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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승의 무비가즘]조부모가 아니었다면…없었을 '나'

미국 로컬 영화제 휩쓴 '페어웰','미나리'의 공통점
격대에서 느끼는 감정과 추억,영화로 쏟아져
'워 위드 그랜파'가 주는 코믹함 뒤에 감춰진 시대적 단상 눈길

입력 2021-03-0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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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조부모 이야기다. 적어도 지난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덥치기 전 할리우드는 모두 ‘향수’에 젖었던 듯 하다. 가족이란 울타리에서 부모의 부모는 어떤 존재일까. 동양적인 사고방식에서 그들은 언제나 최고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 젊음을 우위에 두는 문화보다는 늙음에 가치를 보는 문화에 가까웠다.

서양문화에서도 격대 교육이 키운 수많은 위인들이 등장한다. 외할머니 손에서 자란 빌 게이츠와 할아버지와 함께 유년시절을 보낸 버락 오바마 등이 성공 케이스로 꼽힌다. 그들은 엄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자애로운 사랑으로 손주들을 감싸 안은 ‘선조’들이다. 혹자는 “자신의 자녀를 키울 때 몰랐던 여유가 손주에게 발휘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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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족 특유의 소란스러움 속에서 중심을 지키고 있는 할머니를 통해 가족의 ‘착한 거짓말’이 낳은 기적을 보여주는 영화 ‘페어웰’.(사진제공=AUD)

여기 ‘페어웰’ ‘미나리’ ‘워 위드 그랜파’가 각자 다른 국적와 나이, 배경에서 각자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이야기한다. 세 작품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아시아 문화에 사로잡힌 할리우드

 

과거 영화 ‘왕과 나’ ‘마지막 황제’ 등을 통해 각인된 아시아 영화의 신비함은 이제 미국 내 로컬 영화제를 장악 중이다. 

 

죽음을 앞둔 할머니와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중국계 미국인 손녀의 여행기 ‘페어웰’, 한국인 이민자 가족의 미국 정착기인 ‘미나리’가 대표적이다.



각각 2019년, 2020년 1월에 선댄스영화제에서 차례로 초연한 두 영화는 모두 한국에서 화제 속에 개봉했다. 룰루 왕 감독은 할리우드비평가협회상에서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시상 무대에만 33회 올랐다.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는 60관왕을 넘어 아카데미를 겨냥 중이다.

특히 ‘페어웰’은 지난해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주연배우 아콰피나에게 아시아계 배우 최초로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디즈니에서 만든 최초의 아시아 공주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에서 사라진 용 시수의 목소리 연기를 하기도 했던 이콰피나는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바쁜 배우기도 하다.

시대가 변했다. 예전 같으면 전혀 주목받지 못했을 외모와 목소리는 그를 ‘페어웰’의 빌리로 완벽 빙의시켰다. 갈라지는 저음의 목소리와 지나치게 마른 몸, 동양인 특유의 피부톤과 찢어진 눈은 다민족 국가가 사는 뉴욕에서 새로울 것 없는 평범함 그 자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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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페어웰’.(사진제공=AUD)

여섯 살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온 빌리는 중국어를 하지만 한자를 읽지 못한다. 고향에서는 빌리가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을 할 거란 동양적 사고방식을 기대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공모전에도 떨어지고 묵은 빨래는 모아서 부모 집에서 해결하는 신세다. 되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때 친할머니의 암소식을 듣게 된다. 중국에서는 “암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그 절망감이 생명을 단축시킨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친인척들은 당사자인 할머니에게 이 사실을 숨긴 채 마지막 가족회동을 갖는다. 만사에 솔직하고 유난히 할머니를 따랐던 빌리만 빼고. 당사자에게 시한부 인생을 알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동의할 수 없었던 빌리는 마음을 바꿔 할머니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한다. 

 

‘페어웰’의 룰루 왕 감독이 경험한 이 이야기는 실제 주인공인 할머니가 ‘가족들의 착한 거짓말’을 모른 채 6년째 잘 살고 있다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빌리의 할머니는 타국에 사는 자식보다 더 애틋하게 빌리의 속내를 알아채고 위로하는 인물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손녀를 자랑하면서 동시에 의기소침해져 있는 등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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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사진제공=판씨네마)

 

여기에 ‘미나리’는 ‘한국적이지 않은 할머니’를 등장시켜 재미를 더한다. 극 중 윤여정이 연기한 순자는 하나뿐인 딸을 위해 먼 미국 땅을 밟는다. 가방 가득 말린 멸치와 고춧가루, 아마도 한국에서 전재산을 정리했을 법한 봉투도 따로 건넨다.

