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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 뮤지컬 ‘광주’ 민우혁 “무거운 박수소리, 먹먹한 가슴이 관객들에게 닿을 때까지 ‘님을 위한 행진곡’”

입력 2020-10-3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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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혁
뮤지컬 ‘광주’ 박한수 역의 민우혁(사진=이철준 기자)

 

“알면 알수록 가슴이 계속 먹먹해져요.”

40주년을 맞은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다루는 뮤지컬 ‘광주’(11월 8일까지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12월 11~13일 광주 빛고을 시민문화관)에서 시민 사이에 위장 투입돼 혼란을 겪는 편의대원 박한수 역의 민우혁은 당시를, 작품을 알면 알수록 “먹먹하다”고 털어 놓았다.

“그 동안의 공연들은 박수를 받으면 가슴이 후련하거나 그간의 고생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보상 받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광주’는 박수소리부터 달라요. 무겁다고 해야 할까요. 무거운 박수소리가 들리는데 저도 처음 겪는 일이라…‘먹먹하다’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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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광주’ 박한수 역의 민우혁(사진=이철준 기자)

민우혁을 먹먹하게 만드는 뮤지컬 ‘광주’는 미국 중앙정보부 CIA 문건이 공개되면서 30년만에 존재 사실이 드러난 ‘편의대’를 다룬 작품이다.

 

시민군으로 위장해 폭력을 부추기는 편의대원과 저마다의 방식으로 독재에 맞서는 광주 시민들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며 민주화의 가치를 일깨운다.

오페라 ‘1945’로 호흡을 맞춘 고선웅 연출과 최우정 작곡가가 다시 한번 의기투합했고 ‘팬레터’ ‘귀환’ ‘그날들’ 등의 신선호 안무가, ‘프랑켄슈타인’ ‘벤허’ 등의 이성준 음악감독이 힘을 보탰다.

폭동을 부추기기 위해 시민들 틈에 잠입한 5050부대 편의대원으로 이념의 변화를 겪는 박한수는 민우혁을 비롯해 서은광·테이(이하 가나다 순), 시민군을 조직하고 이끄는 야학교사 윤이건은 김찬호·민영기, 시민군들이 모여들었던 황사음악사 주인 정화인은 장은아·정인지, 투철한 신념의 소유자 문수경은 이봄소리·정유지·최지혜가 번갈아 연기한다. 

 

민우혁은 2011년 유네스크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어려서 어렴풋이 듣기는 했지만 크게 생각하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이 작품 때문에 이것저것을 찾아보면서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것들이 무대에서 관객에게 어떻게 보여질까 걱정도 됐어요. 처음 대본을 받아본 후로 정말 많은 수정 과정이 있었지만 너무 훌륭한 작품이라는 생각에 설레고 즐거웠어요. 빨리 관객들을 만나고 싶었죠. 막상 무대에 올라갔을 때는 기분이 이상했어요.”


◇빠른 전개, 급변하는 캐릭터, 무거운 책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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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광주’ 공연장면(사진제공=라이브, 극공작소 마방진)

 

“책임감도, 부담감도 있어요. 소재가 소재이다 보니 조심스러운 면도 있고 모두가 공감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분명 있어서…저는 박한수라는 인물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어요.”

이렇게 전한 민우혁은 “이 작품 자체가 특이한 게 대극장이든, 중소극장이든 보통은 주역들이 극을 끌어가는데 ‘광주’는 광주시민이 주인공”이라며 “인물도 많고 각각의 개연성을 만들려다 보니 어려웠던 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박한수는 편의대원으로 작전에 투입됐다 생각지도 못한 여린 존재들을 마주하게 되는 인물이에요. 야학생 오용수(이봉준), 문수경 등 나약한 존재들을 만나면서 겁을 주는 데도 왜 그들은 항복하거나 무릎을 꿇지 않고 용기내 싸우려 하는지, 무엇이 그들의 의지를 강하게 하는지를 고민하면서 흔들리죠.”

