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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칼럼] 각자도생은 해답이 아니다

입력 2020-11-1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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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우 보현한의원 원장
한국 사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리스나 베네수엘라 행 급행열차를 탔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절망적인 상황이 지속되고 개선의 가능성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은 ‘각자도생’일 뿐이라고도 한다.

한 사회가 잘 사는지 여부는 그 사회가 얼마나 정부간섭이 적은 자유주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가에 달려있다. 그럼에도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빠르게 자유주의 원칙들을 포기해왔다. 특히 경제 분야는 사회주의로 가는 지름길인 간섭주의로 접어든 지 오래다.

간섭주의 혹은 사회주의 정부의 정책들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대표적으로 가격, 임금 그리고 이자율 등 시장 전반을 간섭하고 통제하려고 한다. 재건축과 재개발 제한, 분양가상한제, 주택담보대출 제한 등으로 대변되는 부동산 정책과 최저임금제, 주 52시간 근로시간 제한 등으로 대변되는 노동정책, 그리고 인위적 경기부양을 위한 초저금리를 서슴없이 채택하는 금융정책 등 이 정부의 시장에 대한 간섭은 실패로 끝난 사회주의 국가들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정치적인 상황도 심각하다. 한미동맹을 폄훼하고 반미를 주장했던 세력이 집권하면서 국가안보는 위협을 받고 있다.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방위비협상은 난항을 거듭하며 병력을 축소하는 방향도 고려되고 있다. 한일 간의 지소미아(군사정보보호협정)도 종료위기에 처해있다. 이미 법외노조로 판명된 전교조를 다시 합법화시키고, 내란음모죄로 투옥중인 인물에 대한 석방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리 사회가 점점 더 종북주의와 간섭주의의 늪으로 빠지고 있다는 생각을 지을 수 없다.

사회 전반적으로 자유주의 원칙이 이토록 무참히 깨지고 있는 상황에도 현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폭락 없이 유지되는 것을 보면 사회주의 정책을 옹호하는 국민이 다수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인 지난 총선에서 간섭주의 집권여당이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은 충격이다. 정부정책을 비판하고 이에 분노하는 대중들 역시 다수가 있지만, 이런 반감을 결집시켜 정치적 동력으로 승화시키려는 주체가 없다. 집단적 무기력증에 빠진 듯하다. 더 늦기 전에 정권을 교체해야 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자유주의 정책을 지지하도록 호소하고 대안의 정치세력을 조직하거나 지지하는 움직임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 나라엔 더 이상 미래가 없으니 늦기 전에 이민을 준비하라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한민국이 각자도생의 수렁에 빠져버린 느낌이다.

각자도생의 끝은 떠나는 것이다. 소설 아틀라스에서 아인랜드는 유능한 기업가와 엘리트들이 각자도생을 선택한 사회가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줬다. 기업가들이 파업을 선택함으로써 대중들은 한순간에 실직자가 되어 생계를 걱정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베네수엘라는 이 소설의 현실판이다. 소설에서는 콜로라도의 계곡으로, 베네수엘라에서는 타국으로 떠났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2015년 이후, 베네수엘라에서는 5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이민을 선택했다. 형편이 나은 사람들은 미국 등의 선진국으로 갔고, 대부분은 콜롬비아나 페루 등 베네수엘라보다 형편이 약간 더 나은 인접국가로 탈출했다. 타국에서 변방의 이민자로 살아가는 현실을 각자도생에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물론 이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으로 탈출조차 못하고 있다. 남은 사람들은 식량조차 구하지 못할 정도로 사정이 어렵다. 국민 평균 체중이 2016년에는 8kg, 2017년에는 무려 11kg나 줄었다. 식량지원이 없으면 수십만 명이 굶어죽을 수 있다는 예상도 있다. 현실은 소설보다 더 지옥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두가 각자도생을 선택하는 사회는 각자도생을 할 수가 없다. 베네수엘라처럼 손쉽게 탈출 할 수 있는 인접 국가조차 없는 우리가 선택하는 각자도생이 이와 다를 리 없다. 우리에게 각자도생은 해답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사회의 일부를 소유하고 있으므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책임을 넘길 수 없다. 사회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을 때 자기 혼자 안전한 길을 찾을 수도 없다. 따라서 모든 사람을 자기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지적인 싸움에 뛰어들어야 한다. 이 싸움의 결과에 모든 사람의 이해가 달려 있기 때문에 관심이 없다면서 도망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미제스의 지적처럼 각자도생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스스로 자유주의자라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대중의 어리석음과 수동적 태도를 탓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못하다. 오히려 대중들을 설득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한 우리의 무능함과 게으름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자유주의 주장의 핵심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다만 핵심을 전달할 구체적 방안은 시대에 맞춰 끊임없이 진화해나가야 한다. 기존의 방식이 통하지 않으면 새로운 방법을 지속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이념의 시장에 뛰어들어 간섭주의와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더 많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것이 자유주의의 적응도를 높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문화적 진화에 적대적인 사회주의나 간섭주의는 그 과업을 잘 달성하고 있는 반면, 진화에 가장 친화적이어야 할 자유주의가 오히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뒤처지는 모순된 상황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

몇 차례 경제위기를 겪으며 세상이 간섭주의적인 케인즈주의로 회귀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시절이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케인즈가 지배하던 시대를 극복하고, 하이에크의 자유시장에 대한 믿음이 결국 옳았음을 증명하기까지 거의 반세기가 걸렸다. 앞으로 자유주의의 시대가 다시 열리는 데 얼마의 시간이 더 걸릴지 모르지만,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자유주의에 대한 신념을 이어나가야 한다.

송상우 보현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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