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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셀프 계산대에서 브레지어를 사면 생기는 일!

[이희승 기자의 사적라이프] 기계적 고객 응대만 남은 셀프계산대
사라져가는 캐셔들과 유통 공룡의 응대법에 그저 '한숨만'
해당기업, 마트 문의에도 답변없어 자괴감

입력 2023-02-02 18:00 | 신문게재 2023-02-03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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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영화 ‘카트’의 한 장면. 기계가 아닌 사람에 의해 해고되는 비극을 그렸다. (사진제공=명필름)

 

처음엔 꽤 효율적이라 생각했다. 다른 가정에 필요한 생필품이 가득 담긴 카트를 가늠하며 ‘최대한 덜 산 사람 뒤’를 보는 피곤함에 지쳐일까. 길게 줄을 서는 지루함보다 확실히 대기 시간이 짧은 것으로 기억된다. 가끔 등록되지 않은 상품이라거나 19세 미만이 사면 안되는 물품들은 상시 근무중인 직원들이 와 카드를 대면 해결됐다.

창고식 마트에도 잘 가지 않고 대부분 온라인으로 장을 보기에 급하게 한 두개 필요한 걸 사야 할 때 ‘셀프 계산대’만큼 편리한 건 없었다. 유통업계는 일반계산대와 셀프계산대가 공존하는 현상에 대해 “기술발전과 고객만족이 급격히 올라가고 있다”는 반응이다. 물론 이런 현상에 일자리를 잃게 된 캐셔들을 우려하지 않은 건 아니다. 4차 산업 혁명의 시기에 물건값을 계산하는 캐셔는 ‘2030년까지 완벽히 사라질 직업’의 상위권에 등장한다. 로봇이 쉽게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분석해서 사람만의 차별화된 역량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다. 기계에게 위임했을 때 비용이 더 싸게 들고 효율적인 일자리기 때문이다.

셀프계산대 탓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이미 주변에 상당하다.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마트 계산원은 가장 손쉽게 파트타임으로 할 수 있는 일자리였다. 대형마트가 아닐수록 베테랑 캐셔들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그들은 전직 은행원, 홍보마케터, 커뮤니케이션 강사로 빠른 손과 친절한 응대를 첫 사회생활로 ‘해 본’ 사람들이었다. 가끔 딸의 손을 잡고 동네 마트에 가면 “아이고, 포대기에 업고 왔던 때가 엊그제 같다”는 말과 함께 알아서 포인트 적립까지 해주는 호사까지 누린다.

하지만 대형마트는 확실히 다르다. 친분과 안부 대신 기계적인 멘트만이 오간다. 그들이 “봉투하시겠어요?”나 “잔돈은 포인트로 적립해 드릴까요?”를 하루에 몇번이나 할지 상상도 안된다. 다른 지점은 모르겠지만 유독 한 다리 건너면 누구의 엄마이자 이모, 삼촌인 우리 동네에도 당연히 셀프 계산대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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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하면 오타가 작렬하는 건 직업적으로 언제나 창피하다. 도리어 빠르게 답변한 글의 띄어쓰기와 문장이 정갈하다.(사진=본인앱캡처)

계산원은 3분의 1로 줄었고 대신 바코드를 찍어야 하는 공간은 두 줄로 훨씬 많아졌다. 바로 ‘그 사건’을 겪은 건 다들 저녁거리를 사들고 집으로 간 저녁 8시경 이었다. 예전부터 사려고 벼르던 브래지어가 운 좋게 내 사이즈에 맞춰 들어왔기에 한 손에 집어 들었다. 마침 배가 고픈 탓에 식품코너에 들려 유부초밥 세트도 샀다. 흰색 속옷을 들고 신선코너를 지나 계산대로 가기가 민망해서 들고있던 가방에 넣고 셀프 계산대로 막 들어선 참이었다.


