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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벽이 만든 세계사> 함규진

입력 2020-04-0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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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최근 들어 ‘장벽’을 주제로 한 책들이 더러 눈에 띈다. 대부분 해외 저자들의 책이라 대상 선정 등에서부터 천편일률 적인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은 서울교육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가 쓴 책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한반도 군사분계선이 논의된 것이 새로워 보였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는 장벽을 통해 자신들과 저들을 구분지었고, 그렇게 자신들의 정체성 혹은 우월성을 과시해 왔다. 때문에 유명한 장벽들은 ‘가장 긴 무덤’, ‘수치의 벽’ 같은 불명예스러운 별명들이 붙곤 한다. 만리장성 같은 유명한 장벽 외에도 오스트레일리아의 토끼 장벽, 딩고 장벽 같은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충실한 고증을 통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 정조대왕과 당 태종의 ‘만리장성 비판’ - 조선 22대왕 정조는 세손 시절에 썼다는 ‘장성행(長城行)’이라는 시를 통해 만리장성을 비판했다. ‘징발된 사람 열에 아흡은 고향에 못돌아갔으니 그들이 무슨 죄가 있어 피눈믈을 흘려야 했던가… 아아, 저 장성이야말로 재앙 덩어리였구나… 그대는 보지 못했나. 도화원의 머리털 푸른 늙은이가 신기루 같은 장성을 돌아보고 비웃는 것을’이라고 묘사했다. 만리장성은 진시황의 독단에 따라 지어졌고, 중국을 지키는 방어선이자 중화와 오랑캐를 나누는 경계가 되었으며, 허다한 인명을 희생시킨 잔혹한 대역사였다는 것이 유명인들의 공통된 평가다. 진시황제는 역사에 남을 바보 짓을 했다는 혹평도 나온다. 당나라 태종도 “흙과 돌로 장성을 쌓아 나라를 지키려 했다니! 짐은 충성스럽고 용맹한 장수들을 믿노라. 그들이 나의 장성이니라”라고 호언하기도 했다.

 

* 만리장성은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 - 무리한 대역사로 백성을 도탄에 빠트린 것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을 만들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후대 어떤 기록에서는 “나라 백성의 절반이 성을 쌓다가 죽거나 굶어 죽을 위기에 처했다”는 언급까지 나올 정도였다. 장성을 쌓을 때 현지 재료를 쓰고, 일부는 전국시대 열국의 북쪽 장성들을 활용하거나 아주 험준한 곳은 굳이 장벽을 잇지 않았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고 한다. 진시황대의 만리장성이 완성되는 데 겨우 10년이 걸렸다는 기록이 이 같은 주장의 근거로 활용된다. 진시황의 무덤을 만드는데 38년이 걸린 곳에 비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완성된 것이 미덥지 않다는 얘기다.

 

* 중국을 폐쇄국으로 만든 만리장성 - 18세기 유명한 계몽사상가인 볼테르도 “피라미드 조차 만리장성에 비하면 어린애 장난감일 뿐”이라고 격찬했다. 하지만 줄리아 로벨이라는 사람은 ‘장성으로 보는 중국사’라는 책에서 “만리장성은 북방의 침입에서 중국을 지켰지만, 동시에 중국을 그 테두리 안에 가두기도 했다. 중국 특유의 자문화 중심주의의 폐쇄성은 만리장성의 부산물이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 오스트레일리아의 ‘토끼장벽’ - 토머스 오스틴이라는 영국 농부가 1831년 오스트레일리라 남동부로 이주한 후 사냥감이 없어 무료했던 터에 스물 네 마리의 토끼를 영국에서 공수받으면서 사단이 났다. 토끼의 번식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수컷은 먹고 자는 일 말고는 그것만 하다시피 할 정도로 정력의 화신이고, 암컷은 매년 42마리의 새끼를 낳을 수 있다고 한다. 상상 이상의 번식력을 보인 토끼는 20세기로 들어설 즈음에 1억 마리를 넘겼고, 결국 서남해안 에스페란스 근방에서 동해안 퍼스 인근까지 1824km의 장벽을 세워졌다. 이후 북서해안의 포트헤들랜드까지 연결해 총 3256km 장벽이 세워진다. 하지만 1940년 이 나라의 토끼 수는 8억 마리까지 늘었다고 한다. 

