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비바100 > Leisure(여가) >

[브릿지경제 신간(新刊) 베껴읽기] <이것이 우리가 원했던 나라인가> 진중권

입력 2021-10-23 08:00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국내 대표 진보 논객이던 저자는 ‘조국 사태’를 계기로 그때까지 의로운 친구이자 동지로만 알았던 진보 진영의 민낯을 보았다고 고백한다. 궤변과 망상으로 먹칠된 민주주의. 무시된 절차, 파괴된 규칙, 그리고 훼손된 법치. 그는 “국민은 기만당했고 촛불은 배신당했다”고 일갈한다. 

 

 

 

* ‘자유민주주의’ 못 배운 민주당·친문(親文) - 저자는 지금 민주당이 김대중·노무현의 자유주의 정당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상왕’ 이해찬이 지휘하는 친문 그룹의 운동권 조직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나마 운동권 시절에는 지향하는 ‘가치’라도 있었으나 지금은 지저분한 ‘이권’으로 묶여 있다고 비판한다. 당을 주도하는 586 세력이 과거에 자유민주주의를 배우지 못하고 민중민주주의를 배운 탓에, 그들은 ‘민주당’이라는 이름을 쓰면서도 사실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고 일갈한다. 문 대통령의 ‘연성 독재’와 김어준이라는 ‘정치무당’에 세뇌된 광신적 집단의 대중독재가 대한민국을 위기로 몰고 있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자유민주주의를 배척할 때 민주주의는 인민민주주의와 동의어가 된다”면서 “자유 없는 민주주의가 법치를 파괴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그들을 ‘잡것들’이라고 비난한다.

 

* “권력자는 끝없이 자신을 의심해야” - 저자는 문인이면서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체코의 바츨라프 하벨(Vaclav Havel) 대통령을 현 집권당 사람들과 비교한다. 하벨은 권력의 유혹과 싸움에서 패한 이들의 특징을 이렇게 지적했다. “자신은 오직 국가에 봉사하고 있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러는 가운데 자신이 탁월하다고 믿게 되고 특권을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저자는 정확히 이 정권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꼬집는다. 하벨은 대통령 특권 속에 살면서도 “권력을 쥐었기에 나는 끝없이 나 자신을 의심했다”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조국 전 법무장관을 이 무책임한 정권의 표상이라고 공박한다. “윤석열 현상의 바탕에는 이 정권이 무너뜨린 공정에 대한 열망이 있다”면서 “이 정부는 헌법과 법률을 무시하고 공정한 노력을 통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계층 사다리 자체를 없애 버렸다”고 비판한다.

 

* “꼬리지르기란 없다. 가상현실과 음모론으로 흐려라” - ‘범죄자들의 변명 기법’이 있다. 먼저, 절대 안 했다고 잡아뗀다. 증거가 나오면 별 거 아니라고 한다. 아니면 “너도 비슷하게 안 했냐”고 물고 늘어진다. 그것도 안되면 꼬리 자르기를 한다. 조국 전 장관이 오래 전에 SNS에 공유한 글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런데 민주당 사전에는 그 ‘꼬리 자르기’란 게 없다고 말한다. ‘대안 세계’를 만들어 그 가상현실의 세계로 국민을 이주시킨다는 것이다. 유치한 음모론과 맹랑한 미담도 덧붙여진다. 과거에는 특권을 비판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반칙이 이미 규칙으로 굳어졌기 때문에 그것마저도 불가능해 졌다고 말한다. 추미애 장관이 아들 부당청탁 논란에 “법 위반이 없는데 무슨 문제냐”고 말한 것에 대해 저자는 “제 아이만 특별히 여기는 엄마가 한 나라의 정의를 담당하는 부서장을 해도 되는 것이냐”고 되묻는다.

