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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r Play 인터뷰] 연극 ‘나, 혜석’ 이기쁨 연출·한송희 작가 “아주 정확하게 여자 얘기!”

입력 2020-10-2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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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송희 이기쁨
연극 ‘나, 혜석’의 한송희 작가(왼쪽)와 이기쁨 연출(사진=이철준기자)

 

“아주 정확하게 여자 얘기예요. 공연하면서 여성 서사 중심 극을 많이 해왔지만 아주 명확하게 ‘페미니즘 연극’이라고 공언하긴 처음이에요.”

애초 9월 11일 개막 예정이었지만 교회·815 집회 발(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온라인 공연을 앞두고 있는 ‘나, 혜석’(10월 26일)의 이기쁨 연출은 작품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연극 ‘나, 혜석’은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줄리엣과 줄리엣’ ‘헤카베’ 등에서 작가·배우, 연출로 호흡을 맞춘 한송희·이기쁨 콤비작이다. 화가이자 작가,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이자 여성 인권의 선두에 섰지만 문제적 인물로 ‘낙인’ 찍히기도 했던 나혜석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노골적인 직접화법, ‘나, 혜석의’ 엔딩
 

이기쁨 연출
연극 ‘나, 혜석’ 이기쁨 연출(사진=이철준기자)
이기쁨 연출의 말처럼 뮤지컬 ‘난설’, 연극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헤카베’ ‘줄리엣과 줄리엣’ 등 필모그래피의 상당 부분이 여성 중심 서사극인 이기쁨 연출은 “여자 이야기” “페미니즘” 보다 “인간의 삶” “우리 이야기”를 언급해 왔다.

“완벽하게 (페미니즘, 여자 등)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고 어떤 부분에서는 강한 이미지로 표현되기도 해요. 특히 엔딩 장면은 그 뜻을 정확하게, 대놓고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노골적인 직접화법이죠.”

이기쁨 연출이 예로 든 마지막에 대해 한송희 작가는 “노골적으로 썼다가 중간에 삭제했던 장면”이라며 “이기쁨 연출이 도리어 ‘왜 삭제 했냐’고 해서 다시 살린 엔딩”이라고 말을 보탰다. 이에 이기쁨 연출은 “그 엔딩이 이 이야기의 핵심 키워드라고 생각했다”며 “대본을 정리하고 연습을 해 나가면서 (그 장면으로) 힘을 더 받기도 했다”고 부연했다.

“에둘러 얘기할 게 아니라 다이렉트로 얘기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약간의 시간 교차가 있기도 하지만 나혜석 이야기를 과거부터 밟아나가는 형태로 이뤄져 있어요. 젊은 시절, 3, 40대, 50대 이후까지 3명의 나혜석 이야기를 2020년에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가 이 극의 ‘키포인트’였거든요.”

이에 “그 엔딩 이미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기쁨 연출은 “그 생각을 공고히 하면서 이전에는 쓰지 않던, ‘명확한 페미니즘 극’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기쁨 연출의 설명에 한송희 작가는 “물리적으로 압도되는, 원하는 그림이 있었다”고 말을 보탰다.

“인해전술(?)로 하고 싶었는데 구현이 좀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고, 항상 했던 게 아니라 좀 다른 방법으로 가야할까, 너무 노골적일까…고민이 많았죠.”

한송의 작가의 말에 이기쁨 연출은 “직접 만나 뵙지 못했으니 추측과 역사를 근거로 하는 예상이지만 나혜석이 했던 말들, 행동들 등에 대해 왜 이런 말을 하게 됐는지, 무슨 마음이었을까 등의 연구가 기본적인 시작점이었다”고 부연했다.

