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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칼럼] 우리 시대에 자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입력 2021-01-25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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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화
정기화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우리 시대에 자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주변의 이런 저런 모임에 가면 오랜만에 만난다는 즐거움보다 짜증이 날 때가 많다. 신변잡기는 그래도 참을 만하지만 사회적 관심사가 주제가 되면 처신하기가 쉽지 않다. 모임의 면면에 따라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고 이러한 결론에 조금이라도 의문을 제기하면 이상한 ‘놈’이 되고 만다. 어떤 때는 가까운 친구사이가 멀어지기도 한다.

논리적 사고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이야 그렇더라도 논리를 업으로 살아가는 학자들이나 전문직 종사자가 모이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파를 옹호하는데 온갖 논리를 동원한다. 논리에서 밀리면 세상은 논리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강변으로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한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지지하는 정파에 무관하게 국가권력이 공동선을 추구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집단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더라도 마음이 편한 것이 아니다. 국가권력이 제공하는 각종 당근을 외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의 재원은 누군가의 소득이나 재산의 일부를 약탈한 것이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건강보험료가 책정이 되면 사회보험으로서 건강보험은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을 유지하기 위해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하거나 과도한 보험료를 부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내가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였기 때문에 건강보험의 혜택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기도 하지만 마음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무료로 지하철을 이용하거나 코로나 재난지원금을 수령할 때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조세가 약탈적 수준이라는 점을 외면하기 쉽지 않고 약탈한 소득과 재산의 일부를 내가 취득하였다는 점은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권력의 존재 자체가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생명과 자유 그리고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권력의 존재는 불가피하다. 그리고 사회질서를 유지를 위해 누구나 최소한의 사회적 제약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유란 사회적 제약이 존중되어야 보장될 수 있다. 하지만 국가권력의 강제력은 언제나 남용될 수 있어서 오히려 개인의 생명과 자유 그리고 재산권을 위협할 때가 많다. 그래서 어느 시대에서나 국가의 강제력은 누구나 동의할 수 있고 감당할 수 있는 규범에 따라 행사하는 것을 이상으로 여겼다. 그것은 개인이 받아들이고 있는 기존의 관습이나 전통을 강제하는 것이었다.

당시(조선왕조)의 일반적 법의식은 고래의 전통적인 법이 양법미의이며 새로운 법을 제정하여 고래의 전통을 깨뜨리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경제6전을 비롯한 속전 그리고 경국대전의 편찬 등은 법의 제정 즉 신법의 정립이 아니라 기존의 법을 기록하였다. 따라서 영구존행의 법을 제정하는 것은 기존의 법의 발견이지 엄격한 의미에서 법의 창조가 아니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법은 보편적 규범을 강제하는 것이라는 사고는 민주정이 들어서면서 변하기 시작하였다. 합법적 절차를 밟으면 보편적 규범에 어긋난 법도 제정이 되고 강제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개인은 국가권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동원되고 있다. 개인의 감성에 호소하거나 물리적 언어적 집단적 위협을 가하여 다수 개인의 지지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현재 지구상의 모든 국가가 형식적으로 민주정을 자처하고 있으며 어떤 법도 이를 합법적으로 제정하기 위한 절차를 갖추고 있다. 북한에도 형식적으로는 다수의 지지를 얻어 제정된 헌법과 형법이 있으며 이런 법절차에 따라 권력이 유지되고 처벌을 한다. 미국에서 조차도 의회의 제정법이 아니라 대통령의 합법적인 행정명령에 따라 강제력이 행사되기도 한다. 그래서 법에 의해 보편적 기준을 벗어나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재산을 약탈하는 것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민주정에서 약탈을 혐오하는 자유인이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은 분명하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현재와 같은 민주정이 진행될수록 법의 타락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면 개인적 삶의 영역은 점차 줄어들며 개인은 점차 국가권력의 노예로 전락해갈 것이다. 한 가지 위안은 그것은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고 요즘의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정이 출현한 이후 많은 자유인은 법의 타락을 예언하고 자신의 시대와 싸워왔다.

불행하게도 오늘날의 법은 본래의 영역을 벗어나 있다. 벗어난 정도가 미미하다면야 별 문제가 아니겠지만 상황은 그보다 훨씬 심각하다. 오히려 본래의 목적과 정반대의 것을 추구하고 있다. 자신의 목적 그 자체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정의를 확립하는 것이 법의 원래 기능이지만 실제의 법은 오히려 정의를 질식시키고 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권리들이 서로 침해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법의 원래 기능이지만 실제의 법은 권리 간의 경계를 파괴하고 있다. 또 타인의 인격과 자유, 재산을 착취하려는 자들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집단적인 폭력을 동원하고 있다. 약탈행위에 권리라는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법은 약탈을 권리라는 이름으로 탈바꿈시켜 버렸다. 그뿐 아니다. 타인의 약탈에 대한 방어를 범죄로 만듦으로써 정당한 방어가 처벌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우리 시대의 자유인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합법적 약탈에 맞서 싸워야하는가? 민주정에서 합법적 약탈에 맞서려면 새로운 약탈을 약속해야 한다. 다수의 지지를 위해 누군가의 재산이나 자유를 약탈하여 이를 나누어주어야 한다. 약탈이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미래를 약속하는 예언자로 살아가야 하는가? 시대의 타락을 기록하고 증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아가 새로운 미래가 언제 도래할지 알 수 없는데 황량한 광야에서 진리를 외치는 것은 외롭고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어찌할 것인가? 예언이 실현되어가고 있다는 증거가 역사에 넘쳐나고 있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는 말씀도 있는데.

 

정기화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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