈 김씨입니다. 혼례를 치렀지만 김씨는 문종의 사랑을 받지 못했죠. 하루하루 말라가던 김씨는 남편을 사랑을 얻을 미신을 듣게 됩니다. 동궁이 좋아하는 궁녀의 신발 뒷굽을 잘라 불에 태워 나온 재를 문종이 마실 차에 몰래 타는 거였죠.

이에 그치지 않고 김씨는 압승술도 사용했는데요. 두 마리 뱀이 교접을 할 때 정기를 수건으로 닦아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겁니다. 이 사실이 세종에게 발각되면서 ‘요망스럽다’는 이유로 2년 만에 폐빈이 됐습니다.

두 번째 부인이 후세에 길이 오점으로 남은 순빈 봉씨입니다. 최대 사건은 ‘소쌍 스캔들’이죠. 궁궐 여종인 소쌍을 봉씨가 탐한 건데요. 세자빈이 ‘여자’를 말입니다.

소쌍에게 마음을 두고 여러 차례 잠자리를 갖기도 하고 잠시라도 소쌍이 보이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죠. 견디지 못한 소쌍은 지인들에게 하소연하기 시작했습니다. “빈께서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무섭다”고 말이죠.

이 소문을 들은 세종은 소쌍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소쌍은 “빈께서 저를 불러 옷을 벗긴 뒤 강제로 눕게 하고 남자처럼 성희롱을 했다”고 답했습니다. 동성애 사건으로 조정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세자빈이 된지 7년 만에 봉씨는 폐빈이 됐습니다.

문종의 세 번째 부인은 단종을 출산한 현덕왕후입니다. 단종을 출산하고 3일 만에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옛날에도 동성애스캔들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삼국사기 진흥왕 37년 기록에 의하면 “외양이 아름다운 남자를 뽑아 곱게 단장해 ‘화랑’이라고 받들게 하니 이를 따르는 무리가 구름같이 모여 들었다”고 적혀있습니다. 이를 동성애로 해석하는 학자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특히 서기 6세기에 화랑 사다함이 죽자 그의 벗인 무관랑도 7일 만에 따라 죽었는데요. 이를 우정으로만 보긴 정도가 과하다는 주장도 많습니다. 고려시대때 공민왕이 여장을 하고 미소년들과 잠자리를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문종은 3명의 부인을 모두 잃었습니다. 문종은 부인들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고, 잠자리도 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그 대신 소헌왕후(문종의 어머니)의 주변에서 궁녀들과 자주 놀았다고 하죠. 독수공방으로 지내는 날이 길어지니 그녀들 스스로 살길을 찾은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오히려 측은지심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죠.

문종과 여인들, 왕권 강화를 도모코자 이뤄진 정략결혼의 폐해로만 치부해도 되는 걸까요? 역사 속에 남은 한국의 오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박민지 기자 pmj@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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