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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100세 시대 해칠 ‘과로 재해’를 막아라

법 제도 실질정비 만큼 기업 노력, 사회적 인식 개선 필요

입력 2021-03-16 07:00 | 신문게재 2021-03-16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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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업무에 따른 스트레스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가져와 과로재해의 원인이 될 수 있어 적절한 사전 대책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과로재해’로 과로사와 과로자살을 인정하고 있다. 2008년 7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 이후 시행령을 통해 업무와의 연관성이 법제화되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그 ‘연관성(인과성)’을 둘러싼 논란이 여전하며, 대개의 경우 입증 책임 등이 당사자나 가족에게 유리하지 않다. 기업의 일하는 환경 개선을 비롯해 법·규정의 재정비 등 과제가 산적하다. 건강한 100세 시대를 가로막는 ‘과로재해’의 실태와 대책 등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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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로’란 무엇인가


‘과로’는 피로가 누적해 생긴다. 충분한 휴식이 없으면 식욕부진, 작업능률 저하는 물론 정신질환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고용노동부의 ‘뇌심혈관질환의 업무상 재해인정 기준’ 고시에 따르면 법적 의미로 ‘과로’는 크게 단기과로와 급성과로, 그리고 만성과로로 나뉜다.

‘급성과로’는 뇌심혈관계 질병이 업무와 관련해 돌발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급작스런 사건에 의해 발생 혹은 악화되거나 업무 환경이 급격하게 변해 발생·악화하는 경우다. ‘단기과로’는 발병 전 일주일 이내 업무량이나 시간이 이전 12주(발병 전 1주일 제외) 평균보다 30% 이상 늘거나 업무강도 및 업무환경 등이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로 바뀐 경우다. 야간근무는 실 근무시간의 30% 정도를 가산해 산정된다.

‘만성과로’는 발병 3개월 이상 연속적으로 과중한 육체적 정신적 부담을 발생시켰다고 인정되는 업무적 요인이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경우다. 절대적 근로시간을 초과하지 않더라도 직종이나 근무형태 등을 감안해 판단하기도 한다. 의학계에서는 많은 연구결과를 토대로, 통상적으로 주당 근무시간이 55시간을 넘으면 주당 40시간 근무 때보다 심장질환이나 사망위험이 2배 가까이 높아지는 것으로 파악한다.


◇ 정확한 ‘과로재해’ 통계조차 없다

한국 정부에서는 과로로 인한 죽음, 즉 과로사를 인정은 하지만 기준이나 정의가 분명하지 않다. 명확한 공식 통계도 없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상 산업재해로 인정된 뇌심혈관질환 사망자 숫자로 어림잡아 추정할 수 있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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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과로사와 과로자살 등 이른바 ‘과로재해’에 관한 정확한 공식통계가 없어 효과적인 대책 마련에 어려움이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뇌심혈관질환 사망 사건 가운데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은 건수는 최근 5년간 약 72%가 증가했다. 2019년에는 신청 747건에 승인 292건으로 승인율이 39.1%였고, 2020년은 10월까지 571건 신청에 235건 승인되어 41.2% 수준이다. 사각지대인 자영업자나 특수고용노동자 과로사는 포함되지 않는 수치라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로로 인한 자살 통계도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한 정신질환 자살사망 관련한 업무상 재해 신청 건수와 승인 건수로 추정한다. 2019년과 2010년에 승인건수가 각각 35건에 그쳐 승인률이 58.3% 수준이다. 신청자의 절반 가량은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 과로재해로 인정받기부터 너무 어렵다

고용노동부 고시를 보면 우리나라는 3개월 동안 주당 노동시간이 60시간 이상이면 과로사의 업무 관련성이 강한 것으로 인정한다. 52시간을 초과하고 업무 부담 가중요인이 있으면 업무 관련성이 증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일본은 뇌심혈관질환의 경우 사망 전 2~6개월 동안 매달 평균 초과근무가 80시간 이상인 경우 과로사가 인정해 산업재해로 판정한다. 발병 전 혹은 사망 전 약 6개월 동안의 업무 부하 정도(심리적 부담 포함)를 강·중·약으로 나누고 ‘강’ 평가가 나오면 산업재해로 인정한다.

특히 노동시간 뿐만 아니라 근무환경에 따른 근로자의 심리적 부담도 과로 판단의 중요한 기준으로 인정된다. 과로로 인한 정신장애나 자살이 노동시간의 ‘양’보다 더 부담이 된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처음으로 과로사, 과로자살이라는 용어를 공식화하고 관련 대책을 법제화하고 있는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업무에 의한 심리적 부담’을 정량적으로 평가할 방법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여전히 재해 인정의 사각지대로 남겨두고 있다.



◇ 과로재해로 인한 산업재해 보상 받으려면

과로에 따른 죽음을 산재법에 의해 보상받는 게 매우 까다롭다. 우선, 업무와 관련한 사망임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고혈압이나 당뇨 우울증 등 지병을 앓았더라도 업무상 과부하와 스트레스 탓에 더 빠르게 나빠져 죽음에 이르렀다면 과로사로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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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부분적으로 과로사 과로자살을 산업재해로 인정받고 있으나 입증 책임이 유가족에게 있어 쉽지 않은 형편이다.

 

과로로 인한 자살도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다. 산재법 시행령에 따라 ‘정상적인 인식능력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 즉,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 탓에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이 발병 혹은 악화되어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살한 경우 인정된다. ‘내성적 성격이 자살을 결심한 중대한 이유인 경우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는 2017년 대법원 판결도 있다.

산재 보상을 받으려면 근로기준법에서 정하는 근로자여야 한다. 용역이든 위탁이든 임금을 받으려 노동을 제공했다면 근로자로 폭 넓게 인정된다. 기본적으로 해당 사업장에 계속 근로를 제공한 계속성·전속성이 있어야 하며, 사용자의 지휘 감독 여부와 업무 종속성 등도 중요 판단기준이 된다. 

 


◇ ‘과로재해’ 자체를 줄여야 한다

과로재해를 줄이려면 가장 먼저 장시간 노동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ILO(국제노동기구)가 하루 8시간·주 48시간 노동을 국제 기준으로 정한 것이 100여 년 전인 1919년”이라며 우리만 뒷걸음질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 측은 이에 더해 ‘야간 노동의 최소화’를 지적한다. 똑같은 일이라도 낮에 하는 것보다 밤에 하면 아무래도 정신적·신체적 부담이 더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야간근무가 불가피하다면 적절한 교대근무 환경부터 만들어 달라고 주장한다.

기업의 ‘일하는 문화 개선’도 급하다. 성과주의에 매몰되어 근로자를 ‘돈 버는 도구’로 여겨선 근로환경 개선이 어렵다. 기업도 책임질 것은 지는 태도를 가져야 과로재해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과로재해 문제에 있어 정부의 책임은 무한대다. 근로기준법에 정한 노동시간 규제의 준수 여부를 철저히 관리감독하는 게 우선이다. 나아가 우리도 일본처럼 법에 국가의 과로사 줄일 의무를 명시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5인 미만 사업장 같은 ‘규제 사각지대’를 없애는 데도 힘을 모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과로사 입증 책임을 유가족들이 떠안는 경우가 대다수다. 기업 협조가 어려운 상황에서 이를 근로복지공단 등 관련 기관들이 돕도록 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담당 의사의 판단 만으로 산재 여부를 결정하는 파격조치도 시행하고 있다. ‘신뢰사회’여야 가능한 얘기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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