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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극과 극'의 미술관 랑데부…‘현실이상’ ‘김창열-The Path’

[문화공작소] 극과 극 ‘미술관’에서 만나다! 갤러리현대 50주년 특별전 물방울작가 김창열 개인전 'The Path', 백남준갤러리 2020 기획전 '현실이상'

입력 2020-11-10 18:30 | 신문게재 2020-11-1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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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 개인전 'The Path'(위)와 백남준아트센터 2020 기획전 '현실이상'(사진=허미선 기자)

 

현실과 이상, 선명한 혹은 흐릿한, 도드라지거나 아우르거나, 따로 또 같이, 동양과 서양…. 극과 극처럼 보이는 현상, 존재, 개념들이 ‘미술관’에서 만나 연결되며 의미를 파생시킨다. 백남준아트센터의 2020 기획전 ‘현실이상’(Reality Errors, 2021년 1월 31일까지)과 ‘물방울작가’로 알려진 김창열 개인전 ‘더 패스’(The Path, 11월 29일까지 갤러리현대)가 그렇다.

 

‘더 패스’는 갤러리현대의 50주년 기념 전시로 2013년 김창열의 화업 50주년 기념전 이후 7년만의 개인전이기도 하다. 김창열이 프랑스 파리에서 활약 중이던 1976년 친구 백남준의 소개로 박명자 대표와 만나 치러진 첫 개인전부터 인연을 이어온 갤러리현대에서 여는 열네 번째 개인전이다.

 

 

화가 김창열(사진제공=갤러리현대)

 

동양과 서양, 이미지와 문자, 과정과 형식, 추상과 구상 등이 반대되는 개념처럼 보이는 것들이 ‘김창열’의 붓 끝에서 구현되는 물방울과 수행처럼 창작된 문자로 한 캔버스 위에서 어우러진다. 물방울과 문자가 처음 만난 ‘휘가로지’(1975)부터 1980년대 중반부터 2010년까지 이어진 ‘회귀’(Recurrence) 연작 등 김창열의 대표작 30점이 전시된다. 

 

1층 ‘문자와 물방울과의 만남’, 지하의 ‘수양과 회귀’, 2층의 ‘성찰과 확장’ 세 개 키워드로 구성된 전시에서 눈에 띄는 것은 지하와 2층의 극과 극 작품들이다. 거의 동시대 작품들은 전혀 다른 듯 닮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물방울작가’로 알려진 김창열 개인전 ‘더 패스’(사진=허미선 기자)

지하의 작품들은 “4자 2구로 된 125편의 고시”라고 일컬어지는 천자문도, 물방울도 선명하게 저마다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낸다. 

 

한 캔버스에 존재하는 물방울과 문자는 대립과 긴장을 강조하며 김창열 작품세계의 오묘한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캔버스 뒤에서 앞으로 스미는 듯하던 물방울은 이 시절부터 캔버스 표면에 선명하게 맺히는 형태로 그려진다. 

 

지하의 작품들에서 천자문과 물방울 모두가 반듯하고 단정하게 존재한다면 먹과 한지를 소재로 한 2층의 작품들은 수차례, 겹겹이 중첩되고 교차되며 서로에게 스며들어 또 다른 세계를 구축한다. 

 

수차례의 중첩에도 수채화를 연상시킬 만큼 투명한 색과 이미지 그리고 문자들은 천자문, 고시들이 지닌 깊은 뜻과 진리에 작가의 사색을 덧칠해 또 다른 세계로 확장된다. 그 세계는 작품을 보는 관람객들이 찾아낸 또 다른 사색과 진리, 깨달음이 덧칠되면서 더 큰 확장으로 이어진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디어아트의 대가를 기리는 백남준아트센터의 ‘현실이상’은 극단의 것들 혹은 다양한 의미들이 중첩되는 현상에 대한 전시다. 말 그대로 현실과 그에 반대되는 개념의 이상(理想), 현실을 뛰어넘는 이상(以上), 현실에 대한 의심을 품은 이상(異常) 등이 복합적으로 얽인 전시로 오류가 일으키는 의심, 도달하길 바라는 이상, 지금 여기 현실 너머의 것들을 다룬다.

 

박혜수, 양숙현, 업체eobchae, 정승, 김세진, 김윤철, 매튜 케루비니, 아메리칸 아티스트, 웨슬리 코틀리, 차오 페이 등 10팀의 15개 작품은 보편적인 삶의 형태와 가치들, 일상을 재탐문하고 최첨단화된 현실과 곧 다가올 현실이 만난 경계에서 새롭게 정의되는 세계들을 제시한다. 더불어 의무와 태만, 무책임과 의지 등 추구돼야했지만 그렇지 못해 발생하는 오류와 실책, 과오로 인류가 거듭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들 그리고 그 문제들이 미래까지 이어졌을 때 맞이하게 될 필연적 전개에 대해 이야기한다.

