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비바100 > Leisure(여가) > 영화연극

[‘다’리뷰] “넌…아니…난 누구냐?" 이렇게나 흥겨운! ‘실수연발’

입력 2016-12-14 16:23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국립극단]실수연발_공연사진09
쌍둥이 도련님 안티포러스와 쌍둥이 하인 드로미오가 벌이는 소동극 ‘실수연발’.(사진제공=국립극장)

 

호불호는 분명하다. 누군가는 ‘실성연발’이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이게 뭐냐?”고 아우성이다.  

국립극단과 박윤희, 김정호, 백익남, 김정환, 이동준, 박완규, 박지아, 이기돈, 황순미, 임영준, 정혜선, 김선아, 백석광, 우정원, 문현정, 안병찬, 이기현, 정현철 등 단원 18명이 서거 400주년을 마무리하면서 개막한 연극 ‘실수연발’(28일까지 명동예술극장)은 셰익스피어의 초기 작품이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배 난파사고로 헤어진 쌍둥이 도련님과 쌍둥이 하인이 서로를 찾겠다고 에페서스라는 한 공간에 모이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고 있다.   

 

[국립극단]실수연발_공연사진02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 도련님 안티포러스와 쌍둥이 하인 드로미오.(사진제공=국립극장)

 

도련님과 하인 쌍둥이 형제가 안티포러스(Antipholus-s)와 드로미오 S(Dromio-s)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면서 벌어지는 오해와 실수들의 연발. 로마시대의 희극작가 플라우투스 소극(笑劇)에서 모티프를 딴 플롯은 간단하다. 무대 역시 흰색과 반투명 장치로 미니멀하다.  

 

간단한 플롯은 두쌍의 쌍둥이 형제가 끊임없이 겪는 자잘한 소동들로, 미니멀한 무대는 현란하고 교묘한 조명으로 다양한 변화를 꾀하며 극적 재미를 더한다.
 

[국립극단]실수연발_공연사진08
안티포러스의 처제 루시아나(왼쪽)와 아내 아드리아나.(사진제공=국립극장)

 

자신의 아내라는 아드리아나에게 납치당하듯 끌려가 점심을 대접받고 처제라는 루시아나에 첫눈에 반해버린다. 목걸이 도둑으로 몰려 구속이 되는가 하면 받지도 않은 반지를 주던가 가지고 있지도 않은 목걸이를 달라고 난리를 피우는 여자가 나타난다.

형부가 처제에게 사랑을 고백하는가 하면 배편을 알아보라고 보낸 하인이 돈꾸러미를 들이민다. 보석금을 받아오랬더니 드로미오는 밧줄을 내민다.

정작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관련된 이들을 모두 만나고 돌아다니는 두쌍의 쌍둥이들, 마치 귀신에 홀린 듯 딴 소리를 해대는 통에 악귀에 들렸다 호들갑이다. 

 

[국립극단]실수연발_공연사진15
쌍둥이 형제 드로미오.(사진제공=국립극단)
‘국물있사옵니다’,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 등 고전 코미디에 강한 면모를 보이는 서충식 연출과 마임에 특화된 남긍호 연출이 합을 맞춘 ‘실수연발’의 매력은 포복절도할 수 있는 순간순간에서 나온다.  


같은 얼굴과 같은 이름의 도련님을 따르는 같은 얼굴과 같은 이름의 하인. 잃어버린 자식을 찾기 위해 국교가 단절된 나라에 입국했다 사형 위기에 처한 아버지. 

 

의부증에 가까운 집착을 보이는 아내 아드리아나와 아름다운 처제 루시아나, 아내에게 선물하기 위한 목걸이를 만든 디자이너, 시시때때로 동상으로 등장해 윙크를 날리는 셰익스피어 등이 만들어가는 극은 우스꽝스러운 슬랩스틱과 말장난으로 무장했다.

‘어두운’ 아드리아나, ‘빛’ 루시아나, ‘달리다’ 드로미오 등 이름 자체로 상징성을 띠는 등장인물들은 말(안티포러스), 흑표범(아드리아나), 당나귀·미어캣(드로미오 형제) 등처럼 행동하며 희극성을 한껏 끌어 올린다. 이 지점은 극에 대한 호불호를 극명하게 하는 요소기도 하다.  

 

“이제는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저는 변했어요. 저는 제가 맞나요?”

동생인지 형인지 모를 드로미오의 절규는 특별히 생각할 거리를 던지기 보다는 그저 한바탕 웃는 소동극으로 꾸린 ‘실수연발’이 던지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다.

 

[국립극단]실수연발_공연사진14
드디어 만난 쌍둥이 형제들.(사진제공=국립극장)

 

‘쌍둥이 형을 찾으려고 에페서스에 왔다.’ 극 초반 두쌍의 쌍둥이 형제의 목적은 분명했다. 자신의 잃어버린 핏줄을 찾겠다고 나선 길이었다. 하지만 크고 작은 소동들에 휘말려 스스로가 누군지도 모를 지경에 이르면서 ‘실수연발’이 탄생한다.

그리고 그 혼란스러운 상황은 두쌍의 쌍둥이 형제들이 만나면서야 비로소 이해가능해진다. 혼자서는 오롯이 나로 설 수 없는 존재 인간에 대한 이 심오한 소동극은 세상을 떠난 지 400년을 넘긴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먼 이국땅의 현재에도 명맥을 유지하는 이유를 극명하게도 보여준다.

마구잡이로 웃음을 자아내는, 단 1777줄로 쓰여진 이 희곡이 자꾸 묻는다. “넌…아니…난 누구냐”고. 그렇게 마냥 웃게만 하는 듯한 소동극 ‘실수연발’은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