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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100% 수작업… 도시락 뒤바뀔 확률 1600만 분의 1

[권기철의 젊은 인도 스토리] 인도 붐바이의 행복한 도시락 문화 '다바왈라'

입력 2018-09-10 07:00 | 신문게재 2018-09-1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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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직장인들이 다바왈라 시스템으로 집에서 도시락을 배달받아 점심을 먹고 있는 모습.

인도로 들어가는 항공기 안. 식사 제공 서비스가 시작되면 기내 승무원들이 반드시 묻는 질문이 있다. “Veg or Non Veg(채식 혹은 비채식)?”


공항에 도착해 택시를 기다리며 시원한 콜라 하나를 사게 되면 인도 특유의 풍경과 더불어 인도에 도착했다는 것을 실감나게 해주는 것이 있는데 바로 채식과 비채식용 기호(記號)다. 인도에서 판매되는 모든 포장 식품에는 채식주의자용과 비채식주의자를 구별하기 위한 필수 기호가 있는데 이것이 그것이다.

이 기호는 2006년 식품 안전 및 표준(포장 및 라벨링)법에 따라 발효되어 2011년 부터는 판매되는 모든 포장 음식에 의무적으로 표기하도록 법으로 규정되었다.

이 법에 따르면 채식주의자용은 녹색, 비채식주의자용은 갈색 동그라미 기호로 표기해야 한다. 식당에서는 자발적으로 이 마크를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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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동그라미 로고는 비채식주의자용 음식임을 알려준다.  (사진=IndiaMart)

어느 장소를 가더라도 이 표기를 보면 처음에는 ‘이 표기가 뭘까?’하고 궁금증을 갖다가 시간이 지나면 경험적으로 “아, 이건 채식주의자용 음식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이구나”하고 알게 된다. 특히 한국의 음식문화에서 채식 전문 음식점에 가지 않는 한 채식 전용 음식을 찾는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이 인도만의 표기 기호는 인도를 더 낯설게 만들기도 한다. 


개인의 사상이나 종교적 이유 등으로 고기 나 생선, 계란 등을 전혀 먹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이런 사람을 채식주의자라고 한다. 국제채식인연맹(IVU)은 전 세계 채식 인구를 1억800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중 모든 동물성 음식을 먹지 않는 완전 채식주의자인 ‘비건(vegan)’은 약 30%에 이른다.

하지만 이 숫자는 인도인을 뺀 숫자다. 2016년 인도 SRS의 조사에 따르면 인도 국민의 약 30%에 해당되는 약 4억 명 정도가 채식주의자로 조사되었다.

인도의 이러한 채식문화는 이슬람교와 자이나교, 그리고 국민 대부부을 차지하는 힌두교 등에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는 인도에서 소를 신성시 하거나, 돼지를 부정하게 생각하는 등 종교적 계율과 태어나고 자란 가정 환경에 따라 먹는 것을 엄격히 구분 한다.

지역이나 가정의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심지어 주방에서 쓰는 도마와 냉장고마저 ‘Veg’와 ‘Non Veg’용 식재료 같이 쓰는 것 조차 싫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조리 과정마저 따지는 이런 다소 까다롭고 보수적인 자세와 섭식 문화가 집착으로 나타난 것이 인도 특유의 ‘도시락 문화’다. 1인 가구 및 맞벌이 가구 증가와 함께 ‘혼밥’ 문화가 마치 유행처럼 번지면서 만들어낸 한국의 도시락 문화와는 그 차원이 다르다. 

 

뭄바이 도시락 배달 시스템 _다바왈라_
인도 뭄바이의 도시락 배달 시스템 다바왈라. 배달원들이 도시락을 배잘하고 있는 모습.

 

인도에는 다바왈라(Dabbawalla, 힌디어로 ‘즐거움’)라는 도시락 배달 문화가 있다. 다바왈라는 주로 뭄바이를 중심으로 제공되는 서비스다. 정해진 지역의 등록자를 대상으로 정해진 시간에 집 앞에 둔 도시락을 수거해 직장에 배달하고 식사를 마친 이후에는 도시락을 회수에 원래 가정에 반환하는 상당히 단순한 서비스다.

원래 19세기 말 영국 식민 시대, 영국 회사에서 일하는 인도인들이 직장에서 제공되는 식사에 익숙하지 않아 자신의 집에서 만든 음식을 도시락으로 가져가기 위한 사람을 고용하는 것에서 유래가 되었다. 현재 이 서비스는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영국의 찰스 황태자와 하버드 대학이나 대기업 물류 회사가 그 시스템을 견학하러 올 정도라고 한다.

이 배달 시스템은 스마트 기술 없이 100% 인력만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배달 실수 확률은 1600만 개에 1개 비율로 디지털보다 더 정교하고 신속한 체계에 따라 이루어진다. 배달 실수 확률은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착하기 일쑤인 전철과 어마어마한 교통 정체 속에서도 이런 실수 없이 정확한 시간에 도시락을 보내고 받는 시스템은 실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영화 런치 박스의 한 장면
영화 런치 박스의 한 장면.

 

이러한 문화를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 ‘런치박스(The Luch Box)’는 2013년 칸 국제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비롯해 전세계 8개 국제영화제에서 12개 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는 결혼 생활에 소홀해진 남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정성껏 만든 점심 도시락이 ‘1600만 분의 1’의 확률로 일어나는 배달실수로 인해 전혀 관계 없는 사람에게 도착해서 벌어지는 일상을 그렸다.

뜻밖에 도시락을 전부 먹어준 사람에 대한 호기심은 커져가고, 여주인공 일라는 도시락 안에 감사의 쪽지를 넣는다. 정년을 앞둔 회계사 페르난도스에게 얼굴도 모르는 그녀의 메모는 점점 그의 일상에 파고들어가 생각과 감정에 동요를 일으킨다. 그렇게 시작된 메모 주고받기는 일라와 페르난도스 두 사람의 일상에 어떤 위안과 함께 색깔을 입힌다.

서로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지만 정해진 시간에 메모를 기다리며 일어나는 일상의 작은 변화들을 예쁘게 그린 영화다. 나이도, 처지도 다른 두 사람이 오히려 서로를 잘 모르기에 각자의 개인사를 털어놓고 들어주는 과정을 통해 매일 같기만 했던 일상이 조금씩 아름답게 바뀐다. 핸드폰을 사용하면 5분도 안되어 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들을 주고받기 위해 영화의 주인공들은 하루를 꼬박 기다린다는 것이 줄거리다.

한국의 간편하지만 각박한 이미지를 가진 ‘도시락 문화’와는 정반대인 인도 ‘도시락 문화’. 같은 도시락이 주는 다른 감성을 느끼고 싶다면 인도가 그 정답이다.

권기철 국제전문 객원기자 speck007@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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