한송희 작가
연극 ‘나, 혜석’의 한송희 작가(사진=이철준기자)

 

“그 마음이 현시대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연결지점이 보였어요. 그럼 앞으로 우리는 어떤 액션을 해나가야 하는가 라는 지점이 확연하게, 시각적·물리적으로 에너지를 더 받으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기쁨 연출의 “현대와의 연결감”이라는 표현에 한송희 작가는 “엔딩은 결국 나혜석의 죽음”이라며 “그분에 대한 평가는 아주 다양하지만 거리에서 돈 없이 비참하게 행려병자로 죽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을 보탰다. 이어 “고소해 하거나 안타까워하거나 분노하는 등 태도는 달라질 수 있지만 그 죽음 자체를 불행하고 비참한 것으로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저는 좀 다르게 부여하고 싶었어요. 분명 안락해보이지도, 평온해 보이지도 않는 결론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 가치가 없고 비참해서 쳐다보기도 싫은 결론일까 싶었거든요. 그렇다면 100년 뒤의 내가 그 죽음의 값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뭘까를 고민했어요. 어쩌면 그녀가 정말 원했던 것도 (죽음의 값을 높이는) 그것이지 않을까…너무 와닿았고 제 마음이 그러했어요.”


◇오롯이 나로 산다 ‘나, 혜석’
 

한송희 이기쁨
연극 ‘나, 혜석’의 한송희 작가(왼쪽)와 이기쁨 연출(사진=이철준기자)
“여성의 삶을 다루는 건 맞아요. 나혜석 얘기를 하면서 중심이면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나로 산다‘였어요. 내가 원하는 나로서 존재를 찾는 삶이었죠. 그래서 제목도 ’나, 혜석‘이에요.”

작가이자 화자 역할의 박인경을 연기하는 배우이기도 한 한송희는 이렇게 말했다. 이어 ‘나, 혜석’에 대해 “페미니즘 연극이라고 할 수 있는 1번은 나혜석의 삶 자체가 그러했기 때문”이라며 “그의 삶을 다루는데 ‘페미니즘은 아니다’는 안맞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나혜석에 대해 “당시에는 튀고 후대의 평가는 ‘앞서 나간다’이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이나 행동을 한 사람”이라고 표현하며 “계속 흔들리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걸 찾으려고 노력했던 분”이라고 정의했다.

“그 모습 자체가 자신을 찾으려는 인간이었어요. 나혜석이 여성이기 때문에 가진 특수성도 물론 있죠. 하지만 남자 주인공이면 ‘남성 이야기’일 뿐 아니라 ‘인간 전체의 이야기’라는 수식어를 굳이 붙일 필요가 없잖아요. 하지만 여성의 이야기는 마치 하위 카테고리처럼 ‘여성 뿐 아니라 인간이야기’라고 늘 어필했던 것 같아요. 저마저도. 여성은 인간이고 그러니 굳이 ‘인간이야기’라고 부연하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어요.”

그리곤 “여자나 남자나 사람이나 다를 게 없는 존재들”이라 항변한 한송희 작가는 “그들을 둘러싼 환경 속에서 오롯이 나 자신으로 산다는 건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어떤 선택이든 다 현명한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서 오는 고뇌나 좌절 등도 우리가 보편적으로 겪는 것들이에요. 내 의지를 꺾어야 할지, 합의점을 찾아야할지, 그럼에도 어떤 선택을 해야 나다운가는 오랜 이어져온, 많은 사람의 고민거리기도 하거든요. 나혜석이 살았던 시대에는 돋보이는 존재였지만 지금 현재를 사는 우리는 모두 그런 고민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죠.”


◇3명의 혜석 그리고 구술자 박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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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나, 혜석’의 이기쁨 연출(사진=이철준기자)

 

“이번에 제가 연기하는 박인경은 캐릭터적으로도, 기능적 부분에서도 처음해보는 종류의 역할이에요. 계속 무대 위에 상주하면서 계속 관찰하는 인물이죠. 제 정서를 인물과 직접적으로 부딪히지 않은 역할은 거의 처음인 것 같아요.”

한송희 작가의 설명처럼 박인경은 “현재도 파리에서 살고 계신 (동양화가 고암 이응노 화백의 미망인) 박인경 화백에서 영감 받은 인물”로 “마치 작가의 입장으로 3명의 혜석(박무영·최나라·정새별)과 거리를 두면서도 인물로서 어떻게 다가갈까 다양한 시도를 했다.”

