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비바100 > Leisure(여가) > 영화연극

[人더컬처] 연극 ‘어나더 컨트리’ 김태한 연출 “모든 것은 스스로에 달렸다”

실존인물 모티프로 한 줄리엔 미첼 연극 ‘어나더 컨트리’, 이지나 예술감독, 배우 김태한 연출 데뷔작
가이 베넷 박은석·이동하·연준석, 토미 저드 문유강·이충주
연준석, 문유강, 이지현, 배훈, 이태빈, 이주빈·최정우, 김의담, 김기택·황순종, 이건희, 채진·전변현 등 13인의 신인 배우들 대거 발탁

입력 2019-04-28 22:00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김태한 연출
연극 ‘어나더 컨트리’로 연출로 데뷔하는 김태한(사진=강시열 작가)

 

“너무 힘듭니다. 배우만 할 때랑은 엄청 다르죠.”

그리곤 긴 한숨과 헛헛한 웃음이 이어진다. 연극 ‘어나더 컨트리’(5월 21~8월 11일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가이 베넷(박은석·이동하·연준석, 이하 가나다 순)의 자유의지에 영향을 미치는 미스터 커닝햄(김태한·윤석원)을 연기하는 동시에 연출로도 나선 김태한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연출이 어떤 일을 수행하고 책임져야하는지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제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뭐랄까, 일하는 결 자체가 달라요. 게다가 연기는 꾸준히 해왔던 일이고 연출은 익숙하지 않으니까요.”

또 다시 복잡한 심경이 설핏 스친다. 연극 ‘어나더 컨트리’는 줄리엔 미첼이 실제 인물을 모티프로 캐릭터화한 자유로운 영혼의 가이 베넷과 마르크스를 신봉하는 토미 저드(문유강·이충주)를 중심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다.

엄격한 규율과 첨예한 권력구조의 최상위 그룹인 ‘트웬티투’(Twenty Two), 프리팩트(기숙사 선도부), 요주의 인물 베넷과 저드 등 1930년대 상류층 자제들이 모여든 영국의 명문 공립학교 게스코인 기숙사는 곧 또 다른 사회이자 시스템이며 권력구조다.


◇결국 스스로의 선택
 

김태한 연출
연극 ‘어나더 컨트리’로 연출로 데뷔하는 김태한(사진=강시열 작가)

“1930년대 영국 특유의 귀족문화, 크리켓, 학생 간의 채벌이나 관리 시스템 등 정서적으로 부딪히는 곳이 너무 많아요. 하지만 아이들끼리 급을 나누고 채벌하는가 하면 하급생을 부리는 등은 배경이 학교여서 그렇지 잠깐만 틀어보면 지금도 만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단편적으로 채벌 문제도 당시 학교 제도에 의해 은연 중에 합당화해서 그렇지 폭력이거든요.”


군대의 위계질서나 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갑질 등 역시 김태한 연출의 말처럼 “은연 중에 합당화됐지만 엄연한 폭력”이다.

“관객이 자기화할 수 있게 하는 작업이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이 작품의 의도나 메시지가 달라진다기 보다 전달 방식이나 표현방법들이 원작과 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스태프는 물론 배우들과도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끊임없이 얘기하며 공감하고 공유하려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죠. 그 과정이 고스란히 관객들에게도 전해지게끔 대사부터 장면을 만들어 가는 중입니다.“

이렇게 전한 김태한 연출은 “이 작품이 표현하는 상징은 아이러니하게 혹은 모순되는 것들이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곤 “크리켓이 그립소”라는 베넷의 마지막 대사를 예로 들었다.

“대사 하나로도 굉장히 많은 의견들이 도출될 수 있거든요. 크리켓은 당시 귀족문화의 중요한 상징이에요. 결국 지배계급으로 돌아가고 싶은 표현일 수도, 아무 것도 모른채 아이들과 즐겼던 그 시간을 향한 조크였을 수도 있죠.”

어나더 컨트리
연극 ‘어나더 컨트리’ 가이 베넷 연준석(오른쪽)과 토미저드 이충주(사진제공=페이지원)

 

이어 “모든 상징,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못해도 대여섯 가지는 되는 것 같다”는 김태한 연출의 말처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가이 베넷이라는 인물의 행보 역시 상징적이다.

“결국 사회제도가 만들어낸 사람이든, 그 사람 자체가 원래 모순이었든 ‘부적응자’로 분류돼버린 베넷은 결국 스파이가 돼서 망명하게 돼요. 그 결과가 결국 자신의 선택이 아닌가 싶어요. 누군가한테 내가 ‘이래서 이렇게 됐다’고 하지만 자신의 나라를 포기하고 복수를 꿈꾼 것도 결국은 스스로의 선택이죠.”


