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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구의 돈 되는 이야기] 다시 ‘머리카락’도 수출해야 한다

입력 2016-08-1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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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통현악기 샤미센의 몸통은 고양이 가죽으로 만든다. 한때 일본은 이 악기를 만드는 고양이 가죽을 한국에서 수입해갔다.

동물애호가들이 이 사실을 알면 크게 분노하겠지만, 90년대까지도 일본악기제조업자들은 한국산 고양이 가죽을 선호했다. 특히 성남 모란시장에서 사들인 고양이의 가죽이 일본에서 인기였다. 그때만 해도 한국은 고양이 가죽만 수출하는 게 아니었다. 수출할 수 있는 물건이라면 무엇이든 내다파는 시기였다. 이 고양이 가죽을 일본으로 수출하는 걸 대행해준 곳이 ‘고려무역’이었다. 이 ‘종합무역상사’는 정부가 중소기업의 수출을 제도적으로 지원해주기 위해 설립한 기관이었다.

이때 고려무역이 수출대행을 해준 건 고양이 가죽뿐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수출할 수 있는 물건이라면 물불가리지 않고 해외로 내보냈다. 고양이 가죽을 수출한 건 심한 일이었지만, 뱀장어 가죽도 엄청나게 수출했고 우리 어머니의 머리카락에서부터 인조눈썹이나 이쑤시개까지 닥치는 대로 수출했다.

수출액은 작았지만 고려무역이 중소기업제품의 수출을 위해 갖가지 노력을 했던 건 부인할 수 없다. 필자는 중소기업담당기자로 이 고려무역을 약 10년간 출입했는데, 당시 일본에서 광어 도다리 등의 새끼고기를 일본에서 들여와 충무 앞바다에서 한 해 동안 키워 다시 수출하는 방법을 쓰기도 했다. 이 때 수입해온 새끼고기는 ‘수출용 원자재’로 인정받아 관세환급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

그땐 고려무역만 그렇게 수출에 몰두한 게 아니었다.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대한민국 수출의 주력은 고려무역 같은 ‘종합무역상사’였다. 그해 전체수출 607억원중 40%에 이르는 239억원을 삼성물산 등 8개 종합무역상사가 해냈다. 이들 8개사의 수출 실적 중 고려무역의 실적은 전체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고려무역은 영세기업들이 만든 물건을 해외에 파는 일을 맡아주는 최선의 기관이었다. 다른 7개 종합상사들은 모두 대기업그룹의 수출을 주로 대행하는 상사였기 때문이다.

사실 고려무역은 수출실적 및 자본금 등에서 ‘종합무역상사 지정요건’에 합당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예외규정으로 종합상사로 지정해줬다. 그래야 중소기업들도 해외수출기회를 잡을 수 있었으니까.

얼마 전 tvN 드라마 ‘미생’에서 종합상사 직원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엿볼 수 있었다. 그동안 ‘종합상사’로 지정되었던 삼성, 쌍용, 대우, 국제, 한일, 효성, 반도(LG), 선경(SK), 삼화, 금호, 고려무역 등 총 11개사의 영업사원들은 ‘미생’의 주인공들처럼 정말 땀 흘리며 일했다. 한국의 수출규모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게 해준 그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렇지만 아직도 소규모기업들은 수출부서가 없고, 어떻게 해야 수출을 할 수 있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이달 들어 중기청은 중소기업에게 수출기회를 확실하게 제공하기 위해 ‘글로벌 시장개척 전문기업(GMD)’ 47개를 선정했다.

좋은차닷컴, 경남무역, 한국프라켐, 인성엔프라, 비즈니어코퍼레이션, 뉴트리케어, 이우트레이딩, 에스엠티이엔지(SMT ENG), 에이케이트레이딩, 레어메탈코리아, 세경, 티알씨코리아, 코이스라 등은 아시아 및 아세안 중동지역 GMD로 선정되었다. 이 가운데 중국은 원동투자그룹과 명원이 선정되었다.

이번에 ‘GMD’로 선정된 수출대행업체들이 성공을 거두려면 예전에 ‘고려무역’을 지원해줬던 것처럼, 정부가 이들에게 과감한 세제 금융혜택을 줘야 한다. 그래야 ‘패션머리카락’도 내다파는 중소기업의 수출열기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이치구 브릿지경제연구소장 cetuus@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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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구 브릿지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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