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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민의 스토리가 있는 여행] 좌청우일… 돌계단 오르다 만난 '낯선 조선'

근현대사의 흔적들 ①인천
세상에 처음보는 물건에 문화충격 받은 개항장 사람들

입력 2021-04-06 07:00 | 신문게재 2021-04-06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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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천 - 우희광이 차린 짜장면 가게 공화춘
화교인 우희광이 차린 짜장면 가게 공화춘. 사진=남민

‘남민의 스토리가 있는 여행’은 저자가 직접 전국 곳곳을 돌며 기록한 ‘인문 여행기’입니다. 남민 작가는 ‘인문여행’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연 국내 대표 여행작가입니다. 우리가 가볍게 지나치지만 역사적·사회적으로 큰 의미와 가치를 지닌 기억할 만한 곳들을 널리 소개해 드립니다. 숨 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의미 있는 여행지와 더불어 ‘우리 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도 갖게 해 줄 것입니다. 그 첫 시리즈로 작가가 저서 <근현대사를 따라 떠난 여행>에서 특별히 선별해 보완해 쓴 ‘근현대사의 흔적들’을 소개합니다. 앞으로 매주 화요일에 게재될 남 작가의 인문여행기에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 드립니다. <편집자 주>


◇ ‘짜장면’을 탄생시킨 인천 차이나타운

‘짜장면’은 왜 인천에서 시작됐을까?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들어오면서 군속 상인 40여 명도 함께 왔다. 이들은 조선에 체류하면서 상거래 활동을 했는데, 이것이 사실상 조선 화교(華僑)의 시작이다.

인천은 외국인이 서울로 들어오는 관문이었다. 모든 입국자가 제물포 항구에서 내려 서울로 오거나 인천에서 활동했다. 외국 군인도 들어오고 아펜젤러, 언더우드와 같은 선교사도 들어와 첫발을 디딘 곳이다. 모든 화물도 제물포 항구에서 선적과 하적을 했다.

1883년 일본이 인천에선 처음으로 3500평 규모의 조계지를 조성했다. 청나라도 이듬해 일본 조계지 서쪽에 5000평 규모로 조계지를 조성했다. 이어 서양 각국도 뒤따랐다. 이로써 인천은 국제도시로 변모했고, 신문물 유입의 창구 역할을 했다. 서양식 문물을 다루는 상점 ‘양행(洋行)’이 본격적으로 들어서면서 조선 사람들은 생전 보지도 못한 신문물에 마냥 신기해 했다. 울타리 밖 세상이 점점 눈에 들어왔다.

사진 인천 -차이나타운
인천 차이나타운 전경. 사진= 남민


제물포 항구 근처엔 특히 일본인과 중국인이 크게 늘어났다. 1899년 말엔 중국에서 서구열강을 배척하는 의화단운동(義和團運動)이 일어나 서구 열강과 중국간 전쟁 같은 나날이 계속되자 산동성 주민들이 대거 인천으로 들어왔다. ‘코리안 드림’이었다.

이때 17살 청년 우희광(于希光)도 산동성에서 배를 탔다. 청나라 사람들이 거주하는 북성동 조계지에서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던 우희광은 악착같이 돈을 모아 1911년 경 마침내 자신의 음식점을 연다. 국수 같은 하얀 면을 삶아 건져내 소스를 비벼 먹던 고향 산동의 음식 ‘작장면(炸醬麵)’이었다. 부두 노동자들이 싼 값에 간단히 먹을 수 있었기에 그들에겐 최고의 인기 음식이었다. 한 시가 급한 노동자들은 길거리에 앉아 후루룩 비벼먹고 또 일을 해야 했다.

작장면은 이후 입소문을 타고 한국인에게도 퍼져 나갔고 우리 입맛에 맞게 달콤한 캐러멜과 춘장이 가미돼 오늘의 까만 짜장면으로 발전했다. 60~80년대엔 최고 인기의 외식 메뉴였다. 짜장면은 2006년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100가지 문화 상징’에 선정됐다. 이식(移植) 음식이 한국 음식 문화로 정착한 사례다.

전란을 피해 건너온 우희광은 때 마침 중화민국의 건국을 기념하는 의미로 ‘공화국의 봄’을 뜻하는 ‘공화춘(共和春)’이란 간판을 내걸었다. 이 무렵 화교 사이에선 작장면 가게가 크게 성업했고 그 중심에 공화춘이 있었다. 짜장면의 발상지였던 이 건물은 지금은 짜장면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중국인이 거주하는 조계지는 청관(淸官)으로 불리며 차이나타운이 되었다. 청관은 청나라 관청이 있는 동네란 뜻이다. 일제 강점기에 위축됐던 차이나타운도 광복 후 한중 국민이 서로 함께 우호증진하자는 의미에서 ‘선린동(善隣洞)’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 대한제국 경제 조여온 전초기지 ‘일본 조계지’ 

 

