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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버거형, 안녕? 나는 서학개미라고 해!

[이희승 기자의 수확행]18년 차 문화부 출입기자의 금융문맹 탈출기
상장폐지돼 허공으로 날라간 주식부터,분할매수로 쏠쏠한 재미 안겨준 테슬라까지

입력 2021-02-09 18:30 | 신문게재 2021-02-1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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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2016년이라 이자가 제법(?)붙었다. 요즘 은행이자는 0.7%에 불과하다.(사진=이희승기자)

 

미리 밝히자면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이 기사는 주식광풍이 불기 훨씬 전 귀 얇은 문화부 기자의 주식입문기다. 그리고 본격적인 주린이(주식+어린이의 합성어, 주식초보를 일컫는 말 )로서의 고백이랄까. 세상의 모든 뉴스를 접하고 가려내는 신문기자를 조롱하는 말이 있다. “부동산부 기자 치고 내 집 한 채 있는 사람 없고 증권부 치고 마이너스통장 없는 사람 없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의 21세기 버전이라고 해두자.요즘은 세상이 많이 바뀌었지만 이 자조섞인 문구는 어딘가에서 현재진행형이다.

처음 주식을 접한 건 13년 전 결혼도 하고 막 저축도 시작할 무렵이었다. 결혼 전 월급은 언제나 통장을 스쳐지나곤 했다. 오롯이 먹고 꾸미고 떠나는 데만 썼다. 얇다 못해 습자지 같은 귀를 자극한 이는, 아는 사람이 더 하다고 친구였다. 금융쪽에서 일하는 A는 나에게 주식을 권했다. 자신의 수익률 표를 보여주며 넣기만 하면 몇 배는 불릴 수 있다는 일종의 작전주였다.

주식값을 폭등시켜 이익을 챙기려고 증권 중개인과 큰손, 대주주 등이 공모해 매수하는 특정 기업의 주식을 사들이는 이 방식은 동명의 영화 ‘작전’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누군가는 일확천금을 얻는다. 하지만 이는 수많은 개미들을 밟아야 가능한 일이다. ‘작전’은 2009년의 범죄, 스릴러 장르였지만 울면서 봤다는 사실만 밝힌다. 본론으로 돌아가 잃는 셈치고 50만원을 넣었는데 이틀만에 300만원이 찍혔다.

당시 신세계 백화점에서 샤넬 2.55 그 가격대였으니 일하지 않고 명품백이 생긴 셈이다. 그때부터 주식 HTS를 깔고 실시간 차트를 매일 들여다 봤다. 마침 새로 들어온 경제부장에게 조언도 구했다. 그때 “작전주 같으니까 조심하라”는 말을 들었다. 작전주가 뭐냐고 그제야 물어 본 기억이 난다. 주식이 통째로 없어진다는 내용의 어마무시한 정보를 줬다. 친구에게 물어 보니 “나는 1000만원을 투자했고 이미 6배가 됐다”며 “주식이 없어지는 확률은 1%도 안된다”고 했다. 먼저 들어가야 수익이 난다는 말에 매월 30만원씩을 고이 모아둔 적금통장을 털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금세 불어나는 잔고를 보니 손에 쥔 돈이 아니어도 씀씀이가 커졌다. 모 브랜드의 겨울 외투를 보고는 “40만원 밖에 안하다니 그냥 사자”는 말이 절로 나왔다. 자주 가지 않던 백화점 식품코너에서 멜론을 사서 양가어른들에게 명절 선물로 드리기도 했다. 곧 몇 배는 오를 주식을 겨냥한 미래소비(?)였다. 이상하게도 매수 다음날부터 약간씩 내리는 차트가 속상했지만 오르지도 않은 주식을 예상해 미리 돈을 써대는 애송이가 바로 나였다. 그동안 오른 속도를 보면 손절(손해를 보더라도 팔아서 추가 하락에 따른 손실을 피하는 기법)은 섣부른 결정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확히 한달 후 400만원을 넣은 주식은 상장폐지돼 허공으로 사라졌다. 소개를 시켜준 친구는 지금까지도 연락이 안된다. 주변 친구들 역시 작게는 몇십만원에서 몇천만원까지 투자한 사실을 안 것은 당시 한창 유행하던 싸이월드를 통해서였다. 파도타기로 1촌 맺기가 돼있지만 다소 소원했던 동창 및 동호회 친구들은 작전주를 소개해준 A덕분에 대동단결했다는 슬픈 추억이다.