 

* 법리와 윤리, 그리고 303번의 묵비권 - 조국 전 장관은 검찰 수사에서 묵비권을 행사했다. 저자는 “공적 사안의 진실을 밝힐 ‘공인의 책무’를 외면하고 ‘사인의 권리’ 뒤로 숨었다”며 “심히 구차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인사청문회 준비 때 주위에 “불법은 없습니다”라고 말한 것에 대해선 “청문회는 유무죄를 가리는 형사재판이 아니라 공직후보자의 윤리적 자격을 심사하는 절차인데, 엉뚱하게 법의 기준을 들이밀었다”며 고의성을 지적한다. 나아가 “윤리가 필요한 곳에 법을 들이대더니, 정작 불법은 윤리적 일탈 쯤으로 치부해 버린다”고 비판한다. 진보학자의 법 지식을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쓰지 않고, 자신과 가족의 불법과 탈법 편법을 변호하는데 쓰고 있다고 나무란다. 가족의 위법에 대한 미안함도, 공직자로서 갖춰야 할 책임감도, 감시에 실패한 민정수석의 자기반성도 없이 오직 자신과 가족의 법적 권리 의식만 갖고 있다고 꼬집는다. 공적 마인드란 눈꼽 만큼도 없는 그에게 애초에 공직을 맡겨선 안되었던 것이었다고 그는 결론 짓는다.

 

* 고작 ‘윤석열 자르기’에 끝난 검찰개혁 - 요란을 떨었던 검찰개혁은 결국 고작 윤석열 자르기로 전락해 버렸다. 국민의 55%도 검찰개혁이 변질되었다고 답했다. 국민이 원한 것은 권력에서 독립된 중립적 검찰, 절제된 권한 행사와 국민의 감시를 받는 민주적 검찰이었다. 그런데 이 정권이 원한 것은 ‘독립성은 고집 않고, 자신들의 통제에 순응하는’ 검찰이었다. 그래서 ‘선출된 권력’임을 내세워 민주적 통제 운운하며 억지로 검찰을 길들이려 무리수를 둔 것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그는 “이 정권이 진정한 검찰개혁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애초에 특수통인 윤석열을 기용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검찰개혁은 ‘우리 비리에는 아예 손도 대지 말라’는 것이었다. 윤석열의 저항이란 것도 결국 권력비리 수사 중단지시를 거부한 것인데, 그게 개혁에 대한 저항이냐고 되묻는다.

 

* 검찰개혁은 왜 실패했나 - 저자는 “개혁에 성공하려면 먼저 자기를 내려놔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진정성을 인정받기 때문이다. 저자가 보기에 현 정권의 개혁은 노 전 대통령의 불행한 죽음에 대한 대중적 트라우마를 이용해, 슬쩍 대중을 위한 개혁으로 포장한 것 뿐이다. 개혁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 것은 거기에 이들 엘리트들의 ‘사적 원한’과 ‘공포’가 실려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국민이 원한 것은 ‘정의’로서의 검찰개혁인 반면 정권은 ‘원한’으로서의 검찰개혁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여당 정치인들은 지금까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정치적 알리바이로 활용해 왔다”면서 “지금 그들이 하려는 것은 노무현이 하려던 그 검찰개혁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면서 우리는 “모두 속았다”고 말한다. 개혁을 검찰 자율에 맡겼던 게 노 전 대통령의 실책이었다는 게 그들이 일관된 인식이다.

 

* 법조 출신들이 법치 파괴에 앞장 -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자유민주주의는 법의 지배를 통해 실현된다”고 한 말로 민주당이 발끈한 적이 있다. 저자는 ‘법의 지배’와 ‘법에 의한 지배’를 혼동하는 교양 부족 탓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법의 지배란 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합의인데, 저들은 대통령과 주변 사람들이 법 위에 있으려 한다고 비판한다. 법을 자외적 통치의 수단으로 악용한다는 것이다. 최강욱 의원은 윤 총장을 겨냥해 퇴직 검사의 출마를 1년간 금지하는 법을 발의했고, 추미애 전 장관은 한동훈 검사장을 겨냥해 비밀번호해제법을 제안했다. 법치 파괴에 앞장선 민주당 의원들 다수가 하필 법조계 출신이다. 저자는 ‘율사’라면서 정작 ‘리걸 마인드’가 전혀 없다고 비꼰다. 율사 출신 김남국 의원의 “감찰 사유가 있는지 없는지는 감찰을 해 봐야 안다”는 말을 지적하며 “그런 논리라면 조국도 구속 사유가 있는지 없는 지 진작에 구속했어야 할 것”이라고 꼬집는다. 저자는 “그들의 이념화된 확신이 무섭다”며 법조인 출신들이 법치 파괴에 앞장서는 현실을 비판한다. 