사진 인천 -일본 제1은행
일본 제1은행 전경. 사진=남민

차이나타운의 동쪽은 일본 조계지다. 일본은 이 곳을 대한제국 침탈의 전초기지로 삼았다. 특히 금융기관이 물밀 듯이 들어왔다. 일본 영사관(지금의 중구청사 건물) 앞쪽으로 일본 제1은행, 일본 제18은행, 그리고 프랑스풍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은 일본 제58은행 등이 자리잡고 대한제국 경제의 숨통을 죄었다. 그때 건물들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변혁기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청나라와 일본, 두 나라가 제물포에서 조계지를 나눠 갖고 서로 이권을 다투던 곳, 그 둘의 경계선이 지금 ‘청일 조계지 계단’이다. 인천중부경찰서 건너편에서 산을 향해 직선으로 난 이 오르막 길을 경계선으로 왼쪽은 중국 조계지, 오른쪽은 일본 조계지다. 길을 오르며 좌우로 보면 청나라풍과 일본풍의 서로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우리 땅에서 길 하나 사이로 두 나라 풍경을 맞는 이례적인 곳이다.

일본은 자국민이 계속 늘어 포화상태가 되자 이 일대 바다를 매립해 기존 조계지보다 넓은 무려 4000평이나 늘렸다. 하지만 그 마저도 부족해 산 너머 동네로 확장해 나갔다. 그렇게 생긴 것이 응봉산 동쪽의 홍예문이다. 일본 조계지 확장을 위해 길을 내며 만든 무지개 모양의 문이다. 우리 인부들의 인명 희생이 컸던 공사였다.

서양인들의 유입까지 늘자 일본은 자국 조계지 안에 호텔을 지었다. 최초의 근대식 호텔 ‘대불호텔’이다. 아펜젤러도 언더우드도 인천에 내려 자고 갔던 곳이다. 서구 나라들도 가세했다. 미국 북감리교 소속 아펜젤러는 인천에 도착해 처음으로 오르간을 통해 예배를 보았다. 이 땅에 감리교가 첫발을 디딘 역사로 기록됐다. 그 후 인천내리교회가 탄생했고 그 교회 2대 목사 존스는 우리나라 최초로 서구식 초등교육기관인 ‘영화학교’를 설립했다.

사진 인천 -청일 조계지 경계계단
청일 조계지 경계계단. 사진=남민

독일 사람은 ‘세창양행’이라는 생소한 가게를 열어 이 땅에 없던 서양식 자명종 시계, 석유, 램프, 유리제품, 성냥 등 무려 200여 제품을 팔았다. 이러한 가게가 ‘양행’이다. 우리 고용자들은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이러한 서양문물을 이 땅에서 가장 먼저 접한 사람이 되었다.

세창양행은 새로운 물건을 들여오면서 신문에 광고도 했다. 광고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몰라서 사용할 필요가 없었던 물건도 눈에 들어왔고, 쓰다 보니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으로 변해갔다. 지금 우리가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없는 것과 같았다. 덕분에 세창양행은 이 땅에서 새 시대를 선도한 기업으로 크게 성장하기도 했다.

각국 사람들이 모인 곳에 시장이 없을 수 없다. 1880년대 초반 서울에서 내려온 객주 정흥택 형제가 신포동에 생선전을 열자 중국인들이 양파와 당근, 우엉 등 생소한 채소류를 들고 나왔다. 이어 일본인들도 생선을 판매하며 경쟁이 치열해졌다. 시장은 점점 활기를 띠었고 오늘날 인기 먹거리 신포만두와 닭강정을 탄생시킨 유명한 ‘신포시장’으로 발전했다.

인천이 외국 문물 유입의 창구가 되면서 서울로 가는 길도 우마차로는 감당할 수가 없게 되었다. 1899년 마침내 서울과 인천간 화물을 수송할 경인선이 개통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다. 노량진에서 북성동 인천역까지 33km의 철길이 놓이자,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서구 문물이 유입돼 갔다.

사진 인천 -한국철도 발상지 인천역
한국철도 발상지 인천역 사진=남민


오래전부터 싹 터오던 우리의 근대화 물결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급류를 탔다. 수송 수단이라는 플랫폼도 전국으로 깔려 나갔다.

인천 개항장 거리를 거닐다 지금의 시각으로 생각해 본다. 시대의 변화를 감지해 자발적이고 선제적으로 그 변화의 물결에 올라 탈 것인가, 떠밀려 수세적으로 침탈당할 것인가. 인천 개항장은 우리에게 근현대 역사를 들여다보고 미래를 대비하라고 말해 준다.


◇ 함께 둘러보면 좋을 인천의 명소

▲ 송도 = 국제도시답게 이국적으로 솟아오른 마천루가 마치 세계건축물박람회장처럼 보인다. 잘 조성된 거리를 거닐다 보면 멋진 카페와 음식점, 쇼핑몰도 만난다.

▲ 소래포구 = 첨단 국제도시 송도 옆에는 오랜 시간을 품어온 재래식 어항 소래포구가 있다. 한 폭의 풍경화 같은 포구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명소로 언제나 인파가 붐빈다. 싱싱한 해산물을 저렴하게 맛볼 수 있어 인기다. 근처 소래습지생태공원의 염전은 수도권에서 즐길 수 있는 이색 관광지로 손꼽힌다.



글·사진=남민 여행작가 suntopi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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