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뉴스 > 오피니언 > 사설

[사설] 전력기금으로 메우는 ‘탈원전 청구서’ 문제 있다

입력 2021-06-02 16:47 | 신문게재 2021-06-03 19면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원자력발전소의 단계적 감축이 구체화되면서 직격탄을 맞은 사업에 대해 보전할 길이 열렸다. 2017년 10월 이후만 잡아도 한국수력원자력의 손실 규모는 최소 1조 4445억원 규모에 이른다. 조기 폐쇄된 월성 1호기, 사업 중단된 대진원전 1·2호기와 천지원전 1·2호기, 사업 보류된 신한울 3·4호기 등을 반영한 추정액이다. 원전 사업자인 한수원의 손실은 명백히 원전 조기 폐쇄와 신규 원전 건설 중단으로 발생한 것이다. 사업자 손실보상은 당연하며 적법한 근거는 어차피 마련돼야 했다.

그런데 전력산업기반기금(전력기금)으로 비용 보전을 해주는 것은 문제시된다. 전력기금은 전기요금의 3.7%로 채워지는 준조세 성격이 있다. 한수원의 피해는 신재생에너지를 늘리고 원자력 등의 발전 비중을 줄이는 정책의 결과물이다. 즉, 에너지전환 정책 또는 에너지전환 로드맵의 이름을 한 탈원전 정책에 기인한 것이다. 기금을 손실 보상에 전용하는 것은 전력산업의 지속적인 발전과 기반 조성 목적에서 벗어난다고 보는 이유다. 어디까지나 원전 계획 백지화와 가동 중단 등 정책 추진 과정에서 야기된 결손이기 때문이다.

같은 관점에서 작년에 전력기금의 거의 절반(48.74%)을 들인 신재생에너지 지원 역시 취지와 합목적성을 일탈한 것이다. 이 기금으로 한수원 손실분은 물론 한국에너지공과대(한전공대) 설립 비용까지 일부 조달한다. 이대로 가면 4조 원에 다가가는 전력기금도 빠르게 고갈될 전망이다. 정부는 전력기금 지출 한도 내 집행을 강조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국민 부담이 추가된 거나 다름없다. 징수 시점의 차이일 뿐, 전력기금은 준조세 성격이 있다. 정부 정책 추진을 위해 예비비처럼 충당해도 되는 돈이 아니다.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온 사실상의 세금을 이렇게 쓰려면 전력기금 부담금을 낮추고 여유재원 규모를 줄이는 게 더 합당하다.

그러기 전에 원전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국내 원자력 산업계를 초토화하면서 미국과 해외 원전시장 공동협력을 논의한다는 발상은 매우 모순적이다. 탈원전을 추진하면서 원전 수주에 나서는 국가에 원전 건설을 맡기고 싶겠는가. 이럴 바에는 최고 수준의 원자력 안전을 담보로 당당하게 정책 수정을 해야 한다. 원전 정상화는 탈탄소와 분산화, 지능화라는 에너지 패러다임에도 적합하다. 내년부터 전기요금으로 보전하는 탈원전 청구서를 받아들 국민도 씁쓸할 것이다. 전력기금 운용에 대한 국회 견제도 쉽지 않다. 기금 건전성 문제를 재고해볼 시점이다.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