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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모른 '척'하기 힘든 영화...영화 '에듀케이션'

[Culture Board]

입력 2020-11-25 18:30 | 신문게재 2020-11-26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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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성실해 보이지만 성희는 누구보다 자신이 맡은 일에 애정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담배는 속도전”이라며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경험하고픈 장애인의 요구도 흔쾌히 도와준다.(사진제공=씨네소파)

 

영화 ‘에듀케이션’이 제2의 ‘벌새’가 될 수 있을까. 보는 내내 답답하고 먹먹하다. 대한민국 복지 사각지대를 겨냥한 ‘에듀케이션’의 주인공 성희(문혜인)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스페인으로 떠날 계획이다. 

대사로 드러나는 그의 현실은 ‘헬조선’을 부르짖는 젊은이들의 표상이다. 학자금 대출에 월세, 용돈까지 벌어 쓰는 그는 사회복지학과 실습도중 허리를 다친 탓에 남들보다 덜 일하지만 까다로운 중증 장애인의 집을 배정받는다.

여기서 ‘덜 일하는’ 조건은 가족이나 환자의 터치를 받지 않는 상황이다. 하지만 새롭게 간 집의 아들이 만만치 않다. 고등학생인 현목(김준형)은 흡사 가사도우미를 부리듯 성희를 대하고 둘은 사사건건 부딪힌다. 10대의 나이에 일찌감치 공무원의 꿈을 꾸는 현목과 그마저도 쉽지 않은 길임을 미리 깨달은 성희. 둘은 ‘아픈 존재’를 돌봐야 하는 공통점으로 일종의 동지의식을 느낀다.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있는 영화 ‘에듀케이션’의 공식 포스터.(사진제공=씨네소파)

어리지만 당찬 현목은 “원래 이렇게 일하는지 아니면 (어린) 나한테만 이러는 건지”를 되묻는다.

 

미성년이지만 알 건 다 아는 법이다. 틈만 나면 스페인어 공부를 하고 엄마를 방치하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영화의 제목과 달리 ‘어디서도 배울 수 없고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은’ 상황이 시종일관 펼쳐진다. 

 

국가의 세금으로 중증 장애인을 돌보는 활동 보조인은 최저 임금을 살짝 넘는 시급을 받는다.

 

하지만 보호자에게 찍히는 금액은 1만6000원 상당. 반 이상이 센터의 수수료로 나간다. 그나마 국가의 세금으로 충당되는 활동보조원의 급여로 중증 장애인들은 세상을 보고 그리고 즐기는 셈이다. 빨리 어른이 되고픈 소년과 이미 그 시기를 거쳐 이제는 성인으로 불리는 한 소녀에게 그들은 그저 ‘돈벌이’일까.

아침 저녁으로 나가는 실습이 아니면 생활이 안되는 성희는 시종일관 잠이 든다. 막차가 끊기기도 여러번, 심지어는 현목의 엄마와 간 피크닉에서도 쌓인 피로를 떨칠 수 없다. 엄마를 돌보기 위해 결석을 밥 먹듯 하는 현목에게 진정한 어른은 없다. 성희 역시 마찬가지다. 스페인에 가는 이유를 묻는 직장 상사에게 “숨쉬기 위해서 떠난다.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너무도 당연하게 “그럼 대출받아 빚내서 가라”며 악순환의 구렁텅이에 등을 떠민다.

‘에듀케이션’의 초반 현목의 집은 걸을 때마다 끈적한 장판의 쩍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일련의 오해를 털고 나서야 바닥은 걸레질을 통해 깨끗해 진다. 아마도 두 사람의 관계가 오물을 걷어내고 투명한 관계로 변화함을 암시하는 듯하다. 늦여름의 마지막 피크닉을 떠난 세 사람은 귀가길에 엄마의 낙상 사고를 겪는데 이들이 대립하는 지점이 흥미롭다.

 

영화 ‘에듀케이션’(사진제공=씨네소파)

 

직업인으로서 119를 부르는 성희와 보호자로서 검사비를 부담스러워하는 현목의 모습에서 ‘친밀해도 넘을 수 없는 벽’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엔딩인 과격 격투신은 지독히 미워하지만 그 마저도 정으로 치부하는 한국인의 정서를 단 15초로 응축했다. 무엇보다 ‘에듀케이션’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로 꼽힌 두 배우의 앙상블이 아니었으면 계속 보기 힘든 영화다.

 

관객들은 현실을 직시한 영화보다 잠시나마 세상을 잊기 위해 영화를 보는 법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억누르는 건 두 사람의 연기력이다. 연출을 맡은 김덕중 감독은 실제로 성희와 같은 직업을 아르바이트로 한 경험이 있다. 

그는 “이용자와 정서적 유대가 생길수록 그의 가족과 주변, 경제 상황 등 너무 많은 것들이 내 삶을 파고 들었다”면서 “아닌 ‘척’하고 살아가지만 모른 ‘척’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그리고 그 불편함을 인지하고 맞닥트리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는 연출의도를 밝혔다. 그런 의미에서 ‘에듀케이션’은 올해 한국영화가 보여준 ‘눈부신 발전’임에는 틀림없다. 26일 개봉.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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