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뉴스 > 사회 > 교육 · 행정

영남대, 국가기록관리 공로..."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품다"

지역협력센터, 합천원폭자료관,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학살사건 기록물 작업 유공

입력 2021-01-19 20:59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
  • 밴드
  • 프린트
지난해 말 영남대학교 링크플러스(LINC+)사업단 지역협력센터장 최범순 교수가 국가기록관리 유공으로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지역의 역사문화콘텐츠 조사·수집·발굴을 통해 지역사회의 가치를 보존·창출하고 있는 영남대학교 LINC+사업단의 활동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으로,지역협력센터는 지난 2019년부터 합천원폭자료관 소장 한국인원폭피해자 기록물 정리와 디지털화 작업 및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학살사건 기록물 작업을 진행해 왔다.

합천원폭자료관 성과물 사진
합천원폭자료관 성과물
▶합천원폭자료관 소장 한국인원폭피해자 기록물 정리와 디지털화 작업



1945년 8월 6일과 9일에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리틀보이(Little boy)’와 ‘팻맨(Fatman)’이라는 원자폭탄을 투하한다. 이것은 일본이 1931년부터 아시아 지역에서 전개하던 아시아·태평양전쟁(15년전쟁)에서 항복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한반도의 해방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많은 한국인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는 곧 한반도의 해방이고 따라서 박수치고 환호하고 만세 부를 일”이라고 기억한다. 이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 속에 놓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 하나있다.

원폭 투하로 약 70,000명(히로시마 5만명, 나가사키 2만명)으로 추산되는 조선인 피폭자가 발생했고, 40,000명이 폭사했다. 당시 원폭피해자 10명 가운데 1명이 조선인들이었던 셈이다.

30,000명의 조선인 원폭피해자는 목숨은 건졌지만 그들의 전쟁은 1945년 8월부터 다시 시작됐다. 생존자 가운데 약 23,000명이 한반도로 돌아온 후 피폭으로 인한 상처가 한센병 등으로 오해받으며 사회적 차별과 질시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원폭피해의 고통은 유전을 통해 자손들에게 이어지기도 했다.

한국인 원폭피해자의 약 60%는 합천 지역 출신이다. 합천이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고 원폭자료관이 합천에 설립된 이유이다. 합천원폭자료관은 2017년 8월에 개관했다. 7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지만 자료관 건립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한국인 원폭 피해 규모, 식민지 역사와 맞물린 역사적 상처와 사회적 차별을 고려하면 자료관 규모와 지원은 부족하기만 하다.

영남대학교 LINC+사업단이 합천원폭자료관 기록자료를 분실과 훼손에 대비하고 장기 보존이 가능하도록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서두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상남도 합천군에 소재한 합천원폭자료관에는 원폭 피해자의 신상을 비롯해 그들이 피폭 전후로 겪은 생애의 경험들이 생생하게 기록된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다. 이 자료들은 당시 사회상을 피해자의 시선에서 재구성할 수 있는 중대한 단서가 될 수 있으며, 아울러 추후 생존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 기억 수집 작업의 기반 자료로 삼을 수 있는 중요한 사료들이다. 그러나 자료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 방대한 양의 기록물들은 오로지 서면의 형태로만 남아 체계적인 정리 없이 자료관 서고에 켜켜이 쌓여 있었다. 인력과 예산의 한계가 이유였다.

합천원폭자료관 소장 자료 보존을 위한 기록자료 영상화 작업의 추진은 ‘기억연구회 그늘:그들과 늘’과 영남대학교 LINC+사업단 지역협력센터가 맡았다.

기억연구회 그늘:그들과 늘은 영남대학교 역사학과 학부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회적으로 조명받지 못하고 소외된 존재, ‘사회적 소수자’를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단체로 이들을 위한 인문콘텐츠 제작과 활용을 지향한다.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의 기록을 발굴하고 보존하며, 이를 가공해 사회적 소수자들의 기억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2차 전달자 활동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영남대학교 LINC+사업단 지역협력센터와 함께 합천원폭자료관 기록물을 장기 보존 가능한 형태로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영남대학교LINC+사업단 지역협력센터장 최범순 교수(일어일문학과)는 2015년부터 대구의 자매도시인 히로시마와 자매대학 간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인 원폭피해자 문제를 인지하고 2017년 8월 합천원폭자료관 개관에 맞춰 대학에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8년 영남대학교LINC+사업단 지역협력센터 설립을 계기로 지역사회 협력·기여·공헌 사업의 일환으로 합천원폭자료관 기록물 디지털화 작업을 기억연구회 그늘:그들과 늘과 함께 추진하게 됐다.