◇1930년대 영국 상류학교부터 2019년 대한민국까지 관통하는 이야기

연극 어나더 컨트리
연극 ‘어나더 컨트리’ 가이 베넷 박은석(왼쪽)과 토미 저드 문유강(사진제공=페이지원)
“1930년대 영국 상류학교의 이야기지만 2019년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들과 큰 괴리감이 있는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살면서 항상 고민하는 문제 같아요.”

연극 ‘어나더 커트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김태한 연출은 “시대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굉장히 먼 나라 이야기”라며 “(극을 함께 준비하며) 여기 있는 누구도 직접 경험 못한 일들이지만 그다지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말들이 어려워서 그렇지 우리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일들이에요. 사회를 학교에 빗대 계급사회가 부각되게 틀거리가 잘 돼 있는 작품이죠. 작가가 배우들의 심리에 의존해 말들을 적어 내려갔어요. 굉장히 시적이어서 얼핏 들으면 모르고 지나가거나 이해 안되는 말들도 너무 많아요. 그럼에도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봐야할 질문거리들을 던지죠.”

이렇게 설명한 김태한 연출은 “내가 ‘행복하다’ ‘행복하지 않다’에서 출발한 이야기”라며 “행복한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어서 행복한 것인가, 행복하지 않다면 그렇지 않아서 불행한가를 묻는다”고 덧붙였다.

“어떤 선택을 해서 행복하다, 불행하다 말할 수 있는가, 이 나라에 살고 있으면서 나라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잘못인가, 불평하지 않고 잘 따라가는 것만이 올바르게 사는 것인가, 개인의 주관적인 선택이 메이저가 아닌 소수의 삶이라면 잘못인가…정말 많은 질문들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행불행을 결정짓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행복과 불행은 상대적인 게 아니라 절대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어떤 선택을 해야 행복할까, 그것을 고민하는 게 맞을까? 이 작품이 그렇게 묻고 또 묻게 만들어요.”

이어 “이같은 작품의 메시지가 시적인 대사와 장면들 전반에 함축돼 있다”며 “개인주의 혹은 계급사회의 특정 부류를 위해 만들어진 규범, 제도, 도덕성, 이런 것들에 세뇌된 군상들의 사상적인 모순들이 드러나는 대사들이 인상적”이라고 덧붙였다.

IMG_4333
연극 ‘어나더 컨트리’ 가이 베넷 이동하(왼쪽과 토미 저드 문유강(사진제공=페이지원)

 

“저드의 ‘개인적인 이기주의는 언제나 지배계급에 대한 복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거나 ‘힘과 공포심으로 세워진 시스템은, 결국엔 유지를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다시 힘과 공포심을 선택하게 되어 있지’, 바클레이(이지현)의 ‘절대적인 관행은 없다. 특히 학교에 이익을 줄 사람이 관계될 땐!’ 등이 그런 대사예요.”

더불어 미스터 커닝햄의 “전쟁이라는 이름 하에 사람을 죽이는 게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했어. 유혈로 점철된 기독교 사회에선 이상한 시각이지. 그게 얼마나 별나고 이상하든 난 나의 도덕적인 직관은 따라야한다고 믿는다. 그런 직관이 우리가 동물과 다른 이유잖아”와 베넷의 “난 이제 아닌 척 안할거야. 가식적으로 사는 거 지쳤어!”라는 대사를 예로 들었다.

“이런 커닝햄과 베넷의 대사는 개인의 주관적 선택 혹은 소수적 선택이 꼭 그릇된 것만은 아니라는 암시에 가깝다고 보여집니다.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제도가 어떻든 정해진 사상이 어떻든 결국 자신의 삶은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된다는 거죠.”


김태한
연출 데뷔작인 연극 ‘어나더 컨트리’에서 김태한은 미스터 커닝햄을 연기하기도 한다(사진제공=페이지원)

◇원작엔 없는 커닝햄 “베넷의 자율적 의지 촉발제”

 

“베넷이 한 단계 더 자율적 의지를 갖게 만드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김태한은 연출과 더불어 미스터 커닝햄이라는 인물로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원작엔 없는 인물로 커닝햄에 대해 김태한 연출은 “이 사람 역시 환경, 살아온 인생 등이 되게 모순적이고 아이러니하다”고 귀띔했다.

“유미주의까지는 아닌데 이 사람이 추구하는 철학이나 사상들이 베넷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치죠. 갑자기 사람이 달라지게 한다기 보다 베넷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좀 더 자유의지를 갖게 만드는 인물이에요.”

베넷이 마지막 선택을 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커닝햄에 대해 “그의의 역사나 서사를 서술하기 보다는 주인공의 의식을 건드리는 게 중요한 인물”이라고 덧붙였다.

“어떤 순간에 영향을 미치는 촉발제, 자극제 같은 사람이죠. 베넷과 만났을 때 잘 맞는 사람을 만난 느낌이에요. 그런 느낌을 받으면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잖아요. 둘이 나누는 대화가 어렵고 이해는 못해도 공감이 되는 그런 느낌이요.”


