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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뮤지컬 ‘친정엄마’ 제작자 잠적, 연극 ‘생쥐와 인간’ 조기폐막…끝이 없는 공연계 불황의 늪

[트렌드 Talk] 한숨 깊어진 공연계 불황 심화, 수익 나기 힘든 구조로 제작사들 빚더미 수렁으로
역대 최악의 불황, 어느 하나 아닌 복합적인 원인! 결국 콘텐츠의 문제

입력 2019-10-25 07:00 | 신문게재 2019-10-25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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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진지하게 요즘 관객 다 어디 갔냐고 얘기하다가 공연 경쟁상대는 넷플릭스라고 말할 지경이에요.” 

  

‘공연계 성수기’로 불리는 11월에 불미스러운 소식이 이어졌다. 22일 뮤지컬 ‘친정엄마’ 제작사 쇼21 대표 잠적 사실이 알려졌는가 하면 연극 ‘생쥐와 인간’은 조기폐막을 결정했다. 

 

뮤지컬 ‘친정엄마’는 10주년을 맞아 지난 9월 6년만에 이화여자대학교 삼성홀에서 개막해 지난 주말 폐막했다. 고혜정 작가의 소설을 무대에 올린 작품으로 서울 공연 종료 며칠을 앞둔 18일 제작사 쇼21의 박모 대표가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26, 27일로 계획됐던 부산 공연을 비롯해 대구, 강릉, 성남, 인천, 창원, 전주 등 9개 도시 공연이 줄줄이 취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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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친정 엄마’(사진제공=쇼21)

 

박 대표는 지방공연 기획사로부터 판권료를 선납받은 뒤 잠적한 것으로 알려진다. 공연에 출연했던 나문희 소속사를 통해 박 대표의 해외 출국과 출연료 미지급 사실도 밝혀졌다. 나문희 뿐 아니라 김수미 등 출연 배우들, 스태프들 대부분은 출연료 및 페이 잔금이 미지급돼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배우와 스태프들 뿐 아니다. 부산 ㈜월드쇼마켓, 대구·강릉 ㈜엠플러스, 성남 빅윈이엔티, 인천 ㈜하늘이엔티, 창원 ㈜원앤원엔터테인먼트, 전주 ㈜엘티미디어 등 지방 공연기획사들의 피해도 불가피한 상태다.

 

지난 9월 24일 개막해 11월 17일까지 공연 예정이던 연극 ‘생쥐와 인간’은 조기폐막을 알렸다. 제작사 빅타임엔터테인먼트는 22일 공식 SNS에 “장기간 이어진 공연계의 불황과 제작사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관객 여러분과 약속한 공연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예정보다 앞당겨 10월 25일 조기폐막을 결정했다”고 알렸다.  

 

‘생쥐와 인간’ 관계자는 브릿지경제와의 통화에서 “전 스태프와 배우들이 모여 논의 끝에 조기 폐막을 합의했다”며 공연계 불황으로 인해 “공연 운영이 어려운 금전적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더 끌고 가다 스태프나 배우 분들에게 폐가 될 것이라고 판단해 이쯤 마무리하기를 결정했다”며 배우들의 출연료나 스태프들 페이 지급에 대해 “일한 부분까지는 불미스럽게 미지급될 여지는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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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생쥐와 인간’(사진제공=빅타임엔터테인먼트)

  

193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고 한국에서는 지난해 첫선을 보인 ‘생쥐와 인간’은 노벨문학상, 퓰리처상을 수상한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의 동명원작을 바탕으로 한 연극이다. ‘승산없는 싸움’(1936), ‘분노의 포도’(1937)와 더불어 노동자 3대 비극 시리즈 중 하나로 1930년대 대공황기의 미국 목장을 배경으로 한다. 