 

* 이코노미스트 “법 위에 서 있는 사람들” - 이코노미스트는 “더 개방적이고 반대의견에 관대한 정부를 만들겠다던 문재인 정권이 반대 의견을 참지 못해 소송을 남발한다”고 지적했다. 저자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쓴 스티븐 레비츠키의 말을 인용해, 민주주의 파괴는 법원 검찰 국세청 등 심판 역할을 하는 기관을 장악하는 것, 즉 심판을 매수하는 것으로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지금 문재인 정권은 ‘법의 지배’를 ‘법에 위한 지배’로 착각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제 편의대로 법을 만들어 집행할 권한을 가졌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고, 재판을 받다가 자리를 뜨려 하고, 법정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다며 법관을 탄핵하겠다고 나선다. 이들은 입법도 정치적 무기화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명기한 정청래 의원의 언론중재법, 역사적 해석의 다름을 인정 않는 역사왜곡처벌법, 국립묘지에서 친일 인사 묘를 파내는 파묘법, 코로나에 의사들을 강제동원하고 심지어 북한에 파견케 하자는 법안까지 하나 같이 해괴하다고 비판한다. 반자유적인 것을 떠나 아예 전체주의적이라고 비난한다. 저자는 이들이 ‘리걸 마인드’가 아닌 ‘운동 마인드’로 입법을 하기 때문이라고 일갈한다. 제 대의를 관철할 수 있다면 시스템 따위는 좀 망가져도 된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 ‘대통령 패싱’이 문제 될 것 없는 풍토 - 저자는 현 정부가 늘 ‘우리 편의 정의’를 실현하려 한다고 비판하면서 그런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는 기회주의자들의 천국이 된다고 지적한다. 역겨운 것은 그들은 그 짓을 역사적 사명으로 안다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런 허위의식이 결국 자기 당 지자체장의 성추행 사건 때문에 치르는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도록 한 당헌까지 바꿔 후보를 내는 무책임한 정치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를 ‘역사의 전진’이라고 포장한다. 저자는 이런 모든 문제의 근원은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부엉이 모임 출신들이 만든 ‘민주주의 4.0’이라는 친문 하나회를 배후로 지목한다. 조국 전 장관 수사를 대통령 인사권에 도전하는 쿠테타라고 우기더니, 정작 자신들은 대통령의 지시를 외면하고 대통령을 실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대통령 인사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로 본 신현수 민정수석이 사표를 냈음에도 대통령은 여전히 우유부단했고 ‘대통령 패싱’은 지금도 여전하다고 꼬집는다.

 

* 이영훈의 ‘반일 종족주의’와 조정래의 ‘토착왜구’ - <반일종족주의>를 쓴 이영훈 교수의 식민지근대화론과 <태백산맥>을 쓴 조정래 작가의 토착왜국론 모두를 저자는 비판한다. 이 교수 같은 수정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실증주의’가 얼마나 허구적인지는 이미 드러났다고 말한다. 최근 반민특위 부활을 주장하며 150만, 160만 친일파를 전부 단죄하자고 주장하는 조정래에 대해선 “결국 자신의 도그마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들은 모두 민족반역자로 단죄하겠다는 것이냐”고 일침을 놓는다. 저자는 운동권 필독서였던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바탕에 이런 ‘역사 수정주의’가 깔려 있었다고 지적한다. 이 책으로 역사를 공부한 현 집권세력은 친일을 청산하지 못한 것이 한국사회의 기저질환이라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해방 75년이 넘도록 여전히 분단에 기생해 존재하는 친일이 민족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착란에 빠져 있다”고 비판한다. 지금 살아있는 친일파가 없으니 자꾸 죽은 친일파를 무덤에서 깨내고 토착왜구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이다.

