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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같이 산 가족도 "다시 사귀자"

인간관계가 삶 결정한다

입력 2014-09-15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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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기업 중견간부로 퇴직한 이모(55)씨는 아침에 눈을 뜨기가 무섭다. 아이들은 말 없이 등교해 밤늦게나 집에 들어오고, 갑자기 아내와 하루종일 붙어있는 것도 어색하다. 별다른 취미가 없어 퇴직 후 얼마동안은 TV도 보고 산에도 올라봤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식상해졌다. 오늘도 쫓겨나듯 집에서 나온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하늘만 바라본다.

50대 이상 은퇴자가 급증함에 따라 '갱년기 우울증'을 겪는 중·장년층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누구나 한 차례 겪는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시선이 많지만, 전문가들은 "우울증의 경중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며 "가족들의 든든한 지지와 활발한 대외활동으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심리학계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인 '갱년기 우울증'은 신체적 균형이 깨지고 사회적 불안이 급증하는 40~50대에 나타나는 우울 증상을 통칭한다. 건강, 경제, 사업문제 등에 대한 걱정이 지나치게 많아지거나 이유 없이 울컥하고, 입맛이 떨어지고, 불면증이 지속되면 충분히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우울감이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친다면 병원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갱년기 우울증'은 대체로 여성에게는 40대 후반, 남성에게는 50대 후반에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여성은 폐경 후 3~7년 사이가 가장 위험하며, 남성보다 발병률이 3배 가량 높다. 주로 실망, 사업실패, 실현되지 못한 욕망이나 승진 탈락, 막중한 책임감 등 사회적 환경의 변화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은퇴 후 환경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우울증으로 처음 병원이나 심리상담소를 찾는 다수의 중·장년층이 회사에 대한 배신감과 앞날에 대한 막막함, 가족 내에서의 지위상실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것이 공통적인 의견이다. 특히 직장에서의 은퇴로 인해 수십 년 동안 일정시간만 함께 보내던 부부가 24시간을 같이 있게 될 경우 잦은 의견다툼이 벌어질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개인의 위기이자 가정의 위기로까지도 이어질 수 있는 갱년기 우울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주변 관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과의 주기적인 만남은 물론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과도 관계를 형성해야 새로운 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 최근 중·장년층에게 각광받고 있는 등산을 비롯해 각종 취미를 공유하는 모임과 종교활동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자녀를 모두 출가시키고 현재 홀로 아파트에 거주하는 김순애(66)씨는 종교 활동과 시니어 댄스모임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그녀는 "집에 혼자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우울감이 밀려오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모임에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을 찾는다"며 "비슷한 나이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같이 뛰고 얘기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답답한 속도 한결 편해진다"고 말했다.

은퇴와 동시에 변할 수밖에 없는 가족관계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특히 중·장년층 남성의 경우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저하로 인해 우울 증상 및 심한 감정의 기복과 짜증, 쉽게 화를 내는 증상과 피로 증후군, 발기부전 등의 성기능 저하를 보일 수 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가장의 지위가 상실됐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크게 작용한다.

김성재 하나신경정신과의원 정신의학과 전문의는 "중·장년층에게는 가족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가족들의 지지적인 태도와 폭 넓은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우울증 발병 가능성이 낮다"며 "가장의 흔들리는 자존심을 세워주고, 부부 사이에 공유할 수 있는 취미를 만들어 건강한 가족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우울증을 예방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최상진 기자 sangjin8453@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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