“원래는 4명의 혜석이었어요. 너무 다양한 모습이셨고 많은 일들을 하셨잖아요. 신여성, 도쿄유학생으로서 활기차고 주목받던 시절, 화가로서 밖에선 인정받았지만 워킹맘으로서의 모습, 이혼 후 지탄받으면서 이겨나가려는 예술가·작가적 모습, 인생 말년에 병들어 떠돌이로 살았던 시절 등을 분배해 교차시키고 싶었죠.”

하지만 지나치게 퍼져나가 산만해지기까지 해져버린 이야기에 3명의 혜석으로 정리했다. 이에 대해 한송희 작가는 “어머니, 작가, 화가, 딸, 부인 등으로 나눠지기 보다 어떤 자양분을 통해 이런 선택을 하게 되면서 이르게 되는 모습들의 교차”라고 설명했다. 

 

한송희
연극 ‘나, 혜석’의 한송희 작가(사진=이철준기자)
“나혜석 선생님은 대단하시지만 평가를 떠난, 구체적인 선택들을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어요. 어떤 부분은 지탄받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것도 있고 왜 저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는 부분이 지금도 있어요. 그런 면면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한송희 작가의 말처럼 모두의 삶은 모순이기도 하지만 모순이 아닌데 편견으로 뒤틀리거나 왜곡된 평과 시선들의 결정체다. 한송희 작가는 나혜석의 ‘모성애’를 예로 들었다.

“그 분이 하신 ‘자식은 모체의 살점을 뜯어 먹는 악마’라는 표현 때문에 모성애가 없는 사람처럼 돼버렸어요. 하지만 사실 ‘백결선생에게 답함’이나 ‘어미된 관상기’ ‘내가 어린애를 기른 경험’, 각종 잡지의 기고글 등을 보면 기르는 과정에 대한 고통은 물론 자식에 대한 사랑 고백도 아주 솔직하게 해두거든요. 잘라서 보는 거죠.”

이어 “가장 강렬한 단어만을 보고 가져다 그렇게 치부했지만 사실은 모성애가 깊었던 분”이라며 “돌도 안된 자식을 떼어 놓고 세계 유람을 가는 비정한 어미=죽일 사람이 되는 편견”이라고 덧붙였다.

“그분이 남긴 말, 글, 작품들을 들춰보면 자식에 대한 사랑과 나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어요. 말년엔 오히려 자식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병이 들다시피하는데…그런 것들이 흥미로웠어요. 나를 찾는 데 집중하고 ‘자식을 기르는 게 내 전부는 아냐’라고 한다고 해서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거든요. 하지만 이들을 동급으로 두는 사람들이 지금도 너무 많잖아요.”

한송희 작가는 “모순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모순이 아닌 부분들을 교차시키고 있다”며 “10대의 나혜석은 ‘나는 애를 못낳을 것 같아’라고 하지만 말년에는 경찰에 끌려가면서도 자식 얼굴을 보려고 빌다시피하는 모습들도 겹친다”고 부연했다.

더불어 불륜에 대해 “이기적이기도 하지만 당시는 사랑에 대한 개념이나 감정 표현 자체가 전무하던 시대”라며 “나혜석 선생님의 ‘행복을 발명했다’는 표현이 있는가 하면 ‘내가 뭘 느끼는지 알아야 인간다운 삶’이라는 굉장히 철학적인 지점도 있다”고 말을 보탰다.

“이해 못할 사랑이라고 나혜석 선생님에게 가해지던 억압이나 폭력 속에 놓이게 만들어야할까? 이건 현재랑도 붙어 있는 질문 같아요. 여자들이 자신의 의견을 얘기할 때 말과 시선들로 죽임을 당하기도 하잖아요. 그렇게 현재와 맞닿는 부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 여자들이 실제로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을 가졌더라도 우리가 한 개인을 이렇게 묵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죠.”


◇가장 많이 던진 질문 “왜?”