 

* 민족주의와 북한 문제 - 북한군의 우리 공무원 ‘사살’ 사건을 김어준과 이낙연은 ‘화장(火葬)’이라고 표현했다. 사과문이라고 보낸 북한의 통일전선부에 유시민은 ‘희소식’이라며 반겼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이 사건을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로 삼자고 했다. 저자는 “국민이 당한 ‘화’가 어느 새 ‘복’으로 둔갑해 버렸다”며 희생자 유가족에 대한 배려는 눈꼽 만큼도 없이 북한에만 자세를 낮추는 현 정부에 일침을 가했다. 유시민이 김정은을 계몽군주라고 추켜세운 것에 대해선 “이게 장성택과 김정남 암살을 지시한 이에게 할 소리인가”라고 꼬집는다. “여당이 피살자를 월북자로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며 대한민국이 싫어 월북한 사람까지 국가가 지켜줄 의무는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냐고 되묻는다. 그러면서 “국가의 존재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있다”면서 “민주당 사람들은 자국민이 비참한 일을 당하든 말든 남북관계를 모든 가치에 선행하는 최종 목표로 간주할 뿐”이라고 비판한다. 설훈 의원은 “그게 새벽 3시에 대통령을 깨울 일이냐”고 했고 국회는 규탄 결의안도 내지 않았다. 저자는 민주당 586 세대의 몸 속에 남아 있는 민족주의 이념을 경계한다. 그들에게 통일은 ‘공리’다. 모든 문제는 분단에서 시작되었으므로 미국과 손잡은 친일파와 그 후예들 탓이라는 것이다.

 

* 억지 프레임 만드는 김어준과 이해찬 - 2018년 2월말 김어준은 뜬금 없이 “곧 미투 사건이 터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3월에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정봉주 전 의원의 성추행 의혹이 터졌다. 마치 적의 비열한 음모가 사전에 기획된 것처럼 인식하게 만든 것이다. 비리 인사를 엄호하고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것이다. 이해찬은 “노무현재단과 민주당을 향한 검은 그림자가 좀처럼 걷히지 않고 있다”며 곧 뭔가 터질 것 같다며 ‘예언’을 했다. 모두 적의 모함과 공작이니 믿지 말라고 자락을 깔아둔 것이다. 이후 재단 직원의 폭로가 있었고 공익제보자는 졸지에 검은 그림자가 됐다. 유시민은 검찰에서 자기 계좌를 들여다 봤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 역시 혹시 있을지 모를 자신과 재단에 대한 검찰 수사를 특정 방향으로 해석하도록 미리 프레임을 깐 것이다. 저자는 “더 심각한 문제는 그들이 사실의 해석을 유도하는 차원을 넘어 아예 사실을 제작하려 든다는 데 있다”고 비판한다. 검찰개혁 역시 그런 ‘메타 프레임’의 폭력이라고 말한다.

 

* 거짓말을 하다 거짓을 사실로 만들다 - 저자는 현재의 대한민국을 ‘망상과 공작으로 통치되는 나라’라고 비판한다. ‘거짓이 사실을 단죄하는 나라’라고 말한다. 그는 검찰 음모론도 원래 권력비리 수사를 막으려고 급하게 날조된 이야기라고 단언한다. 자기들끼리 그 거짓말을 주고받다가 자기들이 그 거짓을 참으로 믿게 된 것이라는 얘기다. 조국은 검찰의 자신에 대한 수사가 대통령 탄핵을 노린 검찰 쿠테타의 일환이었다고 자기 세뇌를 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당정청 전체가 자기들의 비리는 ‘무시해도 좋을 실수’이고 벗겨줘야 할 누명으로 처리하면서, 검찰에는 악마라는 망상적 프레임을 씌웠다는 것이다. 그는 “숭고한 망상 속에 단체로 실성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 절대로 사과하지 않는 김어준 - 저자는 김어준과 유시민이 이 나라의 ‘정신적 대통령’이라고 말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구실을 못하는 사이에 사실상 두 사람이 그런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이다. 김어준이 음모론으로 하나의 세계를 지으면, 유시민은 그 허구에 논리적 정합성의 외관을 덧씌우는 식이다. 김어준의 ‘성은’을 입어야 지지자들 사이에서 존재감이 생기기에 다들 그의 방송에 못나가 안달이다. 계좌추적 음모론과 관련해 유시민은 사과했다. 다만 제 거짓말을 ‘공작’이 아닌 ‘실수’라고 했다. 그런데 김어준은 “냄새가 난다”며 퍼트린 그 숱한 음로론에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하지 않았다. 김어준의 사과란 ‘교주’의 무오류 신앙을 깨는 것이기에 그렇다. 가장 심각한 그의 거짓말은 ‘세월호 고의 침몰설’이다. 저자는 유가족의 절박한 심정과 대중의 집단적 외상을 그는 돈을 버는 데 이용했다고 질타한다. 음모론자들은 남을 속이기 전에 그 거짓말이 참된 진실이라고 자기 세뇌부터 하기에 김어준의 사과가 없는 것이라는 얘기다.