이어 “큰 사건을 두 시간 반 가량의 무대에 담기가 너무 어려웠다”며 “처음 연습을 하면서 굉장히 걱정이 많았고 전개가 너무 빨라서 애를 먹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민우혁
뮤지컬 ‘광주’ 박한수 역의 민우혁(사진=이철준 기자)

“박한수는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열쇠 같은 존재인데 어떻게 해야할지…그 어느 작품보다 (고선웅) 연출님과 대화를 많이 하면서 만든 작품이죠. 박한수가 변하는 계기를 설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악마같은 존재인 편의대원이 인간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입체적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전개가 너무 빨랐어요. 군인으로서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마음에 뜻하지 않은 폭력도 휘두르면서도 스스로가 악마가 되는지도 몰랐을 것 같아요. 그저 자신들이 하는 일이 옳다고만 생각했을 거예요.”


이어 “물론 다 박한수 같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어떤 사람은 정말 악마였을 거고 또 어떤 사람은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기도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민들의 눈을 보고 많이 흔들린 것 같아요. 용수에게 달걀을 쥐어주고 ‘저들은 왜 우리에게 화를 내죠’라는 문수경의 말을 듣고 계속 흔들리며 변화를 맞는 캐릭터를 만들기는 했지만 너무 전개가 빨라 모르시는 분들이 보기는 좀 어렵겠다 싶었어요.”

그리곤 박한수의 ‘마지막 임무’라는 넘버를 언급했다. 민우혁은 “박한수는 부마사태를 진압한 경험을 가진 베테랑 편의대원”이라며 “군인으로서든, 인간으로서든 그 경험이 좋지 않았고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지만 전역을 앞두고 다시 투입되는 심정을 담은 넘버”라고 소개했다.

“비트도 빠르고 신나는 노래인데 원래 인간이었지만 세뇌당한 악마 같은 군인, 다시 경험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수행해야하는 임무, 과연 임무 완수가 가능할까 등에 대한 고뇌를 담고 있죠.”

민우혁은 그렇게 고뇌하던 박한수가 편의대로 돌아선 변곡점으로 “허인구과의 대화”를 꼽았다. 그는 “시민군들을 살리겠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던 박한수가 허인구와의 대화 속에서 ‘너 지금 죽으면 시민군들은 너의 무덤에 침을 뱉을 거고 군인들은 배신자라고 손가락질할거야. 넌 아무 것도 아닌 게 되는 거야’라는 말을 듣고 스스로를 인식하게 되면서인 변화를 맞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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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광주’ 공연장면(사진제공=라이브, 극공작소 마방진)

 

“허인구의 그 말에 ‘아 맞다, 나는 이름도, 얼굴도 없는 편의대였지. 임무, 명령을 지키기 위해 여기 온, 처음부터 나는 존재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지’를 깨달으면서 처음으로 내 의지로 시민군에 들어가는 변화를 맞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고뇌하던 박한수는 결국 시민군과 함께 목숨을 내던진다. 이에 대해 민우혁은 “그 동안 자신이 했던 악마 같은 짓에 대한 죄책감을 덜기 위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면서도 “한편에서는 어찌됐든 박한수, 자신이 한 일”이라고 짚기도 했다.

“악마가 되기 싫었던 건 내(박한수) 사정일 뿐이에요. 박한수도 등장해서는 시민을 때리고 설득하고 박수도 치고 마지막 임무가 잘 마무리되겠다는 생각도 하거든요. 그래서 박한수의 마지막 선택이 용서를 받기 위한 행위 혹은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주면서 피해자인 것처럼 비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계속되는 수정 “그럼에도 사랑하게 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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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광주’ 박한수 역의 민우혁(사진=이철준 기자)
“처음엔 정말 이해가 안갔어요. 이 신이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이 사람과 이 사람은 무슨 개연성이 있어서 만나게 되는 건지, 이렇게 표현해도 안되고 저렇게 해봐도 안되고…런스루(처음부터 끝까지 해보는 연습)를 돌 때마다 바뀌는 통에 저 자신도 혼란스러웠죠.”

