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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내가 '임계장'이다!

입력 2020-10-28 14:17 | 신문게재 2020-10-2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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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한국사회의 단골키워드 중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역동성’이다. 국경관문인 공항엔 어디서든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란 문구가 걸려있을 정도다. 밝고 활기찬 힘이 사회를 이끄는 에너지란 의미다. 다만 이제 시효가 끝난 듯하다. 한국도 한계효용 체감법칙처럼 성장이 멈추고 활력이 줄어든 성숙사회가 눈앞이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크게 갖겠다는 욕구실현 자체가 어려운 시대인 셈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몸과 옷의 맞춤은 갈 길이 멀다. 몸이 줄면, 옷은 헐렁해진다. 줄이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현실은 엇박자가 많다. 사회곳곳에서 목격되는 후진국형 갑질 논란도 그중 하나다. 도대체 왜 이럴까 싶은 몰상식한 행태가 반복된다. 대표적인 공간이 아파트다. 아파트 경비원을 향한 갑질은 잊혀질 만하면 등장한다. 해서 관심을 끈 게 최근 출간된 ‘임계장 이야기’란 책이다. 경비원 본인의 경험·소회를 담담하게 엮어냈다. 반면 내용은 놀랍다. 차별과 폄하, 그리고 굴종을 떠올리는 독자가 적잖았기 때문이다.

임계장의 삶은 차라리 소설이면 좋겠다. 실존하는 경비아저씨의 현장경험이 켜켜이 배인 에세이라 더 아프다. 한층 충격적인 건 임계장 스토리가 남 얘기가 아닐 수 있어서다. 저자조차 본인이 이렇게 환갑을 넘겨 임계장으로 불릴지 몰랐다고 고백한다. 더욱이 현역 때 그의 명함을 알면 더더욱 안타깝다. 38년을 공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일한, 비교적 잘 나가는 인생을 살아왔다. 안정된 고용에 임금도 적잖아 누구든 부러워함 직한 일자리였다. 그럼에도 현실은 아파트 경비아저씨, 임계장으로 불린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그렇다면 임계장은 왜 퇴직 후 4년째 시급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을까? 무슨 독특한 불행·불운이라도 닥쳤던 것일까? 대답은 아니다. 역시 평범한 인생살이에 가깝다. 해서 더 암시하는 바가 크다. 임계장은 퇴직이전에 딸 혼사에 저축 대부분을 썼다. 퇴직이후에도 3년 넘게 아들공부를 뒷바라지했다. 퇴직금은 일찌감치 중간정산을 받아 집 사는 데 썼다. 임금피크 때 나머지 퇴직금까지 받았다. 그래서 막상 그만둘 때 받은 목돈은 거의 없다. 퇴직소식은 채권자에게 더 빠른 법. 퇴직이후 신용대출 만기가 됐으니 연장해주지 않겠다는 통보가 왔다. 직장이 만들어준 신용이 사라졌으니 더는 해줄 이유가 없어서다. 그가 일자리를 찾아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쯤 되면 강 건너 불구경이라 여길 중·장년은 없을 듯하다.

임계장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이다. 한편에선 ‘고다자’로도 불린다. ‘고르기도 다루기도 자르기도 좋은 사람’이란 의미다. 그는 38년의 공기업·정규직 경력은 퇴직이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기억이라 품평한다. 고용권자의 질문은 ‘건강한지’와 ‘힘든데 할 수 있냐’로 요약된다. 하나 더 보태면 ‘몇살이냐’ 정도다. 임계장의 최대 후회는 노후생활을 위한 비상구를 만들지 않은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닌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는 비상구임을 뒤늦게 알았다. 책의 표현처럼 나이를 먹으면 온화한 눈빛을 원했는데 정작 현실은 핏발선 눈이었다. 은퇴시점에 떠맡겨진 거친 생계의 결과다. 과연 우리는 임계장의 가시밭길을 피할 수 있을까? 먹먹하고 묵직하다. 내일의 내 얘기가 아닐지 부인하기란 쉽잖다. “너도 공부 안하면 나중에 저 아저씨처럼 돼”란 젊은 아빠의 말이 내일의 임계장일지 모를 수많은 중년의 폐부를 비수처럼 찌른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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