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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안규철 개인전…어쩌면 진짜일지도 몰라 ‘사물의 뒷모습’

입력 2021-05-1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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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규철 개인전
안규철 개인전 ‘사물의 뒷모습’(사진=허미선 기자)

 

“흔히들 사람의 뒷모습에서 낯설고 새로운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고들 하죠. 평범한 사물의 뒷모습을 통해 진짜 모습, 거기 담긴 사람들의 삶과 세계, 진실을 발견하고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둔 작업입니다.”

13일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기자들을 만난 안규철 작가는 개인전의 제목 ‘사물의 뒷모습’(7월 4일까지 국제갤러리 부산점)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1991년 데뷔작 ‘무명작가를 위한 다섯 개의 질문’부터 최근작 ‘인생에 실패하는 법’ ‘필경사의 방’ ‘침묵의 방’ ‘49개의 방’ 등까지 드로잉, 회화, 오브제 등 36점이 전시된다.  

 

안규철
안규철 작가(사진=허미선 기자)

“미술에서 시각적 만족과 매혹을 기대하는 관객들에겐 불편하고 낯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미술이 감각적 가치만 추구한다면 예술의 근본가치를 놓치는 게 아닐까 라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작업이죠.”

“회고전 같은 건 가능한 하고 싶지 않았다”는 안규철 작가는 지난해 1997년부터 재직 중이던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 퇴직,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지금까지 내가 뭘 해왔는지, 그 중 남을 것과 수정할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됐다”고 전시 개최 이유를 전했다.

이에 최신작과 더불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데뷔작부터 그의 대표 작품들은 복원 및 수정을 거쳐 2021년 버전으로 재현돼 관람객들을 만난다.

 

그의 설명처럼 “문 2개와 의자로 표현된 1991년 독일 유학생 시절 첫 작품부터 지난해 ‘69개의 약속’ 등 저의 작가 여정에서 중요한 갈림길 혹은 이정표 같은 작품들”은 일상의 사물들을 재조합해 의미를 부여하는 ‘오브제 조각’, 텍스트가 중심으로 들어오는 ‘수작업’, 건축 규모의 설치작 그리고 퍼포먼스 영상 작업 등 4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무명작가를 위한 다섯 개의 질문’에 대해 안 작가는 “작가로서 미술계에 발 들인 첫 작품으로 자화상과도 같은 작품”이라며 “두개의 문 중 하나에는 ‘인생’(Leben) 또 다른 하나에는 ‘예술’(Kunst)이라고 써 있다. ‘인생’으로 들어가는 문에는 손잡이가 없어 갈 수 없고 예술의 문에는 손잡이가 다섯 개나 있어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안규철 개인전
안규철 개인전 ‘사물의 뒷모습’ 중 데뷔작 ‘무명작가를 위한 다섯 개의 질문II’(사진=허미선 기자)

 

“인생과 예술 사이, 어중간한 데 머물던 제 모습을 보여주는 공간이죠. 삶으로부터 떠나와 예술가가 되겠다고 여기 와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저의 상태를 사물로 함축해 보여주는 방식으로 선택한 것이 의자예요. 의자를 화분에 심고 키워 살아 있는 나무로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은 불가능한 일을 하고 있구나 생각하면서도 저 문을 열고 예술의 길로 가겠다는 다짐을 담은 작품이죠.”

A4 사이즈의 캔버스 200점을 이어 붙여 소용돌이치는 바다 풍경을 재현한 ‘그들이 떠난 곳에서-바다II’는 2012년 광주비엔날레 출품작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그는 “광주비엔날레 당시 전시 전 200장을 뜯어 뒷골목, 공원, 풀숲 등 광주 시내 곳곳에 내다 버렸다. 보름이 지난 후 광주일보에 분실공고를 냈다”고 전했다. 

 

안규철
안규철 개인전 ‘사물의 뒷모습’ 중 ‘그들이 떠난 곳에서-바다II’(사진=허미선 기자)

 

“20여점을 회수했어요. 170점 이상이 돌아오지 않았죠. 돌아온 20여점으로 듬성듬성 걸어 전시해 관람객들이 보이지 않는 부분의 그림을 상상하도록 했죠. 이 행위를 통해 1980년 광주에서 실종된 이들을 소환하고 싶었어요. 광주 시내 어딘가를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이들이요. 이번 전시 작품은 그때 사라진 조각들을 다시 그려 재현했어요. 당시 관객들은 이런 상태의 그림을 볼 수 없었죠.”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나는 칠판이 아니다’는 1992년 작품의 개정작이다. 칠판 앞면은 폴란드의 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의 시 ‘독자에게서 온 편지’ 인용문이고 뒷면은 칠판을 만드는 물감으로 숲의 풍경을 표현하고 있다. 