 

아이처럼 순수하지만 큰 덩치와 주체할 수 없는 힘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레니(최대훈·서경수,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와 고아로 자라 제대로 배우지 못했지만 영민한 조지(문태유·고상호)를 중심으로 노동자들의 비극적인 삶, 약자들 간의 차별과 상처, 허망하게 무너져버린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친정 엄마’ ‘생쥐와 인간’에 앞서 이번 달 초에는 대극장에서 소극장으로 옮겨온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가 조기폐막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비단 조기폐막을 알린 작품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예매사이트에서 1열도 채 예매되지 않거나 공연장의 절반도 못채운 상태에서 공연을 진행하는 극들도 유독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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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사 대표 잠적, 공연 취소 및 조기폐막 등 일련의 사태에 대해 다수의 공연관계자들은 “심화된 공연계 불황”과 “관객 쏠림 현상”을 주요원인으로 꼽았다. 그들은 “불황이 더욱 심해져  수익을 보는 제작사가 거의 없다고 할 정도”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한 공연 관계자는 “높은 대관료와 배우 개런티로 수익이 남는 구조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다. 제작자들은 최소 몇십억, 많게는 수백억의 빚더미에 앉아있다”며 “팬덤이 큰 몇몇 배우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다수의 공연 관계자들은 “프로덕션마다 다르지만 회당 대관료와 배우 개런티의 비율이 같거나 3배까지 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공연계 불황은 좋은 작품의 발굴·제작보다는 캐스팅에 사활을 거는 공연들의 만연, 그로 인한 팬덤 쏠림 현상, 몇몇 배우 및 창작진 겹치기 등의 악순환 구조를 심화시키기도 한다. 오죽하면 “공연 기획자나 제작자가 아니라 ‘섭외자’로 전락했다” “공연 최고의 마케팅은 배우” 등의 우스갯소리가 회자될 정도다. 


하지만 공연계 불미스러운 사태의 원인을 제작자들과 관객들이 선호하는 배우들, 그 배우들을 따라 움직이는 관객들 탓으로만 돌리는 데 대한 비판의 소리도 높다. 한달에 한번 정도 연극이나 뮤지컬을 관람한다는 Y(44)씨는 “공연계는 관객을 소비자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는 “제작사나 공연 관계자들은 ‘아무리 좋은 작품을 만들어도 관객들이 자신이 선호하는 배우만을 좇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좋은 작품’의 기준이 뭔지, 소비자인 관객을 무시하는 듯한 ‘너희들은 모르지만 좋은 작품’이 과연 좋은 작품인지 되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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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거리.(사진=허미선 기자)

 

이어 “불과 지난해만 해도 캐스팅 상관없이 볼 정도로 좋은 극들이 있었다. 물론 캐스팅이 경쟁력이 되는 극들도 있다. 하지만 그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소비자의 권리”라며 “지금은 소비자로서 관객이 캐스팅 상관없이 보기에 좋은 작품보다는 캐스팅이 중요한 극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한달에 한번이지만 볼 연극과 뮤지컬을 찾는 것도, 나에게 가장 적확하게 맞는 캐스팅 조합을 찾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한 공연 제작사 관계자는 “대관료나 일부 배우들의 높은 캐런티로 제작시스템 자체가 불균형인 것도 맞지만 인건비가 전반적으로 오르기도 했다. 최저시급 상승으로 일용직 페이가 오르고 그에 맞춰 정규 스태프들 임금도 상승했다”며 “제작사 입장에서는 지출해야하는 비용은 느는데 수익은 똑같고 함부로 가격을 올릴 수도 없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현재 공연계 문제의 원인은 한두 가지가 아닌 복합적”이라며 “그간 매년 경제는 점점 더 안좋아지고 관객은 없었지만 대학로의 주류 작품들이 계절의 영향을 받거니 시즌을 타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일찌감치 거리가 한산해지고 상점들도 일찍 문을 닫고 있다. 제가 대학로에서 일한 10년 간 최악의 불황”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공연 관계자는 “그럼에도 초반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던 작품이 입소문을 타고 흥행하는 경우도 있다. 국가 경제가 전반적으로 침체일로인 상황에서 가장 먼저 줄이게 되는 것이 문화비”라며 “한정된 비용 안에서 좋은 작품 아니면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하는 공연 회차를 관람하는 건 당연하다. 공연 관람을 포기하고 영화나 넷플릭스 등으로 돌아서도 할 말이 없다. 결국 좋은 콘텐츠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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