한송희 이기쁨
연극 ‘나, 혜석’의 한송희 작가(왼쪽)와 이기쁨 연출(사진=이철준기자)

 

“왜 이 이야기를 해야 하지? 이 시기에 왜 나혜석이지?”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던진 질문은 “왜?”였다고 털어놓은 한송희 작가는 “처음엔 자극적인 표현들에 끌렸었던 것 같다. 블랙코미디를 해야지…아주 가벼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막상 열어보니 그럴 수 없었다”고 밝혔다.

“지금 제가 가장 두려워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나혜석 선생님도 그 시대에 같이 고민하고 있더라고요. 여자로서 말하는 것, 소리내는 것…어떤 때는 안하고 싶기도 하거든요. 원래는 그러지 않았어요. 하지만 여기저기 데이고 지치고 힘은 빠져버리고…웃고 말지 뭐, 싶은 생각이 들곤 해요. ‘내 의견 말 안하지 뭐, 내 의견이 뭐 그렇게 중요하다고 세상이 다 알아야 해?’라고 포기해 버릴까 싶기도 했죠.” 

 

나,혜석  포스트 이미지
연극 ‘나, 혜석’ 포스터(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그리곤 “나혜석 선생님이 ‘조선의 소녀들아, 너희들이 후대에 내 생각과 같이 따라올 것’이라는 글이 너무 신기했다”며 “어떻게 이렇게 자기 확신에 가득 차 있지? 그런 확신을 가진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는 오롯이 나로 서는 선택과 발언 그리고 개인의 삶이 사회에 미치는 힘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제가 계속 글을 쓰고 배우로 살아간다면 작품을 통해, 인간으로서도 무언가를 말하겠죠. 그 말을 하는 데 어떻게 두려움을 이겨나갈지를 고민하게 됐어요. 제가 하는 말이 사회를 위한 발언이든 아니든 제 선택이, 제 말 하나하나가 어떤 사회를 만드는 조각이 되는 거잖아요. 그것이 두렵고 무거워서 숨는다면 사회의 모양이 어떻게 돼도 상관없는 개인이 돼버리는 거잖아요.”

한송희 작가의 말에 이기쁨 연출 역시 “이 분이 왜 이 글을 썼을까? 이 말을 왜 했을까? 꾸준히 질문했다”며 “나혜석의 이야기를 해보자 혹은 하고 싶다고 한 지는 꽤 오래 전이었고 (한)송희는 ‘너는 별로 안좋아할 거야’라고 했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안좋았고 이해가 어려웠어요. 가치관은 이해하지만 심정적으로 안따라가지는 상황, 마음으로 닿는 데까지가 오래 걸렸죠. 아이디어 회의를 하면서 계속 물었어요. 왜 그랬대? 저 뿐 아니라 배우들도 계속 질문을 했어요. 계속 질문을 하다 어느 순간, 알아지는 지점들을 넘어서면서부터 그들(다양한 혜석들)에 대한 사랑이 무한으로 생겼어요. 마냥 편들어주고 싶고…희한한 지점이었죠.”

이어 이기쁨 연출은 나혜석 배우들조차 잘 넘어가지지 않던, 온전히 마음으로 맞닿은 경계에 대해 “전후 상황들, 시대에 대한 실제적 정보와 지식이 필요한 지점”이라고 표현했다.

“2020년과는 다른 사고의 지점에서 1차 이해를 하고 그래서 이 사람이 여기까지 흘러 왔구나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됐죠. 그럴 수 있겠다, 그럼 너무 힘들었겠다, 나도 지금 이렇게 힘든데…지식이 탑재된 후에는 구태여 부연설명도 필요없게 모든 것이 바로 이해됐어요.”

그리곤 “지식이나 전사가 중요한 극들은 연출이 너무 힘들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기쁨 연출은 “그래서 송희 작가한테 글 안에서 정리할 수 있는 부분은 요청을 많이 했던 것 같다”며 “조금 말이 많고 지루하게 느껴지더라도 요만큼의 정보는 있어야만 다음 혜석이 이해되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이기쁨 연출
연극 ‘나, 혜석’의 이기쁨 연출(사진=이철준기자)
“송희 작가는 불편했는데 제가 요청해서 넣은 장면도 있고 약간 말이 많게 느껴지는 지점도 있어요. 관객들이 이 사람을 감정적으로 따라갈 수 있게 만드는 최소한의 정보들을 가지고 글의 밸런스를 맞추려고 노력했죠. 추가적인 정보가 있다면 더 깊게 보실 수 있겠지만 혹여나 부족하더라도 이 이야기 흐름 안에서는 이해할 수 있게끔 만들고 싶었거든요.”