 

* 바이러스로 토끼를 죽인 오스트레일리아 - 1949년 스위스에서 점액종증의 바이러스를 분리해 내는 데 성공하자 호주인들은 보통은 벼룩이나 모기가 옮기는 이 끔직한 바이러스를 배양해 대량으로 살포하기에 이른다. 불과 2년 만에 4억 마리 이상의 토끼가 죽는다. 1996년에는 토끼 칼리시바이러스라는 것을 써 두번째 생화학전을 펼친다. 그러나 전멸 시키는 데 실패하고 오늘까지도 호주 대륙에는 수억 마리의 토끼가 생존하고 있다고 한다.

 

* 호주의 ‘딩고 장벽’ - 호주에만 서식하는 야생견 ‘딩고’를 막기 위한 딩고 장벽도 무려 5000km에 이른다. 딩고 무리가 양떼 목장을 습격해 양들을 물어가는 것을 방지하려는 목적이다. 가장 나중에 세워진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의 딩고 장벽은 고압전류까지 통할 정도라고 한다.

 

* 방어를 위한 마지노선 - 1차 세계대전에서 청년 층의 40%가 넘는 140여만명을 잃은 프랑스는 되도록 전쟁을 피하려 노력했다. 피할 수 없다면 방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정신으로 무장할 수 밖에 없었다. 1929년 의회에 마지노선 구축안이 90%의 지지를 받아 통과된 후 스위스에서 룩셈부르크, 벨기에에 이르는 프랑스 동부 국경에 108개 요새가 구축되고 그 요새를 잇는 장벽을 짓는 작업이 시작된다. 하지만 프랑스 쪽은 철통 같은 방어망이 구축된 반면 벨기에 쪽 요새군은 상대적으로 허술했다. 마지노선 하나에만 요즘 돈으로 35조원이 소요되는 터에 연장이란 불가능했다. 특히 벨기에는 프랑스의 마지노선을 자국 국경에 구축해 중립을 깨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소극적이었다. 벨기에를 노리던 영국도 결사 반대했다. 

 

* 허무하게 무너진 마지노선 - 빽빽한 산림으로 이뤄진 아르덴 지구의 경우 고원지대라 ‘천혜의 요소’로 평가받았다. 때문에 이 지역에는 따로 마지노 장벽을 건설하지 않았다. 그러나 독일은 이런 사실을 간파하고, 기갑부대를 앞세워 이쪽을 공략해 쳐들어 와 프랑스를 무릎 꿇렸다. 마지노선은 힘없이 붕괴됐다. 더욱이 이 요새에는 사람이 지내기 힘든 환경 탓에 적정 인원이 근무하지도 않았다. 방어 요새라는 이름이 무색했다. 현재 프랑스는 이 요새들을 와인 저장고, 버섯 재배소, 현장학습 견학장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 유럽대륙을 연결한 ‘대서양 장벽’ - 노르웨이 최북단에서부터 프랑스의 최남단까지, 나치는 자신들이 영향력을 미치던 유럽 대륙의 대서양 해안선 전체를 장벽으로 둘러치려 계획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벌어지던 무렵까지 장벽에는 1000만톤의 콘크리트와 100만톤의 철재가 퍼부어졌고 70만명의 병력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독일의 패전으로, 완성된 장벽은 당초 목표치의 10분의 1도 안되었다고 한다. 

 

* 유대인 억류장 ’게토‘ - 16세기가 될 때까지도 유대인들은 개인 자격의 거주는 허용되어도 집단으로 모여 사는 일은 엄하게 금지되었다. 잉글랜드 프랑스 에스파냐는 아예 유대인이 한 명도 살 수 없는 곳이었다. 신학자들은 유대인들을 ’음탕하고 탐욕적이며 배신 잘하는 강도들이자 약탈자’로 매도했다. ‘공작소’라는 뜻의 게토는 오직 유대인들만이 살아가는 도시 속 또 하나의 도시다. 이것이 부활한 것이 히틀러 때문이었다. 박멸하기에 너무 규모가 커 시간이 걸리니 격리해서 수용 공간을 만든 것이 계기였다. 가장 많은 유대인 거주민을 수용했던 곳이 바로 폴란드의 바르샤바 게토다. 3.4제곱킬로미터에 40만명이 모였다고 한다. 추위와 굶주림, 멸시 속에 바르샤바 케토에선 2년만에 8만의 사망자가 나왔다.

