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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영화 '춘몽'의 배경지, 철길을 건너 펼쳐지는 다양한 질감의 도시

[It Place] 영화 '춘몽' 배경지… 옛 모습 간직한 '은평구 수색동'

입력 2016-11-16 07:00 | 신문게재 2016-11-1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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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플_수색역

 

“바로 어제 다녀와도 그 색이 기억나지 않는다. 수색은 컬러가 없는 질감의 공간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춘몽’은 서울 은평구 수색역 인근 동네를 배경으로 한다. 영화는 여자 한 명과 세 남자의 쓸쓸한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를 연출한 장률 감독은 흑백의 도시로 수색(동)을 설명했다. 주인공으로 출연한 한예리도 “철길 하나를 두고 다른 공간이 펼쳐져 있다. 수색은 화려한 DMC와 상반되게 컬러가 안 느껴지는 동네다. 등장인물의 아련한 감정이 수색과 잘 어울린다”고 이야기했다.

장률은 재중동포 출신 감독이다. 그는 낯선 이방인의 시선으로 느낀 수색의 질감을 흑백 영상으로 표현됐다. 그 덕분에 관객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기분으로 영화를 즐겼고 평소 잘 모르고 지나쳤던 수색이란 동네를 기억하게 됐다. 



◇철길을 건너 펼쳐지는 다양한 질감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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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춘몽’에서 한예리의 집으로 등장한 수색동의 주택의 모습. 사진 오른쪽 영화 속 장면에 등장하는 주막은 현재 철거됐다. (사진=김동민 기자, 스톰픽쳐스코리아)

  

‘춘몽’은 배우 본명을 그대로 사용한다. 한예리는 수색역 인근 동네에서 홀로 주막을 운영하며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돌본다. 예리 주변엔 동네 불량배 양익준, 탈북 노동자 박정범, 간질을 앓는 윤종빈이 있다.

 

방송국이 들어서며 순식간에 개발된 DMC와 달리 수색은 여전히 낙후된 상태로 옛 모습을 지키고 있다. 수색역으로 나와 영화의 흔적을 찾아가자 장률 감독이 말한 질감이 느껴졌다. 산 아래 낮게 자리 잡은 건물은 지난 세월을 반영하듯 거칠면서 따뜻한 질감을 품었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얼굴로 살아가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정확히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DMC 직장인들과는 다르다. 수색 주민들은 하루의 고단함을 아주 예전에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 듯이 여유롭게 일상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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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영화 속 촬영지인 슈퍼의 모습. (사진=김동민 기자, 스톰픽쳐스코리아)

 

영화 속 한예리의 집이자 주막이 있는 곳으로 등장하는 곳은 실제론 박정범 감독의 작업실이다. 장률 감독은 “같은 느낌을 가진 주막을 다른 곳에서 찾았지만 그렇게 되면 영화 전체 느낌에 맞지 않을 것 같았다”며 “마침 박정범 감독의 작업실이 그곳에 있어 원래 주차장 공간에 주막을 지었다”고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별다른 정보 없이 영화의 흔적만을 가지고 시작된 나들이다. 이내 영화에서 네 사람이 걷던 길이 눈에 들어왔고 골목으로 들어가자 박정범 감독의 작업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낡은 주택 건물은 제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주막은 사라진 상태였다.

그 옆으론 슈퍼가 있다. 영화에도 등장한 장소로 슈퍼 옆에 자리 잡은 점집이 묘한 느낌을 관객에게 심어줬다. 슈퍼를 운영하는 주인에게 영화 촬영 당시 기억을 묻자 “그게 개봉했냐”고 반문했다. 주인은 “당시 제작진이 표를 준다고 했었는데 그 뒤로 소식이 없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영화에서 보지 못한 색도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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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 수색역 뒤로 벽화가 그려져있다. (사진=김동민 기자)

 

수색엔 흑백 영화에 담지 못한 색도 가득했다. 계절이 가을로 깊게 접어들면서 거리는 울긋불긋 낙엽으로 아름답게 포장됐다. 예쁘게 칠해진 벽화도 눈에 띄었다. 수색역 바로 뒤엔 ‘100년 수색동의 역사’를 소개하는 벽화도 있다.

그 옆 골목엔 수색역과 어울리는 기차를 소재로 벽화가 그려졌다. 자연이 만든 가을의 색과 사람이 그린 인간의 벽화는 기분 좋은 색채로 이곳 주민과 간혹 찾아오는 방문객을 맞이했다. 한예리와 세 남자가 걸으며 웃고 떠드는 모든 공간도 꿈이 아닌 현실에선 색을 품고 있다. 시장, 당구장, 사진관, 노래방 등 실제 길을 걸으며 만난 수색의 풍경은 영화가 담지 못한 삶의 활기를 드러냈다.

DMC와 수색동을 잇는 굴다리는 이곳 사람에겐 중요한 통로다. 수색동 사람들은 굴다리를 지나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 영화를 보고 특별한 장소에서 밥을 먹는다. 반대로 DMC에 사는 이들은 일과를 마치고 그곳으로 귀가한다. 

 

DMC의 높은 임대료는 서울로 갓 상경한 젊은이가 짊어지기엔 큰 부담이다. DMC의 한 방송국에서 근무하는 최민정(28)씨는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자연스레 이곳으로 오게 됐다. DMC보다 수색동이 임대료가 저렴해 그쪽으로 집을 구하게 됐다. 거리상으로는 아주 가깝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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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동과 DMC를 잇는 굴다리를 지나가는 한예리와 세남자들. 영화 촬영 이후 굴다리에는 벽화가 그려졌다. (사진=김동민 기자, 스톰픽쳐스코리아)

 

‘춘몽’에선 배우들이 굴다리를 지나 DMC로 건너가는 장면이 나온다. 촬영을 한 시기는 지난 4월로 당시 굴다리엔 아무런 무늬가 없었다. 그 뒤로 이곳에도 벽화가 그려졌다. 지하로 철길을 건너야 하기에 굴다리가 꽤 길게 뻗어있다. 굴다리 안에는 수색역과 DMC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다양한 벽화가 있어 답답한 터널을 지나는 따분함이 줄어든다.

굴다리를 지나자 거짓말처럼 익숙한 서울의 모습이 등장한다. 넓고 정돈된 거리 곁으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길 맞은 편엔 높은 건물이 하늘 위로 뻗어 있다. 그 순간 조금 전까지 보고 느꼈던 수색에서의 시간은 꿈처럼 사라진다. 일장춘몽, 한바탕 꿈이라고 하기엔 그 잔상이 짙다.

김동민 기자 7000-ja@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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