◇다양한 사상과 가치관들의 충돌

연극 어나더 컨트리
연극 ‘어나더 컨트리’(사진제공=페이지원)

 

“동성애, 사회주의, 계급주의, 현실주의자와 이상주의자 등 다양한 사상과 가치관들이 충돌하지만 이는 주제를 위한 소재들일 뿐이에요. 학생들이 어디서 태어났든, 그 타고난 환경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든, 스스로의 의지든, 스스로의 의지인 줄 알든…가지게 된 수많은 생각과 다양한 가치관들이 모인 사회에 대한 이야기죠.”

연극 ‘어나더 컨트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김태한 연출은 “그런 사회에서 만들어진 제도, 정답이라고 정해놓은 체제나 틀 안에서 벗어나는 것이 잘못인가, 왜 그런 것들로 잘잘못을 따지는지, 그것이 한 개인의 성공과 실패로 연결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원작, 영화 등에서 게임처럼 즐기던 가이 베넷이 제임스 하코트(이건희)를 만나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는 과정이 부각되면서 ‘동성애’는 소재를 넘어 오해를 부르기도 한다.

“자칫 동성애자의 비애처럼 오해를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그래서 굉장히 함축적으로 담고 있어요. 연출 장면, 대사들에 함축돼 있죠. 잘 드러나지 않은 의도들을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미스캐스팅? 13인의 신예들
 

어나더 컨트리
연극 ‘어나더 컨트리’ 13인의 신예들과 김태한 연출.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문유강, 김기택, 이건희, 이주빈, 배훈, 채진, 연준석, 전변현, 최정우, 이태빈, 김태한 연출, 황순종, 김의담, 이지현(사진=강시열 작가)

 

1981년 그리니치 씨어터에서 첫 선을 보이고 1982년 런던 웨스트엔드에 입성했던 ‘어나더 컨트리’는 루퍼트 에버릿(Rupert Everett), 케네스 브래너(Kenneth Branagh), 다니엘 데이 루이스(Daniel Day-Lewis), 콜린 퍼스(Colin Firth), 톰 히들스턴(Tom Hiddleston) 등이 무대에 올랐던 신인등용문 같은 작품이다.

이번 한국 프로덕션에서도 오디션을 통해 신인들이 대거 등용됐다. 베넷 역의 연준석과 저드 문유강, 기숙사장 바클레이 이지현, 데비니쉬 배훈, 기숙사 선도부의 멘지스 이태빈, 파울러 이주빈·최정우, 델러헤이 김의담, 샌더슨 김기택·황순종, 가이의 연인이자 학교 최고의 미소년 하코트 이건희, 기숙사 하급생 워튼 채진·전변현 등 13인은 75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신예들이다.

“이미지와 실체를 놓고 보면 다 미스캐스팅이에요. 사람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된다는 걸 또 배웠죠. 배우가 가진 이미지와 실제 모습이 너무 달라요. 캐릭터 성향과도 너무 달라서 오히려 흥미롭죠.”

13명의 신인배우들 중 막내인 전변현과는 스무살 차이가 난다는 김태한 연출은 “전 아직도 20대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나이 차를 느끼기보다 “연습하는 걸 보고 있자면 다들 너무 안쓰럽다”고 털어놓았다. 

 

김태한 연출
연극 ‘어나더 컨트리’로 연출로 데뷔하는 김태한(사진=강시열 작가)

“많이 모를 텐데, 알고 있더라도 연습실에서 그 많은 선배들과 부대끼다 보면 어리둥절할 때가 많거든요. 그런 중에도 어떻게든 해보려고, 정말 순수하게 연습에 매진해요. 다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해보려고 애쓰는 모습들이 안쓰러우면서도 너무 좋아요. 다 같이 대화하고 몸으로 부대끼면서 그 에너지에 동참하고 있죠.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리고 목이 쉬기 일쑤지만 그 좋은 에너지를 받고 있습니다.”



◇첫 연출 데뷔작 “배우로든, 연출로는 죽을 때까지 무대작업!”

“첫 연출작인데 너무 어려운 작품을 만났어요. 등장인물도 너무 많고 함축된 상징이나 메시지들도 너무 많아서 때론 버겁기도 해요. 하루 종일 머리가 복잡해져 있는 상태죠.”

김태한은 연극 ‘어나더 컨트리’로 연출 첫발을 내딛는다. 그 어려움에 대해 “아직 연출이라는 직업에 적응을 못한 것 같다” 토로하면서도 “연습시간 만큼은 너무 좋은 기운을 받으면서 즐겁게 보내고 있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 작품을 만나기 전까지는 연기하다 죽는 게 꿈이었어요. 무대에서 노는 게 너무 좋고 소중하고 사명의식까지 느꼈거든요. 하지만 이번에는 무대에서 노는 게 아니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죠. 연출로 작품에 임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어요. 배우, 연출 등 무엇이 주어지든 ‘무대를 만든다’는 신념을 가지고 계속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