 

* ‘집단’만 있고 ‘지성’은 없는 집권당 - 저자는 현 정권 사람들의 책임의식을 비판한다. 그들은 책임을 지는 대신에 아예 책임의 ‘정의’를 바꿔 버림으로써 책임에서 벗어난다고 지적한다. 2015년 당시 문재인 대표는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선을 실시할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겠다며 당헌에 책임정치 조항을 넣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서울과 부산 재보궐 선거에 후보를 냈다. 저자는 “과거의 민주당은 그래도 미래로 나아가려 했으나 지금의 민주당은 과거로 돌아가려 한다”고 꼬집었다. 그들은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전투적 열정으로 똘똘 뭉친 일부 당원들을 필요할 때마다 소환한다. 민주당 지지층은 그렇게 친문의 친위부대로 전락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집단지성’이라고 미화하는 이들에게 저자는 “균일화된 집단에서는 전체의 판단이 하나의 견해로 쏠리게 된다”면서 그렇게 내려진 집단의 판단은 대부분 오답이라고 단언한다.

 

* 민주당이 혁신이 불가능한 이유 - 저자는 “민주당의 당심이 민심과 너무 괴리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믿음과 현실 사이의 부조화가 심각하다고 비판한다. 총선 승리도 조국 때문에 지지율 까먹다가 코로나 덕에 운 좋게 이긴 것이라고 평가절하한다. 그들은 재보궐 선거 패배도 검찰개혁이 미진했기 때문이라고 책임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고, 법사위원장으로 입법 독주를 주도했던 사람이 “저부터 반성하겠다”고 하더니 원내대표로 영전시켰다며 “이것이 이들의 반성 방식”이라고 꼬집는다. 저자는 민주당의 전당대회 투표 방식에도 이의를 제기한다. 일반 권리당원의 투표 반영 비율이 40%로 국민일반(10%)나 일반당원(5%)보다 월등하다는 것이다. 이 권리당원들의 대부분이 ‘대깨문’이니 민심과 당심의 괴리가 극복될 리가 없다고 지적한다. 그는 “집단지성은 집단 내 이질성을 전제로 한다”면서 모든 결정이 권리당원에 집중되니 당대표와 원내대표 최고위원들 모두 강성친문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그래서 민주당은 구제불능”이라고 단언한다.

 

* 평등도 공정도 사라진 사회 - 문재인 대통령은 청년의 날 기념식에서 “공정은 촛불혁명의 정신이며, 우리 정부의 흔들이지 않는 목표”라고 강조했다. ‘공정’이라는 말을 37 차례나 했다. 저자는 “조국 추미애 사태 이후에도 태연히 공정을 말하다니, 어디 딴 세상에 사시는 분 같다”고 힐난한다. 그들이 젊은 취준생들의 분노를 가슴으로 느끼지도, 머리로 이해하지도 못한다고 비판한다. 그는 요즘 젊은 세대는 공정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면서도 능력주의를 자연스럽게 여긴다고 말한다. 조금 더 배워 정규직이 되었다고 비정규직보다 2배 가량 임금을 더 받는 것을 불공정하다고 분노하기 보다는, 시험도 안 치른 이들이 정규직과 똑같은 임금을 받는 걸 불평등하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에게는 출발 조건의 불평등이 ‘운명’이라고 말한다. 경쟁의 결과로 발생한 불평등은 정의로 믿을 테니, 경쟁과정에서의 공정이라도 보장해 달라는 것이 젊은이들의 요구라는 것이다. 저자는 “현 정부에선 허구와 평등으로 공정이 제압당했다”고 질타한다. 