 

* 유대인 탈출을 막으려던 ’게토 장벽‘ - 나치는 이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장벽을 세우기로 한다. 이곳에 억류된 유대인 가운데 두 달 사이에 30만명의 유대인이 처형되는 등 ‘죽음의 게토’였다. 참다 못한 유대인들은 1943년 4월19일 유대민족이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탈출했던 유월절 전날에 일제히 봉기를 일으킨다. 폴란드 총독부는 탱크를 동원하며 말살정책을 편다. 1948년 4월 게토 봉기 5주년을 맞아 최초의 봉기가 일어난 지점에 ‘유대인 영웅비’가 세워졌고, 1970년 11월7일에 서독 수상 빌리 브란트는 이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동포들의 죄악을 사죄했다.

 

* 냉전의 상징 ’베를린 장벽‘ - 1944년 9월12일 나치 영토 문제를 처리하러 모인 미국과 영국 소련 프랑스 4개국이 런던 의정서에 합의한다. 베를린을 연합군의 공동관리 대상으로 삼기로 한 것이다. 독일을 분할 점령한다는 포츠담 선언 원칙에 따르면 이후 동독 지역으로 불리게 될 베를린도 소련 점령지구에 포함되어야 했다. 하지만 유럽이 소련에 지나치게 기울 것을 우려한 서방들의 입장을 고려해 4분할 체제로 관리키로 한다. 이후 소련에 반대하는 조짐이 확산되자 소련의 후르시초프는 1961년 8월12일 베를린을 양분하는 장벽을 하루 밤 사이에 지어버린다. 

 

* 말 실수로 무너진 베를린 장벽 - 1989년 11월9일 오후 7시 무렵, 동독 통일사회당 베를린 지구당 제1서기 귄터 샤보프스키가 내외신 기자들 앞에서 “통일사회당 정치국은 동독의 모든 주민이 동독 국경을 넘어 여행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당초는 동족인이 서독을 방문하려면 체코 쪽으로 들어갔다가 서독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을 간소화해 주겠다는 의미였는데 이것이 동독 국경의 완전 개방으로 오인되어 보도되면서 사태가 커졌다. 

 

* 돈벌이가 된 비극의 잔재 - 무너진 장벽은 그 뒤 상품으로 변모한다. 빌리 브란트 전 수상을 비롯해 원형 그대로 보전해야 한다는 주장 있었으나, 흉물이니 깡그리 없애 버리자는 의견도 팽팽했다. 결국 동독 임시정부는 민간 건설사를 매개로 내세워 해외 구매자들에게 베를린 장벽을 조각조각 팔기로 결정하기에 이른다. 

 

* 장벽 없는 한반도 군사분계선 - 6.25 전쟁의 휴전을 맞으면서 처음 쟁점은 휴전선을 어떻게 긋느냐는 것이었다. 북한과 중국은 38도선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했고, 미국 등은 현재 각자가 점령하고 있는 선을 근거로 삼자고 주장했다. 문제는 개성이었다. 문화적 의의가 큰데다 서울과 지척이라 남북한 모두 원했다. 유엔군이 웅진반도와 개성을 포기할 것으로 감지한 우리 군은 자체 병력 만으로 개성을 공격했다가 패퇴하기도 했다. 결국 1953년 7월24일, 서쪽의 임진강 하구에서 동쪽의 고성을 잇는 248km의 군사분계선이 최종 합의되고 사흘 후 판문점에서 조인식이 이어졌다. 장벽은 없고 군사분계선 임을 알리는 1292개의 말뚝만 존재한다. 당초 해상 경계선에 관한 협의는 없었는데, 1953년 8월30일에 유엔 군이 북방한계선NLL을 일방적으로 설정했다. 그래서 아직까지 분쟁의 소지로 남아 있다.