 

안규철
안규철 개인전 ‘사물의 뒷모습’ 중 ‘나는 칠판이 아니다’(사진=허미선 기자)

“어떤 독자가 아담 자가예프스키에게 보낸 편지 중 ‘당신의 시에는 죽음, 그림자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 삶과 빛에 대한 이야기도 써보세요’라는 내용이 저한테 하는 말처럼 들렸어요.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 그림자에만 집중하느라 혹시 사람의 감정, 작품에 보내는 감동에 소홀하지는 않았나 반성하기도 했죠.“

지난해 작품 ‘69개의 약속’은 선거관리위원회가 보유하고 있는 역대 대통령 선거 포스터 69개를 스캔해 사람의 얼굴과 구호를 제거하고 포스터에 쓰인 단색조의 평균치를 잡아 캔버스에 물감으로 재현한 작품이다.

“선거 포스터에서 메시지와 이미지를 제거한 잔해를 모으면 흥미롭겠다 싶었어요. 저 안에서는 역대 대통령 후보들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어필하고 있어요. 하지만 모아두면 큰 차이가 없어요. 거의 대부분이 실현되지 않은 약속들이거든요. 아이러니하게도 공허한 약속들을 모노크롬으로 만드니 예쁜 그림이 됐어요.”

 

설치작품이었지만 전시 종료와 더불어 사라진 것들을 기록하고 남겨 두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 변주, 복원한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축소 모형으로 재현된 ‘112개의 문이 있는 방’(2004), ‘침묵의 방’(2015), 길에서 만난 두 사람 중 하나가 또 다른 이를 통째로 잡아 먹은 후 희생자가 떨어뜨렸다는 만화같은 이야기와 증거물을 대비시킨 ‘모자’, 세 켤레였던 구두가 7켤레로 늘어 서로의 발등을 밟아고 맞물리는 ‘2/3사회’(1991), 3벌의 외투를 9벌로 늘려 안과 밖을 나누는 역할로 변형된 ‘단결 권력 자유’(1992) 등이 그들이다.

 

안규철
안규철 개인전 ‘사물의 뒷모습’ 중 ‘69개의 약속’(사진=허미선 기자)

 

신작 중 ‘인생에 실패하는 법’은 세월호 참사에서 받은 충격과 그로 인해 떨칠 수 없었던 “왜, 무엇이 잘못돼서 우리는 구조하는 데 실패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작품이다.  

 

“우리 사회는 6.25 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어요. 문화적으로도 K팝이 전세계를 석권했죠. 이상했어요. 그리 좋지 않은 상태인데 혼자 좋고 만족스럽고 들떠 있고…(세월호 참사가) 그 허상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어떻게 하면 실패하는지를 가르치는 데는 없어요. 대표적인 성공법 10가지를 뒤집어 실패하는 방법을 적었어요. 일종의 역설이죠. 당시는 포스터로 만들어 관객에게 배포했던 걸 캔버스로 옮긴 작품이죠. 왜 우리는 실패하는가, 실패에 대해서는 왜 준비하지 않았나 등의 질문들을 붙들고 있었어요.”

 

안규철
안규철 개인전 ‘사물의 뒷모습’ 중 ‘2/3사회’(사진=허미선 기자)

안규철 작가는 “작가생활 30년 중 23년을 교직에 있었다. 하루 종일 딴 걸 하느라 짬짬이 작업을 하곤 했는데 어느 날은 30분도 안됐다. 농담처럼 ‘30분짜리 예술가’라고 말하기도 했다”며 “그렇게 살다 작년 정년퇴직 후 자유로워진 시간이 새삼스러웠고 아무 것도 없던 무명작가 시절을 자꾸 회상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월급받는 교수 작가로 하고 싶은 작업을 하면서 살다가 전업작가라는 본래 위치로 돌아온 느낌이에요. 제가 지금 갑자기 다른 작가가 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미흡했던 것들, 해봐야 했는데 안해본 것들을 하면서, 30분이라도 노력하면 좀 더 가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산=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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