그렇게 ‘앞으로 내 인생에 주식은 없다’고 부르짖었으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 분명했다. 첫 아이의 돌잔치 후 남은 돈으로 아이 몫의 계좌를 만들었다. 용돈이 생기면 꼬박꼬박 넣어줬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즈음 이자를 보니 몇 백만원대의 원금에 이자가 고작 10만원대였다. 돈은 저축해야 모으는 거라고 믿었지만 금융문맹에게조차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국내 브랜드는 비싸 대체로 산 가습기가 떠올랐다. 하이얼이라는 중국 제품이었는데 국내 대기업 제품의 3분의 1 가격에 뜨거운 김이 나오는 신기한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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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란 주식이 있는지도 몰랐던 1년 전,미국 시가총액 1,2위인 우량주보다 더 많은 수익률을 안겨준 테슬라.손에 쥐기 전까지 내 돈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연합)

 

국내 주식에 데였기에 이왕이면 해외주식을 하고 싶었다. 무작정 회사 앞 증권회사를 찾아가 아이 이름의 계좌를 개설했다. 필요한 서류는 미성년자일수록 가족관계증명서와 최근 3개월 안에 발급한 주민등록등본, 아이 도장이다. 다짜고짜 삼성이나 현대중공업이 아닌 다짜고짜 하이얼주식을 사달라는 나에게 증권사 창구 직원은 “무슨 정보를 듣고 매수하시는건가요?”라고 물었다. 정보는 무슨. 제품이 좋아서 장기투자를 하려고 한다고 솔직히 말했지만 믿지 않는 눈치였다. 중국 주식은 1000주 단위로 사는 것도 그때 알았다.

원래 있던 돈에 부족한 금액을 보태 약 600만원 어치를 샀다. 그때 산 하이얼 주식은 2년만에 약 42% 정도가 올랐다. 목표 수익률이 30%였기에 미련없이 팔았는데 해외주식은 양도소득세가 붙는단다. 250만원은 공제하고 나머지 금액에 대한 금액을 손에 쥐니 만감이 교차했다. 내 인생에 마이너스가 아닌 유일한 투자였으니까.

그렇게 세월이 흘러 둘째가 태어났다. 시부모님이 늦둥이 낳은 걸 축하한다며 빨래건조기를 출산선물로 사주셨다. 속으로 ‘그 돈이면 평소 염두에 두던 텐센트와 아마존 주식 1주 정도는 살 수 있는데…’라는 말이 나왔지만 꾹 참았다. 고작 한번의 성공으로 너무 많은 정보에 눈이 돌아가고 현금은 없어 조바심이 난 상태였다.

약간의 돈이 생기자 이번에는 아는 기업에 투자하기로 마음 먹었다. 마침 CGV의 글로벌 진출이 눈에 띄었다. 매달 베트남부터 터키까지 해외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던 CJ는 CGV란 국내 1위의 영화관을 소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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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튜브에서 나대지 않는 진행자와 경제전문가의 만남으로 인기만발인 KBS의 방송.(사진제공=KBS)

 

지금처럼 영화관이 불황의 늪에 빠질 거란 생각은 결코하지 않았다. 넷플릭스라는 OTT서비스도 나오지 않은 시대였으니 과감히 들어갔다. 조금이라도 싸게 들어가려고 낮은 가격에 매수를 걸어놨는데 점차 오르기만 해서 냅다 질렀다. 12만원 대에 산 CGV주식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고 현재 2만8000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CJ를 ‘ㅆㅂ제길’의 준말로 부르는 댓글에는 공감버튼을 누를 뻔 했지만 차마 하지 못했다. 혹자는 물타기를 할거냐고 묻는다. 그렇게 오래 가지고 가다가 원금이 돼 팔았는데 이후에 몇 배가 올랐다는 주식 선배들의 버티기 경험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았다.