◇수많은 버전의 대본과 들어엎기(?)…나혜석 선생님이 ‘나, 혜석’을 보신다면?

“대본을 쓰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어요. 인물은 너무 매력적이고 한두개의 캐릭터로 끝날 수 없는 복잡한 사람이고…그 복잡함을 이고지고 놓지 못한 채 계속 불안해했죠.”

한송희 작가는 대본 집필 과정에 대해 “불안의 연속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나는 재밌는데 재미없으면 어떻게 하지, 나혜석 선생님께 실례가 되면, 잘못된 시각이면 어쩌지…부담감이 너무 컸다”고 털어놓았다.

“공황이 올 것 같은 지경이었어요. 배우들과의 대본 리딩이 끝나고도 ‘잘못된 것 같아’라고 할 정도였죠. 원래 수정 폭이 크지 않은 편인데 수많은 버전의 대본들을 썼어요. 다른 작품들이 A버전의 각색 정도인 A-(대시) 대본이라면 ‘나, 혜석’은 A, A-, B, C, C-….”

말을 잇지 못하는 한송희 작가에 이기쁨 연출은 “이제껏 쓴 대본들 중 가장 오랜 기간 작업했고 수정기간도 길었다”며 “들어 엎는 수준이었다”고 말을 보탰다.

“나혜석이 부딪혀야하는 난관들이 굉장히 많이 나와요. 어려운 과정들과 대면하며 가슴 아프고 힘든 순간들, 갈등들의 등장에 대한 고민이 너무 컸어요. 수정 전 네명의 혜석이 나올 때는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서 계속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죠. 근데 이게 실제 있었던 일들이라는 사실이 또 너무 힘들었어요.”

한송희
연극 ‘나, 혜석’의 한송희 작가(사진=이철준기자)

 

이기쁨 연출은 “극으로 보여줘야 하는 연출 입장에서는 너무 어려웠다”며 “힘든 얘기들만 줄줄이 할 수도 없고 굴곡을 어느 정도까지 안배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이 사람이 왜 이런 사고를, 말을 하게 됐는지 설명하지 않고는 해결이 안나는 거예요. 그렇다고 설명 없이 줄줄 늘어놓을 수만도 없고…인물을 해치지 않으면서 이야기를 재밌게 보여주기 위한 고민을 엄청 오래 했죠. 대본을 크게 수정하고 뒤엎었던 것도 그래서예요. 지금의 대본은 작가, 연출, 배우들이 합의한 대본이지만 관객들이 어떻게 봐줄까, 만약 나혜석님이 극장에 오시면 어떻게 보실까…계속 걱정이 많이 돼요.”

 

그 과정에 대해 한송희 작가는 “이전 작들인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줄리엣과 줄리엣’ ‘헤카베’ 등은 모두가 알고 있는, 스테레오 타입이 명확하게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꺾어도 됐다”며 “남들이 틀렸다고 해도 ‘아니, 난 이렇게 생각하는데’라고 꺾는 재미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나혜석 선생님은 실존인물이시잖아요. 내 시선으로 맘껏 재단할 수 없기 때문에 조심스러웠어요. 대본을 쓸 때의 저는 ‘내가 이 사람이라면’이라는 가정 하에 내 뜻대로 쉽게 운전하고 쉽게 몰입하고 바로 빠져나오곤 했어요. 그런데 ‘나, 혜석’은 전 과정이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제가 나혜석이 아니니 박인경으로서 정확하게 모르겠는 이 사람의 마음을 계속 살펴야 했기 때문인 것도 같아요.” 