끊임없이 돌출되는 의문투성이들은 민우혁의 말을 빌자면 “잘 몰랐던 광주 이야기를 극 준비를 위해 공부하면서, ‘광주’ 트레일러 촬영을 위해 광주와 전남 도청을 방문해 실제로 마주하면서 이해되기 시작했다.”

“타국과의 전쟁도 아니고 어떻게 같은 나라 국민 사이에 이런 일들이 있을 수 있나 싶었고 분노가 치밀었어요.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가볍게 다루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대본 한자 한자 곱씹기도 했어요. 윤이건이나 시민군 역을 했으면 난리가 났을 거예요. 하지만 박한수 역을 하면서 피 끓는 분노를 이해하는 걸로 비춰지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곤 “그렇게 이해가 돼버리니 그렇게 믿고 했던 것 같다”며 “이야기는 들었지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자세히는 모르는, 저같은 사람들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분들이 이 작품을 봐주시면 좋겠다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막상 개막하고 보니 ‘우리가 너무 익숙해졌구나’ ‘이 일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어서 넘어가는 부분들이 많아졌구나’를 깨달았어요. 연습을 하면서 냉정하게 바라보고 판단해줄 사람이 없었던 것 같아요. 다들 대본을 숙지했거나 이 사건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계신 분들이다 보니 처음 광주를 마주하는 시각으로 짚어줄 사람이 없었던 거죠.”

결국 연습은 물론 프리뷰 공연 중에도 끊임없이 대본이 수정됐다. 민우혁은 “제 첫 공연과 두 번째 공연도 노선이 달랐다. 배우에게 대사가 바뀐다는 건 굉장히 힘든 부분”이라면서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대본을 분석해 개연성을 찾았지만 관객들에게 닿지 않는다면 수정이 맞는 것 같다”고 입장을 전했다.

“우리 작품이 계속 바뀔 수 있다는 각오는 이미 하고 있어요. 제 바람은 이 작품이 계속 바뀌고 바뀌어서 좋아지면 좋겠고 더 많이 사랑받았으면 좋겠어요. ‘광주’라는 작품을 너무 사랑하게 됐거든요. 1시부터 2시까지인 연습을 11시부터 나와서 저녁 9시 반까지 했던 적도 있어요. 그런 시간들이 너무 소중해졌고 ‘광주’를 사랑하는 마음도 커져 버렸죠.”


◇멋진 선장 고선웅 연출, 모두가 주인공인 배우들 그리고 어려운 넘버

고선웅 연출
고선웅 연출(사진=브릿지경제DB)

 

“고선웅 연출님은 ‘광주’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예요. 이번에 처음 함께 했는데 왜 배우들이 사랑하는 연출인지 알겠더라고요. 배우들 개개인의 생각을 다 들어 주시면서도 큰 그림을 가지고 계시죠. 배우들의 생각을 다 수용하는 건 아니지만 최대한 불편하지 않게 반영하면서도 큰 그림은 유지하는, 멋진 선장 같은 느낌이에요.”

이어 “리더십도 있고 연출가로서도 너무 훌륭해 반했다”며 “뭐든 연출님이 하시는 작품이라면 한번 더 같이 하고 싶다고 말씀드리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우리 작품의 관전 포인트는 배우들이에요. 배우마다 연기하는 인물들의 드라마를 너무 잘 해요. 연기를 너무 잘해서 연습할 때는 보고만 있어도 눈물이 나고 그랬어요. ‘내 것만 잘하자’가 아니라 이 배우랑 무엇을 주고 받을까가 너무 궁금해서 연습 내내 작품 얘기만 했죠.” 

 

_뮤지컬 '광주' 공연 장면(3) _제공 라이브(주), 마방진
뮤지컬 ‘광주’ 공연장면(사진제공=라이브, 극공작소 마방진)

 

이어 “볼거리 많은 주연들의 원맨쇼가 아니라 작품을 위해 모인 모든 배우들이 각자 자리에서 연기하고 노래하는 에너지가 되게 크다”며 “보통은 제가 맡은 역할을 보게 되는데 ‘광주’는 다른 친구들이 뭘 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지는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광주’의 메시지가 스민 또 다른 요소는 넘버다. 민우혁은 “연습 들어가기 2주 전에 이성준 음악감독님께 한곡을 먼저 받았는데 들어보고는 바로 연락드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 같다고”라며 에피소드를 전했다.