계산대에는 아무도 없었고 뒤에 줄을 선 사람도 없었다. 혹시나 도난 방지음이 울릴 경우를 대비한 남자직원 한명이 입구에 서 있고 한산한 탓인지 나를 지켜보는 건 여성 직원 한명 뿐이었다. 내가 산 두 개의 물품이 차별을(?) 받은 건 그때부터였다. 유부초밥 8개가 가지런히 들어있는 박스를 계산하려던 나에게 그 여성분은 “속옷 먼저 하셔라”며 흰 봉투를 툭 던지고 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분은 ‘결코’ 던진 게 아니라 속옷구매를 할 경우 봉투에 싸기를 ‘권고’할 뿐이었다고 했다. 내가 창피할까봐 한 배려였다는 거다. 입구에 서 있는 남자분 앞에서 굳이 속옷을 대본다거나 바코드를 찾는다고 흔들었다면, 가치관에 따라 그런 ‘권고’를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신선식품 위에 새로 산 속옷을 놓고 싶지 않았고 우연히 먼저 든 게 유부초밥일 뿐이다. 이후 계산대에 올려둔 속옷을 이후 무려 두 번이나 “빨리 하셔라”고 독촉당했다. 소심나노 A형에 속한지라 당시 주변을 빠르게 둘러봤다. 행여라도 내가 계산을 늦게해서 이런 취급을 받는 건지 아니면 브래지어를 먼저 계산하지 않고 올려둔 게 누군가에게 젠더적인 모욕감을 준 건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쇼핑앱의 일대일 문의글로 올렸다. 자주 이용하던 곳이었는데 고객 센터의 문의유형 선택에는 교환, 배송, 주문결제 등 세부사항이 많았지만 이런류의 민원은 ‘사이트이용/개선’란이 전부라 그곳을 이용했다. 일처리는 빨랐다. 다음날 직원교육 담당분이 친절하게 전화를 주셔서 “셀프계산대의 경우 속옷을 직접 넣을 수 있게 봉투를 제공한다”고 알려왔다. 봉투에 대한 불쾌감이 아닌 식품보다 속옷을 먼저 계산하라고 독촉당한 사실이 더 화가 났다고 다시한번 강조했지만 기계적인 답변만이 돌아왔다. 즉 “직원교육 잘 시키겠다”로 귀결되는 상담원의 공식 멘트가 반복됐다.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책임자의 답변이 듣고 싶다고 전화를 끊자 웃프게도 1분도 안돼 “일대일 문의 답변이 등록되었다”며 처리완료 메시지가 떴다. 그저 “셀프 계산대의 매뉴얼이 따로 있는지 주류 판매는 성인인증을 하는데 이 일을 당해보니 속옷의 경우에는 어떤지 궁금하다. 책임자와 이야기 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나의 문의’는 상담원과 통화를 했다는 이유로 ‘완료처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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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팀장이 알려준 메일로 보냈으나 아무래도 스팸처리된 걸로 알아야 할까. 문자도 답변도 ‘대답없는 너’를 연상케한다.(사진=개인이메일 캡쳐)

화가 솟구친 건 바로 그 때였던 것 같다. 이 곳은 굴지의, 또 다른 대기업 계열의 마트를 몰아낸 동네의 독점적인 대형마트였다. 옆 집 엄마의 친구 혹은 지인들이 근무하는 곳이라 약간의 불친절을 겪어도 제대로 된 클레임은 걸어보지도 못하는 좁고 좁은 동네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진상을 부리거나 갑질은 꿈도 못 꾸는 곳이기도 하다. 당당히 추가 답변을 글로 남겼고 지점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현장의 이야기를 이럴 때 아니면 못 듣는다”며 경청했고 직원의 당시 상황도 친절히 설명했다. 하필 근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직원이었다는 것과 말이라도 내부적으로 공유해 시정조치에 들어가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코로나19로 비대면이 확산되자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이 집약된 기술인 셀프계산대를 도입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지만 여전히 사람의 온기는 필요한 법이다. 아이러니한 건 대기업 계열사인 이곳 홍보 담당자에게 위의 질문을 했더니 “셀프계산대 점유율이나 질문사항에 대한 자세한 상황은 담당부서에 확인을 해야 한다”며 전사적으로 휴일에 돌입해 연휴가 끝나는 25일에나 가능하다고 했다. 당연한 말이었다. 이에 3가지 정도의 질문을 알려준 이메일로 다시 한번 작성해 당일에 늦은 새해인사와 더불어 문자와 함께 전달했다.

결론만 말하면 이후 홍보팀에서 받은 공식 멘트는 전무하다. 이메일 수신 여부를 확인하니 메일을 보낸 지 정확히 2시간 후 읽었는데 어쨌거나 아직까지 답변은 없다. 그저 셀프 계산대의 점유율과 이용객들의 증가와 주요 연령층, 셀프 계산대에 계신 직원분들의 매뉴얼이 따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유통공룡이라 불리는 이 곳의 이름은 차마 밝힐 수 없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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