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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시설 안전 공무원들, 지금 어느 위치에 있나

입력 2018-01-04 15:56 | 신문게재 2018-01-0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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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ONG Moon)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서울 중심가 한복판, 건물 비상구 계단을 이용해 20층을 올라가던 중 5층에서 통로가 완전히 봉쇄돼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승강기를 탄 적이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 번은 사우나 이용 전 비상구를 문의했더니 ‘우리 사우나에 계단 비상구는 원래 없고 승강기만 이용할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최근 제천시 화재는 지방 도시 일부에 해당하는 지엽적 문제가 결코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기업현장에서 데이터 설계 관련 교과서적 이론이 얼마나 적용되고 있나 조사해 본 적이 있다. 데이터 설계를 건축에 비유하면 건축 설계에 해당하는 중대한 부분이다. 현장에서는 데이터설계가 잘못돼 데이터 검색 속도가 느려지는 부분이 수없이 산재해 있었다. 두 눈으로 직접 현장을 확인하고 나서야 이론과 현장이 이처럼 괴리돼 있을 수 있나 의아했다. 현장 데이터 설계 수준은 단순히 편법에 머무는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 있었으며, 이론을 깡그리 무시한 ‘무늬만 데이터’ 설계 형식인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기업현장에서 이런 식으로 한 분야의 기초이론을 경시하고 그들만의 엉뚱한 방법을 개발하는 이유는 전문가 점검이 부재한 허점을 이용해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탁상감리만으로는 이런 문제를 들춰낼 수 없다. 수면 아래 깊숙이 감춰져 아무도 모른 채 그냥 넘어간다는 사실이 더 심각하다.

제천시 화재사건도 따지고 보면 성격상 완전히 동격이다. 우리는 작고 큰 안전사고가 사회 각 분야에서 터질 때마다 분통을 터뜨리며 ‘왜 우리 사회에서는 위기 대응 매뉴얼이 없느냐’며 늘 성토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게 과연 매뉴얼 부재의 문제였던가. 매뉴얼이 있었다면 매뉴얼대로 행동했을까. 공무원들이 길거리, 건물 현장에 나가서 비상구가 불법 공사로 막혀있는지, 화재시 작동해야 할 분무기 스위치가 정상적으로 위치돼 있는지 여부만 두 눈으로 확인했어도 이런 대형 인명사고는 절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간단하고도 손쉬운 해법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사회가 바뀌지 않는 결정적 이유는 시설 안전 담당자들이 탁상행정을 일삼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 사회부 기자가 매일 아침 언론사로 출근하는 대신 발길을 경찰서로 돌리듯, 시설 안전 담당 공무원은 출근을 관공서로 할 것이 아니라 발길을 돌려 이제부터는 자신의 담당 구역 건물 비상계단을 직접 두 발로 밟아 봐야 할 것이다.

탁상행정의 폐해는 일상생활의 길거리 현장에서도 무수히 목격된다. ‘차는 차도로, 사람은 인도로’ 라는 길거리 표어를 출근, 퇴근 시 매일 접하면서 마음이 착잡해진다. 나는 지금까지 세계 90여개 나라를 다니면서 이런 표어를 본 적이 없다. 분명 오토바이가 자행하는 불법운행에 기인한 것이다. 비상구 불법, 차량의 인도 운행과 자유자재 역주행 행태, 공무 방해 불법주차, 이들 모두 공통점은 현장을 보지 않는 탁상행정이다. 규칙위반과 불법이 대낮에 자행될 정도로 일상화된 우리 사회의 탁상행정 단면을 결정적으로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사실이다.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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