 

 

백남준아트센터 2020 기획전 '현실이상' 중 김세진의 '전령(들)'(사진=허미선 기자)

 

전시는 ‘기술의 판타지 그 이면과 실제들’ ‘편향된 기술, 편향된 혜택’ ‘인간의 경계를 넘어선 새로운 타자들’ ‘지금의 현실과 다가올 현실이 맞닿는 세계’로 구성된다. 

 

‘기술의 판타지 그 이면과 실제들’에서는 버려졌던 개였지만 인간의 안전한 우주탐험을 위해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2호에 실렸던 우주개 라이카(Laika)와 그를 통한 생명권을 다룬 김세진의 ‘전령(들)’, 2025년까지 상용화될 자율주행시스템을 시뮬레이션한 매튜 케루비니의 ‘윤리적 자율주행 자동차’, 음성인식·인공지능(AI)이 결합된 아이폰의 시리와 아마존의 알렉사로 바라본 미래를 다룬 웨슬리 고틀리의 ‘기계 신들의 목소리’를 만날 수 있다.  

 

 

백남준아트센터 2020 기획전 '현실이상' 중 김윤철의 ‘트리엑시얼 필라스 II’와 ‘아르고스’(사진=허미선 기자)

‘편향된 기술, 편향된 혜택’은 2015년 뉴욕경찰이 순찰차량에 도입한 예측순찰시스템을 소재로 한 아메리칸 아티스트의 ‘2015’ ‘무제’, 무인 시스템이 도입된 미래의 노동현장과 그 안에서 소멸돼 버린 인간에 대한 소외와 차별을 다루는 차오 페이의 ‘아시아원’으로 과학이 발달돼도 사라지지 않을 편향성에 대해 다룬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입자물질을 가시화한 김윤철의 ‘트리엑시얼 필라스 II’와 ‘아르고스’, 0과 1, O와 X로만 구성된 디지털 세계, 그들의 데이터 전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글리치 현상을 다루는 양숙현의 ‘OOX에서 온’, 생명의 본질이 디지털 데이터로서 존재할 수 있는지를 다룬 정승의 ‘프로메테우스의 끈 VII’은 ‘인간의 경계를 넘어선 새로운 타자들’ 섹션에 배치됐다. 

‘트리엑시얼 필라스 II’와 ‘아르고스’의 김윤철 작가는 최첨단화로 복잡해지고 보이는 것에 더 집중하는 시대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와 분자 등을 비주얼적으로 구현하는 이유에 대해 “단지 시각경험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실제 물질이 출렁이는 것이 프로젝션으로 보는 것과는 다른 시각경험들이에요. 은색이 나노 입자가 내는 어두운 빛들로 금빛는 내는 것 같은 거죠. 며칠 전 읽은 프랑스 철학자의 책에서 ‘옛 시인들은 촛불을 보고 그 많은 시를 썼는데 왜 지금은 LED 등을 보고 시를 쓰지 않는가’라는 얘기가 인상적으로 남아 있어요. 근원적인 세계는 끊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테크놀러지가 난무하고 있지만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 변하지 않는 물성들이 있거든요.”

 

이렇게 전한 김윤철 작가는 “저는 그 물성을 다루기 때문에 과학과 기술을 알기 이전 사람과 커넥션된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부분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백남준아트센터 2020 기획전 '현실이상' 중 박혜수의 퍼펙트7’ (사진=허미선 기자)

 

‘지금의 현실과 다가올 현실이 맞닿는 세계’에서는 지금의 현실과 다가올 현실의 충돌을 담은 업체eobchae의 ‘대디 레지던시?’ ‘오에스 파파 엑스’ ‘오-제네시스’ ‘자궁보안튜토리얼’이 전시된다. 

 

박혜수는 가족을 대체하는 생활동반자법이 통과된 미래, 새로운 형식의 가족설계, 등록, 보험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상 대행기업 ‘퍼펙트7’ 사업 부스를 설치해 지나간 현실, 지금의 현실, 다가올 현실이 공존하는 미래를 조망한다. 

 

기술과 미술, 전혀 다른 감성이 만나는 지점을 통해 관람객들이 인간에 대해 더 생각하게 하게 하는가 하면 잠시 멈춰 미처 예측하지 못한 점들을 짚어 보게 하려는 시도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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