 

* 유대와 팔레스타인 갈등의 역사 -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은 야훼가 조상들에게 준 약속의 땅이다. 이곳에 국가를 세우자는 ’시오니즘‘ 운동이 1890년대 처음 시작된 이후 1917년 영국은 벨푸어 선언을 통해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들의 국가를 수립하는 일에 최대한 돕겠다고 천명했다. 결국 1947년 11월29일 유엔 총회가 팔레스타인이 유대인과 팰레스타인 아랍인의 두 국가를 세우고, 예루살렘과 베들레햄은 신탁 통치구역으로 만든다고 결의한다. 그때까지 유대인은 그 땅의 6% 남짓만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56%를 떼어주라 결정하니 팔레스타인인들은 분노할 수 밖에. 그러나 유대인들은 나머지 땅도 모두 차지하려 인종 청소까지 자행했다. 마치 나치 때의 분풀이를 하려는 것처럼. 1988년에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가 독립을 선포하고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를 영토로 삼고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삼는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 팔레스타인 분리장벽 - 이스라엘 영토와 요르단강 서안 지구를 분리하고 있는 총 730km, 높이 8m의 장벽이다. 도시 지역에는 콘크리트로, 농촌에서는 철책으로 만들어졌다. 2001년 총선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의 샤론 총리는 팔레스타인의 테러에서 국민들을 보호해야 한다며 대 테러 장벽 건설 구상을 처음 밝혔다. 이것이 서안지구를 거대한 감옥으로 만드는 장벽이 된다. 후임인 기론 총리는 기존의 장벽을 연장해 서안 지구와 요르단 사이의 경계에도 장벽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것이 실현된다면 서안 지구는 완전히 장벽으로 둘러싸인 ’계토‘가 될 판이다. 

 

* 난민 인정률 - 1951년에 맺어진 난민조약에 의한 난민의 정의는 ‘인종 종교 국적 또는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받을 우려가 있다고 충분한 이유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한 자’이다. 천재지변이나 빈곤 등의 이유로 살던 나라를 떠난 이들은 난민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일부 국가나 인권단체에서 이들도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요지부동이다. 세계 평균 난민 인정률은 5% 수준이락 한다. OECD 회원국도 평균 7% 수준이다. 한국은? 약 3%에 불과하다.  

 

* 난민 장벽의 나라 인도 - 2004년에 북부 카슈미르 지역에 550km의 장벽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동쪽으로 방글라데시 국경에 3268km, 서쪽으로 미얀마 국경에 1624km의 난민 차단용 장벽을 건설 중이다. 카슈미르는 인도 파키스탄 중국의 분쟁 지역이다. 인도는 파키스탄과 싸우면서 2004년에 공사를 마친다. 인도 정부는 “이 장벽 덕분에 파키스탄 밀입국자가 80% 줄었다”고 발표했다.  

 

* 사우디도 난민 방어용 장벽 건설 - 아랍 최대 국가 사우디아라비아도 2004년에 예맨과의 국경에 75km 난민 장벽을 건설했다. 예맨의 비옥한 땅을 노린 열강들의 계속되는 침략으로 어려움을 겪던 예맨에서는 꾸준히 대량의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는 제주도에 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사우디는 앞으로 시리아와 요르단 등과의 국경에도 장벽을 쳐서 6500km에 이르는 국경선 전체를 장벽화한다는 계획이다. 

 

* 미국의 멕시코 장벽 - 1980년대말 미국 경제의 성장세가 수그러들며 실업률이 높아지자 “외국의 불법 체류자들이 미국인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목소리 높아졌다. 이에 1990년대 초에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샌디에이고-리후아나 자역에 65km 장벽을 세우기로 결정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트럼프 장벽은 본래 부시 장벽이었다고 한다. 2006년 국경장벽법이 통과되었을 때 대통령이 부시였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인 2017년 1월20일에 국가 장벽 즉시 건설을 촉구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트럼프의 장벽 구상에 따르면 미국 남부 국경에 509km 장벽을 새로 세우고, 기존의 장벽을 보강하는 655km 장벽을 또 세우게 된다. 3219km에 이르는 미국-멕시코 국경을 철통 봉쇄하겠다는 것이다.

 

* 중국의 사이버 만리장성 - 중국은 2016년에 사이버 보안법을 만들어 2017년 6월부터 발효시켰다. 인터넷 실명제 도입과 함께 네트워크 운영자에게 중국 보안 규정 준수 책임을 부과하고, 보안을 이유로 한 공안당국의 네트워크 검열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중국에서 획득한 데이터는 중국 내에서 보관해야 하며, 사업상 꼭 필요하다면 중국 정부의 허락을 얻어 해당 데이터를 사용해야 한다고 의무화했다. 중국은 가만히 앉아서 방대한 자국민 신상정보를 입수할 수 있데 되는 셈이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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