 

이기쁨 연출
연극 ‘나, 혜석’의 이기쁨 연출(사진=이철준기자)

 

이어 “나혜석 선생님에 대한 논문, 평가 등에서 교묘하게 깎아내리는 부분들을 발견했다”며 “그 평들이 진짜인지, 다양한 꺼풀을 뒤집어 쓴 것들인지…레이어들이 너무 많아서 그걸 걷어내는 작업들이 정말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이 사람, 나혜석의 목소리가 1번이라고 생각하고 보는 게 어렵더라고요. 내가 아닌 상태에서 이 사람 말을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이 돼보자 싶었죠. 본인이 쓴 글과 말들은 자기 미화를 시킨 부분들도 없지 않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들이 상당히 많거든요. 대본을 쓰면서 자극받기 좋은 표현들, 미화의 길로 빠지기도 했어요. 편을 들고 싶어졌거든요. 그렇게 했더니 나혜석이 누군지 안보이고 두둔하는 글을 쓰게 돼버리고, 이 여자를 향한 비난이 마치 나를 향한 것 같고…힘들었어요.”


◇페미니스트 한송희, 중립적인 이기쁨…이해되는 동시에 이해되지 않는 ‘나, 혜석’의 삶
 

한송희 이기쁨
연극 ‘나, 혜석’의 한송희 작가(왼쪽)와 이기쁨 연출(사진=이철준기자)
“창작자로서 저는 페미니스트예요. 하지만 늘 조심스러워요. 어떤 지점이 왔냐면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들이 저를 편견으로 적대시할까봐 두려워졌어요. 그들이 네가 얼마나 올바른 페미니스트인지, 너의 창작물에 얼마나 오류가 많은지 검열하는 존재들로 다가오기 시작했죠.”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표현한 한송희 작가는 “예전에는 저와 반하는 존재들과만 싸우면 됐는데 이제는 제 안에서도 부딪혀 스스로 말을 안하게 한다”고 토로했다.

“어떤 때는 뭘 느끼는지도 통제 당한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지금의 저도 ‘저러면 안되지 않나’ ‘저 정도는 괜찮지 않나’ 등 제 생각에 대한 의심으로 불안하고 작게 만들고 소리를 못내게 만드는데 나혜석 선생님은 그 시대에 어떻게 그런 말들을 할 수 있었는지…. 그에게 불안이 없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그럼에도 스스로 뭘 원하는지를 끝까지 생각해서 발화시킨 거죠.”

이어 “처음 ‘대단한 여자’로 거리를 뒀을 때는 괴로움이 덜 했다”며 “어느 날 이 사람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면서 결론에 도달하고 있는지가 느껴지면서 지금의 우리랑 같은 고민을 했던 사람임을 깨달았다”고 부연했다.

이기쁨 연출은 “제 개인의 성향은 굉장히 안전주의, 중립적인 태도를 가지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며 “송희 작가랑 얘기하다 보면 대척점에 있을 때가 많기도 하다”고 밝혔다. 이어 “송희 작가는 어떤 부분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논해야하고 직시해야하는 지점들이 많은 반면 저는 미뤄두거나 비껴두거나 너무 강하게 얘기하는 걸 불편해하는 성향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 보니 우리가 글을 쓰면서 공부하고 연구한 나혜석님의 흐름과 제가 완전하게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기도 했죠. 오래 고뇌하고 깊이 파고 들어가면서 생각의 고리가 확산되는 지점은 저와 비슷하지만 그걸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분이 나혜석님이죠.”

이렇게 밝힌 이기쁨 연출에 한송희 작가는 “오히려 저는 그런 지점을 얘기할 수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다”며 “좋은 건 좋은 거지만 어떨 때는 덜 무서워하고 말을 해야하는 순간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했다”고 말을 보탰다.

“나혜석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글을 쓰고 엄청난 양의 그림을 그리셨어요. 그럴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저라면 포기하거나 가만히 앉아 최대한 편안한 걸 찾았을 것 같거든요. 손은 떨리고 몸은 불편한 상황에서도 좋게 말하면 열정, 다르게는 집착이나 미련일 수도 있는 그런 부분들이 좀 멀다는 느낌이 들어요. 나혜석 선생님이 ‘나, 혜석’을 보신다면 어떠실까 두려우면서도 궁금해져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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