이들은 2019년 합천원폭자료관 개인신상정보, 구술증언, 회원등록증 등 총 2904명과 관련한 자료 3149건, 41,989점 자료를 개인별로 정리해 디지털화 작업을 벌여 총 24권의 자료집 제작을 완료하고 자료관에 기증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히로시마 지역의 원폭피해자기록에서 누락된 한국인 원폭피해자 11명의 존재를 규명해냈다. 2020년에도 합천원폭자료관 1970년대 초기 자료 1848건, 6679점 자료 정리 및 디지털화 작업을 통해 총 9권의 자료집이 제작됐다.

경산코발트광산기록물작업 추진과정 사진2
경산코발트광산기록물작업 추진과정. 유족들이 당시 사건을 구술하고 있다.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학살사건 기록물 작업

경산코발트광산의 민간인학살사건은 2000년 9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가 결성되며 실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경산 평산동 코발트광산은 일제의 지하자원 수탈정책에 의해 태어났다. 1931년부터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전개하던 일본은 포신이나 비행기 등에 사용되는 합금의 원료인 양질의 코발트가 묻힌 경산 평산동 코발트광산, 일명 ‘보국광산’을 1930년대말부터 개발해 1940년대 전반기까지 운영했다. 경산코발트광산은 일본의 패전과 동시에 운영이 중단되었는데, 그로부터 5년 후 이곳은 한국전쟁 초기 최대규모의 민간인학살 현장이 되었다. 가로 1.7m, 세로 4m, 깊이 150여m 제1수직굴과 그로부터 20m 떨어진 깊이 40m 제2수직굴, 그리고 경산코발트광산 일대 지역은 당시 한국의 군경이 3,500명으로 추산되는 자국 민간인을 학살하는 현장이 됐다.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학살사건 현장은 영남대학교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있다. 2007년~2009년 제1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유해발굴 활동에 영남대 문화인류학과가 참여했지만, 관련 기록물과 역사적 의미를 정리하고 기록하는 작업은 이어지지 못했다. 해당 사건의 기억을 지역사회 시민들과 공유하는 프로그램은 피해자유족회가 개최하는 행사가 유일했다.

영남대는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학살사건 기록물 작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경산신문사 및 유족회, 영남대학교 LINC+사업단 지역협력센터가 협력했다.

경산신문사는 지난 1994년 경산 평산동 코발트광산사건을 최초 보도한 이후 26년에 걸쳐 총 500여건의 관련 기사를 취재 보도해 왔다. 이 기사들은 유족회 결성의 계기를 만들었고 이후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활동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2009년 진실규명 결정 및 2016년 대법원 배보상소송 최종 승소 등을 이끌어내는 데에도 기여했다. 경산신문사는 미국과 스위스 등 해외 동행 취재와 자료조사, ‘경산코발트광산의 진실 1950-2008’ 등 총 3권의 도서 발간, 총 20회의 합동위령제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특히 유족회와 공동사무실을 사용하면서 코발트광산사건의 진상규명과 유족들의 명예회복에 힘써왔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학살사건 유족영상기록물 제작, 유족영상기록 기반 유족증언자료집 제작, 필름 사진자료 및 영상자료 디지털화 작업, 사진자료해제집 등이 제작됐다.

그 외 지역협력센터는 근대지도 해제자료집도 제작했다. (사)시간과공간연구소와 협력해 근대 시기 대구 지도 총 34점을 제작 연도별로 정리한 후 개별 지도별로 지도명, 제작연도, 제작처, 용도, 크기, 축척, 형태, 언어, 색깔, 범례 유무, 비고 항목을 설정해 정보를 기입하고 지도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 형태의 대구 근대지도 해제자료집이다. 해당 자료집은 근대 시기 대구 관련 지도를 최초로 수집·정리한 것으로 1903년부터 1945년 기간에 대구시 특히 현재 대구 중구 지역이 어떤 물리적 변화를 겪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최범순 지역협력센터장은 “대학의 새로운 역할인 지역사회의 가치를 발굴하고 창출하는 과정을 주도하는 기구가 되도록 노력해 갈 것이다.”고 지역협력센터의 역할을 담담히 밝혔다.
김동홍 기자 khw090928@viva100.com

   이 기사에 댓글달기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
  • 밴드
  • 프린트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

기획 시리즈

MORE

VIVA100

NEWS

人더컬처
카드뉴스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브릿지 초대석
문화공작소

 평택시 농특산물 사이버장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