 

* 20대는 왜 ‘국민의힘’으로 갔나 - 20대 젊은이들이 국민의힘 지지에 나서자 여권은 그들을 ‘바보’라고 부르며 지지자들에게 그들의 얼굴을 잘 기억했다가 취업 면접 오거든 반드시 떨어뜨리라고 당부했다. 저자는 “민주주의를 외치던 40대가 벌써 그 알량한 권력으로 ‘취업’에 목매는 젊은 세대에게 자기들의 정치적 선택을 강요하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고 비판한다. 한 세대의 정치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결정적 요인은 그 세대가 공유하는 ‘역사적 기억’이다. 60대 이상에게 1960~1970년대 산업화의 추억이고, 50대 전대협 세대들에게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기억이다. 한총련 세대인 40대는 노사모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다. 반면에 2030 세대는 완전히 다른 정치적 주체들이다. 이들은 ‘포스트 운동권’ 세대로, 그 성향이 집단주의적이라 아니라 개인주의적이다. 이들이 가진 정치적 기억은 탄핵 촛불시위 뿐이다. 2030세대가 스윙 보터가 된 것은 그래서 당연한 일이다. 이 나라 정치적 정체성을 규정해 온 두 서사, 즉 산업화와 민주화의 기억에서 모두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들 세대는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정의를 믿지 않는다. 공정한 경쟁의 결과로 빚어진 격차는 기꺼이 인정하려 한다. 다만 그들은 ‘경쟁의 공정성’만은 꼭 지켜달라고 요구한다.

 

* 이준석 비판… ‘포퓰리즘 대신 정책을’ - 저자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을 지적한다. 특히 “여성할당제의 수혜자인 여성 장관들이 무능해 이 나라 민생이 무너졌다. 최고 실력자를 기용하기 보다 ‘수치적 성평등’에 집착한 결과”라고 한 말을 강력히 비판한다. 그가 시대착오라고 한 여성할당제는 모든 OECD 나라들이 시행하고 있으며, 덕분에 그들 내각과 의회의 여성비율은 10~20%인 우리보다 월등히 높아 평균 30%에 이른다고 전한다. 그가 문제 삼은 이공계 장학금 여학생 할당 규정도 이공계 여학생 비율을 30%로 끌어올리려 박근혜 정권에서 도입된 것이라며 ‘박근혜 키즈’라 할 이 대표가 할 말은 아니라고 꼬집는다. ‘이대남’ 표심을 안티페미니즘으로 풀기를 고집하는 것은 당내 입지를 위한 개인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라며, 그것은 제 이익을 위해 당의 이익을 해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 변질된 여당, 변화하지 못하는 야당 - 저자는 “민주당의 문제는 이익으로 뭉친 운동권 정당으로 전락해 자유주의적 정체성을 잃었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민주당이 지지를 획득하고 유지하는 방법은 혁명기 대중 동원 방식에 가깝다고 비판한다. 세상을 적과 아로 나누고, 허구적 명분과 날조와 선동으로 늘 정치적 흥분 상태로 유지하려 한다고 지적한다. 법을 어기고도 반성과 사과를 않는 것은 운동권 특유의 독선적 허위의식 때문이라고 말한다. 보수당은 변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젊은 대표 당선이 불러온 바람이 변화라고 생각했지만 벌써 사라지고 지금은 ‘어린 대표 리스크’를 걱정하고 있다고 말한다. 혁신의 요란한 ‘형식’만 있었지 ‘내용’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국민의힘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며 “아무리 민주당이 싫어도 발전이 아닌 퇴행으로는 중도층을 끌어들일 수 없다”고 비판한다. 그는 “국민들에게 에일리언과 프레데터 중 하나를 고르는 상황을 강요해선 안될 것”이라고 질책한다. 국민들의 선택을 받으려면 둘 모두 변화해야 한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