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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물방울 작가' 김창열, 평안과 평화의 '無'로 돌아가다

[별별 Tallk] 無로 돌아간 '물방울 화가' 김창열

입력 2021-01-07 18:30 | 신문게재 2021-01-08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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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 작가
김창열 작가(사진제공=갤러리현대)

 

“모든 것을 물방울로 용해시키고 투명하게 ‘무(無)’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행위다. 분노도 불안도 공포도 모든 것을 ‘허(虛)’로 돌릴 때 우리들은 평안과 평화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물방울 화가’로 알려진 김창열 작가는 평생을 이어온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에 대해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정교하게 혹은 과감한 생략으로 캔버스 위에 맺히는 물방울, 수행처럼 사유되고 창작된 천자문과 문자들로 예술세계를 구축했던 김창열 작가가 5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한국미술 뿐 아니라 세계 미술사에도 한 획을 그은 김창열 작가는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살롱 드 메’에서 선보인 ‘밤의 행사’(Event of Night)를 시작으로 물방울과 천자문을 모티프로 회화의 본질에 대한 사색과 탐구에 일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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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 작가는 1929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나 1946년 월남했다. 명필가였던 조부에게 배운 천자문과 서예는 후기를 대표하는 ‘회귀’ 연작의 밑거름이 됐다. 어려서부터 화가를 꿈꾸던 그는 월남 이듬해 사설 미술학원인 경성미술연구소, 서양화가 이쾌대가 운영하는 성북회화연구소에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해 검정고시로 1949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했다.

6.25전쟁으로 그는 많은 것을 잃었다. 학업을 중단한 후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고 여동생과 친구들을 잃었다. 비단 그 뿐 아니라 전후는 상실감과 비통함이 흘러 넘쳤고 전쟁 트라우마, 분노와 혼란이 혼재했던 시대였다. 

전후 1952년 경찰전문학교 속성 과정을 마치고 제주도로 파견돼 1년 6개월여를 머물렀던 고인은 1957년 서양화가 이상복 화실에서 조수로 일하며 본격적인 화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김영환, 이철, 김종휘, 장성순, 김청관, 문우식, 하인두 등과 함께 ‘한국현대미술가협회’을 창립해 동인전을 개최하고 한국의 앵포르멜(Informel, 기하학적 추상을 거부하고 미술가의 즉흥적 행위와 격정적 표현을 중시한 세계2차대전 후 유럽의 추상미술) 미술운동을 이끌었다. 

추상미술 거장
‘물방울 화가’로 잘 알려진 한국 추상미술 거장 김창열 화백이 5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연합)

 

캔버스의 질감을 그대로 살린 물감의 흔적, 붓질의 몸짓을 강조하며 전쟁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표현한 앵포르멜 계열의 작품 ‘제사’ ‘상흔’은 한국 미술사의 흐름을 바꾼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인은 1961년 제2회 파리비엔날레,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하는가 하면 김환기의 주선으로 1965년부터 4년간 뉴욕 록펠러재단 장학생으로 아트스튜던트리그에서 판화를 공부하며 일찌감치 해외로 활동영역을 확장했다.

1969년 제7회 아방가르드 페스티벌로 백남준과 인연을 맺은 후 고인은 파리에 정착해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그를 대표하는 ‘물방울 회화’가 탄생한 시기도 이즈음이다. 1970년 파리 인근에 위치한 팔레조의 낡은 마구간을 개조한 아틀리에에서 생활하던 그는 넉넉지 않은 형편에 캔버스를 재활용하곤 했다. 물감이 잘 떨어지도록 캔버스 뒷면에 뿌린 물이 방울져 햇빛에 영롱하게 빛나는 것을 발견하면서 ‘물방울’을 모티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김창열 작가
1973년 놀 인터내셔널 프랑스에서 열린 프랑스 첫 개인전 전시장 앞에서의 김창열 작가(사진제공=갤러리현대)

 

프랑스 파리에서 5월이면 열리는 살롱전 ‘살롱 드 메’에서 ‘밤의 행사’를 발표한 후 이듬해인 1973년 그는 놀 인터내셔널 프랑스에서 물방울 회화만을 모아 첫 프랑스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유럽 화단에 파란을 일으키며 시작해 50여년을 이어온 김창열 작가의 ‘물방울 회화’는 전쟁으로 인한 상실감과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는 정화와 치유의 구현이었고 천자문과 도덕경 등 문자들을 공존시켜 동양 철학의 핵심적 사상을 담아내면서는 회화의 본질, 삶과 자아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이자 탐구의 여정이었다.

곧 사라져버릴 물방울과 기억, 역사, 사상 등을 기록하는 글자의 공존 뿐 아니라 작가는 ‘물방울’을 모티프로 한 작품세계를 끊임없이 진화시키고 확장시켰다. 1990년대 돌과 유리, 모래, 무쇠, 나무, 물 등을 재료로 물방울 회화를 설치미술로 확장하는가 하면 2000년대 노랑, 파랑, 빨강 등의 캔버스에 다양한 색상을 도입해 또 다른 도약을 시도했다.

김창열 작가
2020년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마지막 개인전 ‘he Path(더 패스)’전경(사진제공=갤러리현대)

 

프랑스와 한국 문화교류에 애쓰기도 했던 김창열 작가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96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 2013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2017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를 받았다. 

 

1976년 작가의 물방울 회화를 처음으로 선보였던 곳이며 지난해 10월 마지막 개인전 ‘더 패스’를 열었던 갤러리현대의 김재석 디렉터는 “김창열 선생님은 단순한 물방울만을 그린 작가가 아니다”라며 “초기 엠포르멜 계열의 작품부터 물방울에 문자, 색이 도입되는 등의 변화를 통해 회화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했던 작가”라고 전했다. 이어 “그의 작품세계를 새롭게 조명·해석하고 그를 바탕으로 한 국내외 전시들이 개최되길 기대한다”며 “이는 갤러리현대의 숙제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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