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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코로나 블루, 코로나 레드

입력 2020-09-13 14:38 | 신문게재 2020-09-1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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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경 예담심리상담센터 대표·교육학 박사

재택근무하는 남동생이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는 것에 분개한 여성이 동생을 흉기로 찔러 입건된 일이 있다. 반복되는 가사와 육아가 답답해 바람을 쐬러 가자고 했다가 남편과 시비가 붙은 아내가 폭행당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일도 있었다. 집안일과 육아를 남일 보듯 하는 남편과 언성을 높이며 싸웠다거나 사사건건 잔소리하는 아내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다는 하소연도 온라인에 줄을 잇는다.

코로나19로 인한 우울이 분노로 변질되기도 하면서 ‘코로나 레드’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코로나19 장기화, 이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외부인과의 만남은 줄었지만 가족구성원 간의 접촉은 현저히 늘고 있다. 가족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자 지나친 관계 밀착이 주는 피로감이 불만과 불화를 넘어 폭력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물리적 거리가 비자발적으로 좁혀질 때 심리적 거리는 양 극단으로 좁혀지거나 멀어진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유대감을 극대화하기도 하지만 불화나 폭력으로 치닫기도 한다. 여름휴가나 크리스마스 연휴 직후가 이혼률이 가장 높은 시기임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의 경우 명절 모임을 떠올려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지나치게 가까이 있으면 단점들이 눈에 더 잘 보이며 다투게 된다. 제한된 공간 안에서 생활하면서 서로 접하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상대의 부정적인 부분에 더 민감해지곤 한다. 이에 피로감이 증가하며 공격성이 나타나기 쉬워진다. 상담을 하다 보면 ‘대부분 별 것 아닌 일로 짜증을 내게 되고 언성을 높이게 된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겪게 되는 심리적 압박에 따른 변화를 ‘고립효과’라고 한다. 처음엔 잘 지내다가 사소한 일로 감정조절을 하지 못하며 점차 격한 행동과 감정이 표출돼 극단적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남극형 증후군’(Winter-over Syndrome)이라고도 한다. 밀폐된 장소에서 지내는 사람들 간에 공격성이 높아지는 현상으로 남극에 파견된 연구원과 군인들에게 발견돼 연구가 시작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주공간에서 우주인으로 생활하거나 하숙방을 같이 사용하는 것처럼 좁은 공간에서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장시간 고립된 생활을 할 때는 스스로와 잘 지내는 ‘고독감’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만의 시공간 확보다. 누구에게나 기본적인 ‘개인거리’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이를 침해받을 때 불편함을 느낀다. 빈자리가 많은 지하철에서 굳이 내 옆에 앉는 사람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것처럼 좁은 공간이라도 개인거리가 유지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의 시간과 공간을 보장해주고 인정하며 타협할 수 있어야 한다. 사생활이 그대로 노출되는 관계지만 지나친 간섭이나 다그침은 자제해야 하며 식사시간이나 집안일 분담 등 지켜야 할 규칙을 정하는 게 좋다.

나만의 시간과 공간은 인간에게 재충전을 위한 최소한의 휴식이다. 가족 간 불화의 위협으로부터 나와 가정을 지키기 위해 가족 간의 심리적 거리 두기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안미경 예담심리상담센터 대표·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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