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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신비로운 블록버스터 판화의 세계 ‘나무, 그림이 되다’展…그렇게 풍경, 사람, 생명은 삶이 된다

[Culture Board] 경이롭다, 나무의 절절한 외침

입력 2021-05-05 18:30 | 신문게재 2021-05-0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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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관람객이 강행복의 15미터에 달하는 입체 대형작 '화엄'을 감상하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서툴게 조각칼로 파내던 고무판화, 노동운동·학생운동이 격렬했던 1980년대 걸개그림 등으로 익숙했지만 ‘회화’ 혹은 ‘예술’로 접하기는 어려웠던 판화가 대규모 전시로 관람객들을 만난다. 

 

예술의전당과 한국목판문화연구소가 함께 선보이는 ‘신비로운 블록버스터 판화의 세계-나무, 그림이 되다: LAND·HUMAN·LIFE’展(이하 나무, 그림이 되다, 5월 30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은 삽화, 민중예술 등으로 인식되던 ‘판화’의 회화적 가치를 만날 수 있는 전시다. 

 

2000년대 이후 현대 목판화 대표작가 18명의 대형 목판작품을 비롯한 700여점이 ‘국토’(LAND, 김준권·류연복·김억·정비파·손기환·홍선웅), ‘사람’(HUMAN, 정원철·이태호·유근택·강경구·이동환·이윤엽), ‘생명’(LIFE, 윤여걸·유대수·안정민·배남경·김상구·강행복) 3개부에 나뉘어 전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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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결과 칼맛을 살린 강경구의 '소정 변관식 초상.

이 전시의 참가작가이기도 한 김준권 한국목판연구소장은 “우리끼리는 서로를 ‘무림의 고수들’이라고 한다”며 “목판 자체가 대중적인 장르는 아니지만 한때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 후 다들 산중으로 들어가 30년 넘게 칼잡이로 살고 있다. 도시에 있더라도 어디 구석에선가는 열심히 파고 있다. 그런 끈질김을 한번은 끄집어내고 싶었다”고 기획의도를 전했다.

 

전시감독인 김진하 나무아트 대표는 “2000년대 한국 현대 목판화를 짚어보고자 했다” 기획의도를 전하며 “엄밀히 판화의 시작은 신라시대의 불경 인쇄술이다. 어려운 글 내용을 번안해 그림으로 쉽게 풀어내면서부터다. 그 후 고려의 팔만대장경, 조선시대 삼강행실도 등 삽화로 쓰여 왔다”고 설명했다.

 

“엄밀히 목판화의 출발은 서구나 한국이나 중국이나 삽화입니다. 출판미술로 선보이다 서구 인쇄술의 도입으로 쇠퇴해 명맥만 남아 있다 1958년 화가들이 목판화작업을 시작하면서 순수미술로 편입됐어요. 1980년대 민중 미술로 활황기를 우리다 사회적 활동력이 감소되면서 대중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졌죠.”

 

이번 전시에서는 그 후 30여년 동안 은거한 판화작가들이 끊임없이 작업해온 결과물들을 만날 수 있다. 저마다 다른 경향과 조형적 특성을 보이는 작가들 6명씩을 ‘국토’ ‘사람’ ‘생명’로 나눠 배치했지만 자연풍광과 하나되는 사람, 사람에서 이어지는 생명이 자연스레 연결돼 현재 우리의 삶을 조망한다.

 

‘나무, 그림이 되다’전의 특징은 판화 고유의 복수성, 복제성 보다는 회화성에 집중한다는 데 있다. 전시의 문을 여는 김준권 작가의 유성목판 ‘달 뜨는 월출산’ ‘가파도 보리밭’, 채묵목판 ‘산의 노래’ ‘이 산 저 산’ 등과 판문점, 백령도부터 고성까지를 설치작품으로 구현한 김억의 ‘DMZ 연작’, 세월호참사의 그 바다를 연상시키는 유연복의 ‘날아오르다’, 명암과 채도 등의 섬세한 표현이 돋보이는 정비파의 ‘백두대간’ ‘울산 까마귀떼’ ‘낙동강-그리운 고향’ 등 다색목판화를 ‘국토’ 파트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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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거리에 내걸린 이태호의 '푸른 김수영'과 '백남준'.

 

‘사람’ 파트는 현실과 역사를 아우르는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리놀륨판화 그림과 설치로 구현한 정원철의 ‘과거의 굴레’ ‘마주보기’ ‘물화된 질문’ 등 초상화는 잊어서는 안되는 역사의 아픔을 담는다.  자신의 얼굴을 칼로 긋고 파내 덜어내 가학적으로 다룬 유근택의 ‘자화상’과 ‘인간’ 시리즈 등에는 누구나 가진 딜레마, 존재에 대한 고뇌가 고스란히 담겼다.

 

실제로 길거리에 내걸렸던 ‘이육사 시인’ ‘불꽃 전태일’ ‘약산 김원봉’ ‘푸른 김수영’ ‘백남준’ 등 한지에 목판화로 표현한 이태호의 작품들은 아픈 과거 혹은 시대의 반영이다. 복도를 가로지르는 그의 ‘기차놀이’ 역시 인상적이다. 

 

대한민국의 근현대 역사를 판화 그림으로 차곡차곡 기록한 이동환, 동양화 전공을 살려 드로잉 후 나무판의 결과 칼맛, 판화의 원초성을 그대로 살린 강경구, 코로나19의 습격으로 괴로운 지금의 사회·경제·정치상황과 더불어 사람들의 현실을 담은 ‘그럭저럭 산다’ 등 이윤엽의 작품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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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이 돋보이는 윤여걸 '푸른 하늘 은하수'.

 

판화의 편견을 깨고 입체적으로 표현한 강행복의 ‘화엄’은 15미터에 달하는 대형작품으로 ‘신비로운 블록버스터’라는 부제에 꼭 들어맞는 작품이다.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유대수의 작품들도 흥미롭다. 

 

‘나무인가?’ 혹은 ‘산맥인가? 싶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혼돈의 세상에서 고뇌하며 혹은 넋을 잃은 듯 서 있는 인간이 있다. 도무지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꽉 들어찬 배경을 바라보고 서 있는 사람들에서 어쩌면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스토리텔링에 근거한 윤여걸의 ‘갈라파고스’ ‘푸른 하늘 은하수’, 삶의 소중한 네 가지를 글과 조형으로 표현한 배남경의 ‘한글연작’ 등 30년 은둔 고수들의 공력이 느껴지는 세밀함과 기발함, 단순한 판화·걸개그림의 개념을 넘어 설치작품으로 진화한 ‘신비로운 블록버스터 판화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글·사진=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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