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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규의 행복칼럼] 아름다운 해골

입력 2014-09-04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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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규 미래행복인재연구원 대표
김봉규 미래행복인재연구원 대표
현대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사회이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 두 체제에 적응해 살고 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건 참 신기한 일이다. 왜냐하면 둘은 서로에게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18c 계몽주의자 칸트는 헌법의 기본정신인 인간존엄성의 개념을 확립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도구나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목적으로 대우받아야’ 한다. 인간 DNA를 가진 존재는 그가 누구이든 늘 절대적 가치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대중, 즉 ‘인간’이 주인인 사회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그 말이 틀렸다고 한다. 인간이 아니라 자본이 주인이란다. 가만 보면 헛소리가 아니다. 실제 인격은 몸값에 비례한다. 티코는 티코의 인격이 있고, 벤츠는 벤츠의 인격이 있다. 임대아파트와 타워팰리스의 인격이 다르고, 짝퉁과 명품의 인격이 다르다. 그래서 청소부는 언제나 ‘아저씨’이고 의사는 늘 ‘선생님’으로 남는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늘 싸운다. 전자는 인간이, 후자는 돈이 최고란다. 한쪽은 평등을 주장하고, 다른 쪽은 자유롭게 마음껏 불평등해지라 한다. 분배를 말하면 성장을 말하고, 형평성을 주장하면 효율성을 강조한다. 누가 이겼을까? 자본주의이다. 지금 인간존엄성은 헌법의 감옥에 갇혀 있는 꼴이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트라지마코스가 소크라테스를 비웃으며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

100세 시대로 진입하며 돈 없고 힘없는 삶의 그림자도 함께 오고 있다. 돈이 없으니 아파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치료받지 못하니 더 아프다. 가진 것이 없으니 찾아오는 이도 없고, 60세 이상 부모를 방문하는 비율도 그들의 가진 재산과 비례하는 형편이다. 10:90의 양극화로 치닫는 상황에서 아프고, 가난하고 외롭고, 소위 삼중고(三重苦)의 노년은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청년은 실업 걱정, 중년은 퇴직 걱정, 노년은 연금 걱정! 어쩌면 걱정으로 가득한 100세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돈을 생각하고, 돈을 말하며, 돈을 쫓고, 돈으로 산다. 정말 ‘머니머니’ 해도 머니가 최고다. 오죽하면 ‘만수르 신드롬’까지 나오겠는가! 세계최고의 부자 사진만 SNS에 올려도 돈이 생길 수 있다고 믿는다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허스트는 예술가답게 혐오의 대상을 관심의 대상으로 바꾸었다. 해골의 모델은 18세기 유럽인이며 35세 전후의 남성이라고 한다. 8601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는데, 이마 한복판의 핑크 다이아몬드만 약 70억이고 해골가격이 약 918억 정도이다. 실제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자신의 해골이 이렇게 축복받을 줄 상상이나 했을까! 허스트는 사람의 신체가 그 어떤 보석보다도 값어치 있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싶었다 한다. 그래서 제목도 ‘신의 사랑’이다. 하지만 해골이 정작 드러내는 진실은 다르다.

해골은 다이아몬드만 박히면 누구나 최고의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돈은 ‘신의 사랑’도 살 수 있단다. 그러니 결국 자본이 신인 셈이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다이아몬드로 덕지덕지 치장한 해골이 자꾸 눈에 거슬린다.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의 임금이 정말 벌거벗은 이유는 옷을 안 입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옷을 입고 있다고, 그것도 최고의 옷으로 치장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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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허스트(D. Hirst) <For the Love of God>

다이아몬드는 해골을 화려하게 하지만 생명을 주진 않는다. 착각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화려함에 도취되어 생명 없는 상태를 즐기게 만든다. 해골이 주제를 모르고 까불게 만드는 꼴이다. 발가벗은 채 활보하는 임금에겐 정신병원이 딱이다. 따라서 허스트의 해골은 ‘신의 사랑’이 아니라 ‘신의 저주’라고 해야 옳다.


인간이 진정 입어야 할 옷은 돈이 아니다. 돈은 최선을 다해 벌고, 있는 만큼 쓸 수밖에 없다. 나라가 좋아지면 분배의 정의도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헬리콥터를 자가용으로 이용하는 시대가 와도 그것이 진정 100세 시대가 지향하는 바는 아니다.

고갱의 말처럼 ‘우리가 어디서 오고, 지금 무엇을 하며, 또 어디로 가는지’ 알아야 한다. 의미가 참 생명이고 그것이 진정 입어야 할 옷이다. 무의미한 삶은 아무리 다이아몬드로 치장해도 흉측한 몰골로 남을 수밖에 없는 벌거벗은 해골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봉규 미래행복인재연구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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