컨테이너 박스 집에 사는 사위와 손주들을 보고 마음이 좋지 않았을 내색은 하지 않는다. 대신 아무 데서나 잘 자라는 미나리 씨앗을 가져와 집 근처 개울물에서 키우며 향수를 달랜다. 그리고 맞벌이를 하는 딸 부부의 자녀들을 보살핀다. 화투를 가르치고 마운틴 듀 음료를 ‘산에서 내려오는 이슬’이라 굳게 믿으면서.


◇손주들의 방을 졸지에 빼앗은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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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를 몰고 있는 ‘미나리’의 숨은 공로자는 손자로 나오는 앨런 김의 연기다.사진제공=판씨네마)

 

‘미나리’의 윤여정은 사실상 영화의 주연으로 미국의 영화제서 스무개 넘는 조연상을 수집 중이다. 순자는 그간 한국영화에서도 잘 보여지지 않았던 캐릭터다. 손자의 입장에서 보면 과자를 구울 줄도 모르는 이상한 할머니다. 엄마는 매일 기도하라고 하는데 순자는 “애한테 강요하지 말라”고 하거나 딸이 형편에 맞지 않게 많이 낸 헌금을 몰래 슬쩍하기도 한다. 오줌을 싼 자신을 보다듬기 보다는 “고추가 고장난것 같다”며 놀리기까지 한다.

손자는 태어나서 한번도 보지 못한 할머니가 한국에서 오자 자신의 방을 나누게 된다. “코리아 냄새가 난다”며 면박도 줘보지만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할머니에겐 귀여운 투정일 뿐이다. 맞벌이하는 부모가 없는 사이 발등이 다치고 피가 철철 날 때 “괜찮아”라고 말하며 대신 떨어진 서랍을 혼내며 ‘내 편’을 들어주는 신기한 할머니인 것.

정이삭 감독은 “‘미나리’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들만의 언어로 이야기하려고 노력하는 가족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언어는 단지 미국의 언어나 그 어떠한 외국어보다 깊은 마음의 언어(Language of Heart)다. 서로가 이 사랑의 언어를 통해 말하는 법을 배우길 바란다”는 골든글로브 수상소감을 통해 말이 통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진심에 대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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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할아버지,인생 멘토가 너무도 잘 어울리는 로버트 드니로.‘워 위드 그랜파’에는 그와 똑같이 닮은 아역 배우가 나와 감정이입을 더한다.(사진제공=스톰픽쳐스코리아)
‘미나리’가 방을 나눠 쓰게 된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라면 ‘워 위드 그랜파’는 아예 방을 뺏긴 손자의 복수를 다룬 코믹영화다.

로버트 드니로가 은퇴한 할아버지로, 그의 유일한 딸이자 반대하는 남자와 결혼해 애 셋을 둔 캐릭터로 우마 서먼이 캐스팅 돼 재미를 더한다.

아내와 사별 후 홀로 지내던 그는 마트의 무인계산대를 잘못 이용한 죄(?)로 졸지에 도둑으로 몰린다. 계산과 상담요원까지 로봇과 기계가 대신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해 설움을 당해 본 노인이라면 그의 역할은 단번에 공감을 자아낼 것이다.

‘워 위드 그랜다’의 초반은 바로 그런 노인들이 사소한 오해로 당하는 상황에 반기를 드는 장면이 나온다. 결국 딸의 집에서 몸을 추스리게 된 그는 졸지에 다락방으로 쫓겨난 피터의 미움을 받게 된다.

‘워 위드 그랜드파’는 세대를 뛰어넘는 가족 간의 유대와 사랑을 표방하면서 달라진 시대상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영화다. 전쟁을 선포하는 손자에게 진짜 전투에 참가했던 경험을 들려주며 웃어 넘기지만 ‘공간’을 빼앗긴 손자에게 ‘공감’이란 없다.

영화는 이들이 맺는 협정에서부터 세대간 차이를 드러낸다. 할아버지는 노장병사로, 손자는 비밀용사로 자신의 이름을 정한다. 가족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그리고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시작된 전쟁은 유치찬란하지만 집요하다. 할아버지는 손자와의 전쟁을 통해 처음으로 드론을 배우고 게임에 접속해 피터가 3년 넘게 가꿔온 성을 파괴하는 신세계를 접한다.

손자는 셰이빙 크림을 본드로 바꾸거나 휴대폰 벨소리를 바꿔 창피를 주는 등 아날로그적인 일상이 당연한 할아버지의 일상을 방해한다. 결국 같은 시대를 살지만 서로 다른 세상에 속한 두 사람이 추억을 쌓으면서 화해에 이른다. 부대끼고 살다 보면 정이 든다는 만고의 진리와 함께.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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