“연습을 시작하기 열흘 전부터 음악연습을 부탁드렸어요. 저만 못할 것 같은 거예요. 처음엔 음정잡기도, 노래 시작점 찾기도 힘들 정도였죠. 언젠가는 무대감독님이 ‘다 틀린 줄 알았다’고 하실 정도였어요. ‘광주’라는 정서가 편하게 들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잖아요. 그래서 음악을 그렇게 만드신 건가 싶기도 하고…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바로 흐트러집니다.”


◇직구에서 너클볼로! 도전 그리고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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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광주’ 박한수 역의 민우혁(사진=이철준 기자)
“지금까지는 극을 마주할 때 철저하게 슬퍼하고 무너지는 연기를 해 왔어요. 고선웅 연출님과 작업한 ‘광주’의 가장 큰 모토는 ‘우리는 딛고 일어서야 한다’였어요. 말이 안나올 정도의 슬픔을 느끼지만 오히려 ‘왜 감정이 없어’라고 할 정도로 보이려고 노력하면서 마음을 전하려고 더욱 뜨거워진 것 같아요.”

민우혁은 ‘광주’에 대해 “여러모로 도전작”이라며 “이전작들이 직구였다면 ‘광주’는 너클볼”이라고 웃었다.

배우와의 관계가 중요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겠거든요. 큰 동선들이나 대본은 정해져 있지만 배우들마다 뉘앙스가 전혀 달라요.”

그리곤 “(시민군을 조직하고 지휘하는 야학교사 윤이건 역의) 김찬호·민영기 배우도, (이정열, 박시원이 연기하는 5050부대 특무대장) 허인구도 그렇다”며 “재밌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렵기도 한 경험 중”이라고 말을 보탰다.

더불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로 공연이 취소, 연기되면서 뜻하지 않은 공백기를 맞은 ‘공포’에 대해 털어놓기도 했다.

“제 입장에서는 이렇게 쉬어본 적이 없어요. 일중독처럼 일만 했었는데 못하게 되니 괴로웠고 다시는 무대에 서지 못할까 무섭기도 했어요. 특히 (‘벤허’ ‘프랑켄슈타인’ ‘지킬앤하이드’ 등) 성대를 혹사시키는 공연들을 주로 하던 저로서는 코로나19로 몇달 간을 노래 부를 일이 없으니 성대가 다시 건강한 생태로 회복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재채기 서너 번에 목이 쉬는 경험을 하고는 공황장애처럼 큰 공포를 느꼈어요.”

매일 밤 차에서 그 동안 출연했던 작품들의 넘버들을 부르며 성대 근육이 빠지지 않도록 연습하면서 공포를 느꼈다는 민우혁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지금에 감사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우리의 마음이 닿을 때까지 ‘님을 위한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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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광주’ 박한수 역의 민우혁(사진=이철준 기자)

 

“가장 마음에 남는 넘버는 역시 ‘님을 위한 행진곡’이에요. 이 노래를 부르면서는 제가 ‘광주’가 된 것처럼 뜨거워지거든요. 저희끼리는 다 같이 이 노래를 부르면서 ‘지금 우리가 이 시대, 이 시간에 광주에 이 감정으로 있었으면 왠지 목숨을 걸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얘기할 정도로 감동받았죠.”

그렇게 이야기도, 넘버도, 연습도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치며 배우들이 깨닫고 터득한 ‘광주’의 메시지가 관객들에게도 가 닿기를 민우혁은 “바란다”고 털어놓았다.

“어렴풋이만 인지하던 역사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 우리 배우들이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이 어떤 각오와 마음으로 민주화 운동을 했고 희생하셨는지를 알게 되고 그들의 이야기를 연기하는 데 큰 사명감을 가지고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는 것처럼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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