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비바100 > Leisure(여가) > 방송·연예

[비바100] ‘조선구마사’에 이은 ‘설강화’ 역사왜곡 논란

[트렌드 Talk]

입력 2021-04-01 19:00 | 신문게재 2021-04-02 11면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SunSnowUntitled-4
논란의 중심에 선 JTBC '설강화'(사진제공=JTBC)

 

방송 2회만에 전격 폐지된 SBS ‘조선구마사’에 이어 JTBC ‘설강화’가 역사왜곡 논란의 중심에 섰다. 올 하반기 방송예정인 ‘설강화’는 몇줄의 시놉시스만으로 민주화 운동 폄훼, 안기부 및 간첩 미화 등의 논란에 휩싸였다. 

 

‘설강화’는 2018, 2019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드라마 ‘SKY캐슬’의 유현미 작가, 조현탁 PD가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추는 작품으로 6월 항쟁으로 16년 만에 대통령 직접선거가 치러진 1987년을 배경으로 한다. 일찌감치 정해인, 블랙핑크의 지수, 유인나, 장승조, 윤세아 등 쟁쟁한 배우들로 출연진을 꾸리며 올해 최고 기대작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1987년 피투성이가 된 여자기숙사로 숨어든 수호(정해인)와 그를 운동권 학생으로 오해하고 치료를 해준 영초(지수)가 이끄는 이야기로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싹트지만 실제로는 수호가 남파간첩이었다는 설정이 문제가 됐다. 1987년 당시 정부는 민주화 운동이 북한에서 남파한 간첩의 선동에 의한 것이라고 몰아갔고 수많은 운동권 학생, 민주화를 부르짖던 이들이 ‘간첩’으로 몰려 안기부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독재정권이 민주화 운동권에 씌운 ‘간첩’ 프레임이 실제인 것처럼 드라마 소재로 쓰이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와 더불어 캐릭터들의 면면도 폄훼 혹은 미화할 위험요소로 지적됐다. 여자주인공의 이름인 ‘영초’가 1970년대 중후반 유신독재에 맞섰던 ‘천영초’를 연상시킨다는 것. 

 

천영초는 독재정권과 남성중심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던 여학생들의 모임 ‘가라열’을 이끌던 운동권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를 연상시키는 여자주인공이 간첩, 안기부 팀장과 삼각관계를 이룬다는 설정에도 우려를 표했다. 대쪽 같은 안기부 1팀장으로 설정된 이강무(장승조)가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 나선 이들을 고문하고 죽음으로 몰고 갔던 안기부를 미화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졌다.

 

2021040211톡톡

 


쟁쟁한 출연진 덕분에 일찌감치 협찬과 광고를 협의했던 기업들은 철회를 선언했고 한 온라인 커뮤니티는 JTBC 앞에서 트럭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급기야 방송도 되지 않은 드라마를 폐지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오기에 이르렀다. 해당 국민청원은 4월 1일 오후 기준 15만8000 동의를 넘어섰다.

일파만파 커져가는 논란에 JTBC는 두번에 걸쳐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첫 번째 성명문에서 JTBC 측은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고 안기부와 간첩을 미화하는 드라마가 아니다”라며 “80년대 군사정권을 배경으로 남북대치 상황에서의 대선정국을 풍자하는 블랙코미디다. 그 회오리 속에 희생되는 청춘남녀들의 멜로드라마”라고 입장을 전했다.

이에 2017년 출간된 천영초의 이야기 ‘영초언니’ 담당 편집자는 자신의 SNS에 “민주화운동의 배경에 간첩이 있었다는 내용을 블랙코미디로 제작한다는 것은 민주열사들에 대한 지독한 모욕과 혐오범죄”라며 “영초언니의 남편 정문화 선생님은 민청학련 사건으로 간첩 혐의를 받아 모진 고문을 받았고 젊은 나이에 영양실조로 돌아가셨다”고 분노를 표했다. 더불어 “드라마 작가가 조금이라도 ‘영초언니’를 참조한 것이 아니길 바란다. 이 이름과 인물을 들어본 적이 있다면 이렇게 쓸 수는 없다”고 다시 한번 한탄했다.

한 차례의 입장 발표에도 비난 여론이 사그러지지 않자 JTBC는 다시 한번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 입장문에서 “현재의 논란은 유출된 미완성 시놉시스와 캐릭터 소개 글 일부의 조합으로 구성된 단편적인 정보에서 비롯됐다. 파편화된 정보에 의혹이 더해져 사실이 아닌 내용이 사실로 포장되고 있다”며 자료 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논란이 되는 부분에 대해 짚었다. 그 과정에서 주요한 내용과 캐릭터 설정, 전개 상황 등이 노출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첫회에 벌써 문제들이 나온 ‘조선구마사’는 이해되는 면이 있다. 반면 ‘설강화’는 아직 방영되지 않은 작품”이라며 “정확한 증거들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나오는 목소리에 제작진 입장에서는 힘든 일, 일종의 스포일러를 한 셈”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이어 “방영 전에 드라마 내용을 밝힌 초유의 사태”라며 “그런 방식의 스포일러는 이 드라마를 보려고 기대하던 소비자의 권리를 뺏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1987년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허투루 다뤄서는 안되는 시기”라는 날 선 목소리와 “아직 방영되지 않은 드라마에 대한 억측”이라는 주장이 극명하게 엇갈리며 뜨거워지고 있는 ‘설강화’ 논란은 ‘역사 왜곡’에 대한 엄중하고도 무거운 책임감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