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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브렉시트와 ‘디어 마이 프렌즈’,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이야기

입력 2016-06-2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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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선 문화부장
난 지금껏 사람이 몸이 늙지 마음은 안늙는다고 생각했다? 오늘 보니까…마음도 늙더라.”

‘디어 마이 프렌즈’(이하 디마프)에서 불륜에 빠져 눈물겹게 헤어졌던 첫사랑을 30년만에 만나고도 이내 돌아온 이영원(박원숙)은 박완(고현정)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한참 후 그때를 후회했다는 완의 전언은 영원만큼이나 화려하지 않은 인생에 후회를 더하는 보통 이야기다.  

영국의 EU탈퇴, 이른바 브렉시트(Brexit)에서 기인한 세대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70%를 훌쩍 넘기는 사상 최고 투표율을 자랑한 투표 결과는 탈퇴 51.9%, 잔류 48.1%. BBC 분석에 따르면 1만 2369명 중 18세~34세는 60% 이상이 EU 잔류를 지지했다. 45세 이상부터 탈퇴비율이 늘더니 65세 이상은 60%가 탈퇴에 표를 던졌다. 대영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기성세대에 당장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 젊은이들은 “난 영국인이 아닌 유럽인”을 외치며 “우리의 장래를 고령자들이 망쳤다”고 원망을 쏟아냈다. 

더욱 절망스러운 사실은 투표 결과 발표 직후인 24일(현지시간) 영국 구글에 ‘EU가 뭔가?’, ‘우리가 EU를 떠나면 무슨 일이 생기나?’, ‘EU를 떠난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등 EU 관련 검색어가 대폭 늘었다는 것이다. 

어째 이 풍경이 낯설지 않다. 대통령·국회의원 선거 등이 있을 때마다 대한민국 역시 그랬다. 여전히 새마을운동 시절을 이야기하는 실버세대나 그들의 말에 ‘꼰대’를 먼저 외치고 귀를 닫아버리는 젊은 세대나 고집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그 고집의 성격은 분명 다르다. 실버세대가 풍부하다고 믿지만 사실은 지극히 제한적인 스스로의 경험에서 오는 지식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면 젊은 층의 고집은 자기연민 혹은 자기방어에서 기인한다. “요즘 젊은 것들은…”이라며 이해보다는 혀부터 끌끌 차며 눈을 흘기는 어른들과 도무지 변할 줄 모르는 사회에 대한 분노가 지나친 자기방어 혹은 연민을 불렀다. 

사실 세대갈등의 해소는 아주 작은 계기면 된다. 70세를 훌쩍 넘긴 모친이 ‘태양의 후예’ 유시진 대위로 상한가를 치고 있는 송중기가 연인 입가에 붙은 밥풀을 떼내려 다가드는 모습에 절로 “어머!”를 외친다. 한 선배의 80세 노모는 남의 나라 일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브렉시트가 뭐야? 브렉시트면 뭐가 달라져?” 
마치 유치원생처럼 꼬치꼬치 캐묻는 모친에 선배는 열심히도 공부를 해야 했다. 

“자식들 귀찮고 피곤할까봐 못물어보는 거야. 그래도 노인네들도 알아야지.”
잠시 짜증을 부릴 뻔했던 선배는 어머니가 하는 말에 “자꾸 옛날 얘기하면 꼰대 취급 받는다”던 후배들에 잠시 주춤했던 자신을 떠올렸단다. 경험 많은 어른이라고 다를까. 이후 선배는 해외반응을 찾아보고 그 영향을 팔로업하면서 노모에게 브리핑하듯 꼼꼼히도 설명했단다. 

“술 먹자는데 술 먹으면 뭐 달라져?…이게 마음도 늙는거지 뭐야”라던 ‘디마프’ 영원의 말은 옳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미뤄둔 채 마음을 꽁꽁 걸어 잠그면 뭐든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결론이 나게 마련이다. 그렇게 삶에 후회는 차곡차곡 쌓인다. 자신이 모르는 것이라고 혹은 자기 문제가 너무 커서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퉁바리부터 늘어놓는다면 브렉시트 같은 사태는 언제든 일어난다. 

“브렉시트가 되면 우리에겐 어떤 영향이 미쳐?”
투표 전 자식들에게 이렇게 물었다면, 자식들이 좀더 성의껏 설명했더라면 지금 영국의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디마프’와 후폭풍을 겪고 있는 영국의 브렉시트는 닮았다. 

박완은 주변 어른들에게 ‘꼰대’라고 막말을 퍼붓는 자칭 ‘애송이’다. 그런 완이 어른들을 이해하고 동화하며 ‘친구’가 돼가는 과정은 대한민국 뿐 아니라 전세계에 팽배한 세대갈등에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어쩌면 세대 공감은 솔직함에서 비롯된다. 아주 쉽게 송중기부터 시작해도 좋겠다.

허미선 문화부장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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