그래서 마음을 바꿨다. 이왕하는 거면 세계 1등 기업에 투자하자고. 때마침 미국주식관련 책들이 속속 출간될 때였다. 결론은 하나였다. 시가총액 1등 기업에 투자하면 장기적으로 손해는 보지 않는다는 원론적인 이야기였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는 누가 봐도 우량주 아닌가. 증권사에 가면 개인정보 외에도 금융투자성향에 대한 정보를 받는다. 안정추구형인지, 공격적인지에 따라 담당자들이 권하는 상품이 다르다. 지금은 다른 부서로 옮겼지만 내 담당 투자증권 담당자는 섣부른 조언 대신 묻는 질문에 의견을 더하는 식이었다. 테슬라 투자는 전기차에 대한 관심보다 우량주를 가져가니 약간의 모험을 하고 싶다는 내 뜻에 따른 추천 아이템 중 하나였다. 그렇게 투자한 테슬라는 착실한 우량주보다 몇 배의 이익을 더해줬다. 

 

게임스탑
(연합)

 

동학개미들이 한국 주식을 사 모을 때 나는 스스로가 서학개미인 줄도 모른 채 미국 주식을 차곡차곡 사모으고 있었던 셈이다. 테슬라의 최고경영자이자 괴짜로 불리는 일론 머스크의 이름을 처음 듣고 향수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때부터 화성탐사, AI, 게놈 유전자 영역까지 기술주 공부를 차근차근 하고 있다.

투자에 재미가 더해지니 매일 보던 요리 관련 영화나 네이버 연예판에 들어가는 수가 현저히 줄었다. 그렇게 여러 정보를 모으며 공부를 하다보니 미국 비디오 전문업체인 게임스탑이 시선을 끌었다. 올 초 17달러에 불과하던 이 사향산업 주가 상승은 헤지펀드가 공매도한다는 소리에 버거형(미국 개인투자자를 부르는 말)들이 유년시절의 추억이 쌓인 이 곳을 지키기로 하며 시작됐다. 국내에는 금지된 공매도지만 미국은 현재 가지지 않은 주식을 매도하고 그 후에 사서 갚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의 한 토론방에 “Buy and Hold”란 구호가 울려퍼졌고 주식 매수 인증글이 줄을 이었다. 공매도를 치는 기관이나 헤지펀드들이 게임스탑의 주가 하락에 배팅하고 그 하락분 만큼의 이익을 취하게 되는 현실에 버거형들이 기꺼이 불개미가 됐다. 이 흥미로운 게임에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새롭게 배정받은 한국투자증권의 박민규 주임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는 “장외시장을 보면 15%나 마이너스했고 이 정도면 내일 가격이 급락할 것”이라면서 “이런 분위기에 휩싸여 투자하는 것 보다 바이든 정권의 혜택을 받을 친환경 ETF나 안정적인 QQQ를 눈여겨 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요즘 부자들이 추구하는 투자방식에 대해서도 “각각의 성향이 있지만 잃지않는 투자란 없다는 확고함으로 신중하게 접근하는 태도”를 꼽았다. 가지고 있는 쌈지돈을 넣지 않은 그날, 게임스톱의 주가는 무려 267%를 찍었다. 20불대에 산 일부 주린이들은 1000만원이 2억이 됐다며 포효했다.

내가 그 ‘달리는 호랑이의 등’에 탔다면 이 기사는 없었을 것이다. 스몰나노A형의 피를 가지는 나는 그 금액이면 기꺼이 은퇴해 지금 발리에 있을 테니까. 그깟 코로나 바이러스는 무시하고 말이다. 현재 게임스탑의 주가는 60달러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기회는 다시 안 올지도 모른다. 버거형들이 이 기세를 몰아 블랙베리를 되살려보겠다고 의지를 다지고 있다는 기사도 심심치않게 보이니 어쩌면 또다시 반복될지 모른다.

결국 투자는 본인의 몫이자 선택에 달려 있다. 게다가 부자가 되는 과정은 분명 고단하다. 하지만 그 과정이 즐거운 건 언젠가는 부자가 될 거란 확고한 믿음에서 나온다. 요즘엔 출퇴근 길에 전날 보지 못한 드라마를 보는 대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나 국내외 경제 이슈를 심층분석한 방송을 듣는다.

이제는 전문가들도 실수를 하는 시대이며 누구도 맹신하면 안된다는 것과 선한 부자들이란 가면을 쓰고 유명세를 쌓아 인세를 받고 실버버튼을 받는 구조도 파악해 골라보는 눈도 제법 갖췄다. 적어도 학교와 사회에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비밀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기꺼이 더 공부하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돈은 쓰는 것보다 모으는 재미가 더 쏠쏠하단 깨달음과 함께.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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