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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9년과 20년 그 사이의 '영화'

2019년 나란히 출간된 영화 책 '김쌤은 출장중'VS'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영화라는 공통분모 통과하는 세월의 흐름, 수많은 영화제와 명작들 되짚는 책들 '눈길'

입력 2019-11-06 07:00 | 신문게재 2019-11-06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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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

 

기자와 평론가는 영화 분야에서 대중에게 가장 설득력 있는 직종이다. 전직 기자인 이동진과 고(故) 김지석 평론가의 신간이 나란히 출간됐다. 전작이 어마어마한 두께를, 후자가 얇지만 진정성을 가졌다는 점이 눈에 띈다. 책의 페이지가 작품이 가진 값어치를 증명하진 않지만 ‘영화를 삶으로 삼았던 두 작가’의 지점으로서는 꽤 흥미롭다.


◇ 김지석을 기리며… ‘김쌤은 출장 중’
 

김쌤
김쌤은 출장 중 |김지석 저 | 1만3000원.(사진제공=호밀밭)

고 김지석은 지난 2017년 5월 멀리 프랑스 칸영화제 출장 중 타계했다. 부산 출신이었던 그는 이제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거듭난 부산국제영화제의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프로그래머였고 아시아영화의 큰 별이었다. 고인은 1996년 출항한 부산국제영화제의 창설 멤버다. 올해 부산영화제에 맞춰 발간된 ‘김쌤은 출장 중’은 후임자인 박선영 프로그래머의 눈물에서 시작됐다. 김지석의 출장기를 읽다 가슴이 울려 책으로 내자는 의견을 냈고 지난 5월 2주기 때 이용관 이사장이 올해 영화제에 맞춰 책을 내겠다는 결심을 하게 했다. 2009년 홍콩영화제와 아시아태평양영화제, 2010년 베이징영화제,2011년 도쿄필름엑스,2011년 칸영화제부터 2015년 싱가포르영화제와 2016년 금마장 영화제와 2017년 파지르영화제까지 흔히 들어본 영화의 축제부터 생소한 영화제까지 9년간의 기록은 한권의 일기와도 같다.


미지의 중앙아시아 영화들을 찾아나선 카자흐스탄 알마티 출장은 향후 부산영화제가 수년간에 걸쳐 재조명하고자하는 영화로 이어졌다. 엄청난 자본이 유입되는 중국영화산업에 대한 보고서 또한 작금의 한국영화산업이 주목해야 할 정보들로 수두룩하다. 평소 심장이 좋지 않았던 고인은 2017년 칸영화제 기간 중 몸에 이상을 느끼고 병원을 찾았으나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변을 당했다. 향년 57세의 나이였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역사는 곧 고인의 역사이기도 한 셈이다. 당시 칸에는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가 마련됐다. 칸은 고인을 이렇게 기억한다. “최고의 프로페셔널이자 최고의 프로그래머였고 볼 수 있는 모든 영화를 보는 호기심 많은 사람이었다. 우리 영화계는 소중한 가족을 잃었다”고.

2년이 지났지만 고인의 빈자리는 영화제 곳곳에서 드러났고 또 추억되고 있다. 2017년에는 공식 추모 행사가 열린 것은 물론 고인의 뜻을 이어가기 위한 ‘지석상’이 신설됐다. 또한 모든 영화 상영 전에는 인 러빙 메모리 오브 김지석(in loving Memory of Kim Ji Seok)이란 추모 메시지로 고인을 추억케 했다. 2년이 지난 올해 지석영화연구소가 고(故) 김지석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프로그래머를 기리고자 기획한 프로젝트 ‘김쌤은 출장 중’ 국문판과 영문판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맞춰 동시 출간됐다. 각국의 영화제와 영화계의 단상, 주목할 만한 영화까지 수많음 메모들이 특유의 필체로 담겨있다. 지석영화연구소는 ‘김지석 선집’ 출판도 계획 중이다.

 


◇ 이동진의 20년 영화 기록…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이동진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이동진 영화 평론집 |3만9000원.(사진제공=위즈덤하우스)

1999년 개봉한 ‘벨벳 골드마인’부터 2019년 ‘기생충’까지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20년간 써온 평문들이 한권의 책에 담겼다. 상당히 긴 글이 대부분이며 두께만도 20cm에 가깝다. 흡사 영화 ‘존 윅’의 주인공이 흉기로 쓴다면 150여명은 거뜬히 제거할 수 있을 듯 거대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이 평론가는 서문에서 스스로를 “영화의 감흥을 동력 삼아 다시 시작하며 살려는 자이기에 난 20년간의 총체적인 내가 뭉뚱그려져 떠오른다”고 평가했다. 분량에 상관없이 쓴 문장에 대해 독자들의 아량을 이해해 달라는 것. 이번 신작 역시 900쪽이 넘는다.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의 출간 이후 온라인에서는 제목과 더불어 ‘벽돌책’이라 불리며 그의 인기를 증명함과 동시에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분명 두께 만큼이나 재미나 깊이가 있을지는 철저히 독자의 몫이다.

그는 오랜 시간 깊이와 넓이를 동시에 만족하는 단계를 추구하는 인물이었다. 평론가로서 성실하게 다양한 영화를 보고, 쓰고, 말해왔고, 1인 미디어를 통해 대중과 소통해 왔다. 수많은 영화제를 통한 모더레이터(해설자)를 맡아 영화 내면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애써오며 수많은 마니아들을 양성했다. 그렇기에 영화에 대해서는 언제나 호불호가 갈린다.

일례로 영화 ‘귀향’에 대해 비교적 낮은 평가를 내렸다. 자신의 블로그 ‘언제나 영화처럼’에 별점 2개를 주며 “역사에 대한 울분, 영화에 대한 한숨”이라는 짧은 평을 남겼다. 개봉당시 오랜 준비기간, 배우들의 열연과 사회적 분위기까지 큰 호평을 받았던 것과는 다소 반대되는 지점이다.

하지만 그가 가진 문화 브랜드로서의 힘이 이 책 한권에 응축됐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다. 2006년 대형 포털사이트와 손잡고 1인 미디어에 나섰을 때는 주변의 우려도 컸지만 지금의 유튜버 시대의 시초나 다름없는 시도였던 것. 대형 멀티플렉스와 함께 영화를 보고 대화하는 라이브톡의 경우 이례적으로 꾸준히 객석의 반이상이 차는 기현상이 유지되고 있다.

굳이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책 뒷편의 영화인 명부와 영화명만 찾아봐도 이 책을 읽어볼 재미는 충분하다. 분절된 시간 속에 떨어져 있던 208편의 평론을 한 편의 연대기로 재구성해 그 어떤 페이지를 펼쳐도 앞뒤로 자연스레 그 시기의 영화가 따라온다. 박찬욱 감독은 추천사에서 “이 책은 시네마테크에서 큰 맘먹고 개최한 한 감독의 거대한 최고전 비슷한 것”이라고 썼다. 모두에게 자신만의 영화관이 있다. 이 책은 두 번째 영화 ‘책’이 될 것이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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