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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이루다의 이루지 못한 꿈, 챗봇 수난시대

입력 2021-01-20 14:03 | 신문게재 2021-01-2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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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JaeKyung
이재경 건대교수/ 변호사

지배하느냐, 지배당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알파고의 등장 이후 인공지능(AI)에 대한 철학적 성찰은 우리에게 ‘지배’라는 키워드를 던졌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시대. 하지만 사람이 로봇에 의해 뒷선으로 밀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아리따운 20세 여대생 캐릭터의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가 혐오표현, 개인정보 유출, 비윤리, 몰인간성 등 논란에 휩쓸려 출시한 지 얼마 안돼 서비스를 중단했다. 세상에 선보이자마자 75만명의 이용자를 끌어들였던 ‘이루다’ 유행의 초라한 결말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혹자는 ‘이루다’ 논란이 인공지능의 기술적인 실패만이 아니라 과학의 미래에 대한 총체적인 혼란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특정 질문에 특정 답을 제공하는 목적지향형에서 벗어난 ‘이루다’는 무한 응답이 가능한 오픈 도메인 챗봇이었기에 딥러닝 기술을 이용해 카카오톡을 포함한 각종 데이터에서 무려 100억건을 수집해 젊은 여성의 어투를 장착했다.

 

빅데이터에서 수집한 자료에 기반해 재량없이 답변을 내놓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기계적으로, 객관적으로, 일관적으로 처리해 반응하는 ‘이루다’에게 혐오, 성인지 감수성, PC(Political Correctness) 등 인간 사회의 주관적, 윤리적 기준치를 들이대는 것이 타당할까?

2020년 ‘여대생’들의 패턴과 트렌드를 AI, 빅테이터 시스템에 맞게끔 가장 솔직하게 내놓은 ‘이루다’의 잘못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AI의 기본 시스템에 따라 ‘이루다’의 반응을 설계한 사람의 잘못일까? 아니면 단세포적으로 처리해버린 ‘이루다’의 잘못일까? 아니면 여대생 등 젊은 세대의 솔직한 대화들이 비난받아야 할까?

그 프로세스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이루다’ 사태에 대한 비난과 몰이해는 사라진다. 각종 혐오적, 비윤리적 표현과 반응은 ‘이루다’가 자체적으로 생성하지 않았다. 이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에서 기인한 결과물이다. ‘이루다’ 논란에 대해 개발업체가 뒤늦게 내놓은 변명은 태생적으로 예견된 것이었다. ‘이루다’의 자화상은 어쩌면 이 사회가 도저히 숨길 수 없는 아킬레스건, 어두운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이루다’ 논쟁을 AI 윤리나 인본주의 틀로 몰고 가려는 움직임은 경계돼야 한다. 거창하게 알고리즘을 운운하는 ‘AI 리터러시’도 이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아직 이 세상은 우리 인간의 것이다. AI가 가져온 하늘색 미래는 당장은 환상에 불과하다. 인공지능은 아직 인간의 영역이자 책임이다. 기계의 허점, 문명의 불완전성은 사람들 사이의 정상적이고 지속적인 소통이 왜 아직 필요한지를 일깨운다.

인간 사회의 편향성, 불공정성은 현재 진행형이다. 광화문 광장을 나가봐도, 사이버 세상을 둘러봐도 인간은 온통 자기 마음대로 이 세상을 재단하려고 한다. 인간 세상에서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고 다양한 이념들이 공존해야 한다면 AI에게도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유튜브 등 인터넷에 난무하는 편향적 콘텐츠와 편견을 모두 견뎌야 한다면 인간이 만드는 AI의 방종도 최대한 받아들이고 시장에 그 운명을 맡기자. 인간도 못해내는 과업을 AI에게 기대할 수는 없다. 인간 사회에서 숨쉬는 인공지능에게 전지전능한 특권을 부여할 수도 없다. ‘이루다’는 우리가 매일 들여다보는 거울이니까.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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