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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엄태구는 '낙원의 밤'을 꿈꾼다

[人더컬처] 영화 '낙원의 밤' 엄태구
넷플릭스 통해 지난 9일 개봉

입력 2021-04-19 18:00 | 신문게재 2021-04-2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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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주연작 ‘낙원의 밤’에서 자신의 이름과 같은 캐릭터를 만난 엄태구.(사진제공=넷플릭스)

 

“시나리오에 제 분량이 많은 것, 너무 어색했어요.”

박훈정 감독의 영화 ‘낙원의 밤’은 특이한 영화다. 주연을 맡은 엄태구의 이름에서 성 만 바꾼 채 ‘태구’라는 조폭 2인자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다소 쉰 듯한 저음의 목소리와 피곤한 동공, 조카 바보일 때 보이는 환한 미소는 흡사 ‘엄태구는 평소에 저럴 것’이란 환상에 젖게 만든다.

‘낙원의 밤’은 ‘신세계’ ‘마녀’ 등 누아르 장르의 마스터 박훈정 감독 신작으로 조직의 타깃이 된 한 남자와 삶의 끝에 서 있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극 중 태구는 업계에서 양아치로 불리는 양사장(박호산)의 오른팔이다. 다들 충직하고 실력이 남다른 그를 탐하지만 우직하게 형님을 모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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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유난히 좋아하는 그는 ‘동물농장’애청자로 알려져있다.평소에도 부모님이 키우는 반려견의 영상을 보며 힐링한다는 엄태구.(사진제공=넷플릭스)

시한부 인생을 사는 배다른 누나(장영남)와 조카만이 유일한 가족이지만 상대 조직에 의해 무참히 살해 당한다.

 

영화 속에서 그가 비를 맞으며 망연자실 도로 위에 앉아있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비극의 시작을 알린다.


“촬영하는 내내 이름과 캐릭터를 동시에 불리니까 느낌이 색달랐어요. 시나리오를 쓰고야 저의 존재를 아셨다고 하니 감독님께서 일부러 의도하고 쓰신 게 아닌 건 확실해요.(웃음) 배우로서 겪은 ‘첫 경험’이 유난히 많은 현장인데 촬영이 끝나면 그날 촬영한 배우와 스태프들이 모두 모여 고생한 걸 같이 보고 다 같이 ‘수고하셨다’며 박수를 치는 시간을 가졌어요. 모두가 하나가 되는 그 순간이 정말 좋았습니다.”


캐릭터를 위해 9kg이나 증량한 그는 역할의 감정선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서울과 제주도를 오가며 가족을 잃은 느낌, 배신당한 상처 그리고 갑자기 자신의 삶에 들어온 재연(전여빈)에 대한 고민을 튀지않게 연기해야 했던 것.

 

“얼굴의 느낌만으로 태구의 서사가 보여졌으면 좋겠다고 해서 일부러 스킨과 로션만 바른 채 거칠게 뒀어요. 메이크업을 최소화 했죠. 게다가 곧 죽음을 앞둔 재연을 보면서 누나도 생각나고 동질감을 느꼈을테니 그 감정을 끊임없이 복기하며 연기했습니다.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데 완성작을 보니 전여빈 배우와 또 다른 작품에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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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낙원의 밤’ 엄태구(사진제공=넷플릭스)

큰 키와 강렬한 외모로 그동안 수 많은 작품에 출연한 그는 ‘밀정’의 악독한 일본 경찰과 ‘택시 운전사’에서 외국인 기자가 탄 택시를 모른 척 해주는 군인 등으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뭔가 세 보이는 엄태구의 속내는 술을 마시지 못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영화만 아는 반듯한 청년’ 그 자체다. 

액션도 곧잘 하고 남다른 운동실력을 갖춘 듯 보이지만 ‘아픈게 싫은 쫄보’기도 하다. 장르를 굳이 구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해보겠다”고 달려들지 않는다. 수줍지만 “건강을 해치는 현장과 다치는걸 싫어하는 편”이라며 할 말 하는 ‘요즘 것들’의 당당함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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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낙원의 밤’ 엄태구(사진제공=넷플릭스)

“3살 터울의 형(‘잉투기’ ‘가려진 시간’의 엄태화 감독)과 가끔 다투기도 했지만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형이 빌려온 비디오 덕분이었거든요. 나쁜 길로 빠질 새도 없었죠. 한번도 새벽 기도를 거르지 않는 부모님을 보고 자랐으니까요. 고등학교 때 40분간 저에게 ‘같이 배우하자’고 꼬여낸 친구가 없었더라면 사실 연기를 할 생각도 못했을거예요. 그 친구는 지금 미술로 진로를 틀었지만요.”


당시 형과 질릴 때까지 돌려본 추억의 애니메이션 ‘명견 실버’는 그의 인생작이 됐다. 그는 “여전히 가끔 보고 OST도 듣는다”면서 “제 안에 ‘명견 실버’ 만큼 진하고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영화는 없다”고 단언했다. 

‘낙원의 밤’은 지난해 베네치아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받았고 극장 개봉 대신 지난 9일부터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이에 대해 엄태구는 “극장에서 다 함께 보지 못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많은 나라에 동시에 공개되고 여러 매체에서 만날 수 있는 건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이라며 “몇 년간 연락이 끊긴 친구에게 ‘나쁘지 않던 걸’이라는 문자를 받은 게 가장 기쁜 일”이라고 미소지었다.


“지난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일은 계속 쉬었지만 재활을 하며 몸을 추스린 건 ‘신의 한수’ 같아요. 과연 나을까 싶었던 고질적인 허리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제 맞으면 아픈 액션도 충분히 소화가능해요. 지금은 OCN 드라마 ‘홈타운’을 한창 촬영 중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8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멜로를 찍는 것그리고 ‘농물농장’에 나가는 거예요. 불러만 주시면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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