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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서울 한복판에서 서울같지 않은 막다른 골목을 만나다, '체부동'

[It Place] 소문난 맛보러 갔다 감춰진 멋에 반하는 곳 '체부동'

입력 2016-11-02 07:00 | 신문게재 2016-11-0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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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부동=먹자거리'로 통하는 입구. 온갖 가게들이 몰려있다.(사진=이희승 기자)

 

체부동.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골목을 가졌다. 동네의 이름을 딴 저렴한 식당과 트렌드한 바(bar)가 공존하는 이곳은 몇년 전부터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서촌’의 한곁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걸그룹 내에서 뒤늦게야 매력을 발산하며 인기를 끈 멤버처럼 지금은 오롯이 본인만의 매력을 내뿜는다. 3호선 경복궁 역에서 바로 이어지며 인왕산의 절경을 제대로 만끽 할 수 있는 체부동을 10월의 마지막 날 걸어봤다.


◇ 먹자 골목만 기억하는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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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체부동 성결교회. 내년에 생활문화센터로 거듭날 예정이다.(사진=이희승 기자)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검색어에 ‘맛집과 관광’을 치지만 체부동에는 서울 ‘1호 우수건축자산’인 교회가 있다. 1931년 건축된 성결교회는 근대 건축양식과 한옥이 어우러진 형태로 85년간 지역주민의 사랑을 받아온 체부동의 랜드마크다. 얼마전 헐값에 중국인 사업가에게 팔려 헐릴 위기에 처했다 구사일생으로 지켜낸 문화유산이다. 골목 중앙에서 벗어나 그냥 스쳐 지나가기 일쑤지만 벽돌의 긴 면과 짧은 면이 번갈아 보이도록 쌓는 프랑스식 건축기법으로 지어졌다가 이후 한 단에는 긴 면만을, 다른 단에는 짧은 면만을 보이도록 쌓는 영국식으로 증축돼 이국적인 풍광을 자랑한다.

한때 일요일마다 발 디딜 틈 없이 몰렸던 신도들은 줄어들고 외지인과 관광객들이 몰려 잊혀지는 듯 했지만 주민들의 뜻을 전해들은 서울시는 이곳의 가치를 깨닫고 체부동교회 부지를 구입했다. 내부 리모델링을 통해 본당은 시민 생활오케스트라의 공연·연습실로, 한옥은 마을카페 등으로 꾸려 ‘체부동생활문화센터’로 운영할 예정이다.


◇ 길을 잃어도 즐거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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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모양의 모빌을 달아 놓은 외관이 정겹다.(사진=이희승 기자)

 

경복궁과 인왕산 사이에 자리 잡은 체부동은 예로부터 왕실의 핵심인물과 예술인들이 터를 잡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한옥들이 들어서고 주거 밀집지역으로 변모하면서 기본 생활에 필요한 가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광화문과 시청 등 시내 교통 요충지를 끼고 있으면서 부암동으로 향하는 길목과 안국동까지 이어지는 이곳은 서울에서 가장 느리게 발전되는 동시에 하루 걸러 새로운 가게가 들어서는 아이러니가 공존해 왔다. 평일 저녁에는 퇴근 후 직장인들이 몰려들고 주말에는 가족단위 손님들과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 떠오르며 각광 받고 있다.

얼마 전 오랜 직장 생활을 접고 골목 어귀에 있는 한옥집을 게스트 하우스로 꾸민 황민용(38)씨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콕 짚어’ 체부동이라고 말하면 서울 토박이어도 ‘어디?’라고 되물을 정도다. 통상 ‘서촌’으로 불려온 체부동의 매력은 서울 중심이면서도 전혀 서울같지 않은 점”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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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듯한 온기가 반가운 연탄과 집게. 족히 50년은 돼 보인다.(사진=이희승 기자)

 

황씨는 체부동에서 여러 번 길을 잃었노라고 고백했다. 실제 길은 어디론가 통해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기자 역시 돌고 돌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적이 여러 번이다.

오직 외국인 관광객만 받는 황씨 역시 ‘처음 이곳을 소개 받고는 과연 잘 찾아 올 수 있을까?’ 우려가 컸지만 도리어 그런 점이 매력으로 다가와 입소문이 났다고 웃어보인다. 하도 헤매는 사람이 많아 몇몇 골목 입구에는 ‘도로 나가는 길’이라는 문구가 적힌 이정표까지 등장했다.


◇어디를 가든 돈이 아깝지 않은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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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문 옆에 넝쿨장미와 빨간 우체통의 콜라보레이션. 세련됨의 극치를 보여준다.(사진=이희승 기자)

 

경복궁역을 나가자 마자 보이는 제과점 사잇길은 아예 ‘세종마을 음식거리’란 새 이름을 얻었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흩뿌리는 잠시동안 골목에서 가장 오래돼 보이는 방앗간에 들렀다. 고무 벨트가 돌아가는 동력으로 움직이는 기계에서 새빨간 고춧가루가 쏟아지고 있다. 30년째 이곳의 단골이라는 할머니는 “정든 골목길에 정육점도 세탁소도 다 떠나고 이제 이곳만 남았다”며 “이래뵈도 서울 사대문안에 아직도 돌아가는 방앗간 중 가장 오래된 기계”라며 옅은 미소를 짓는다. 옆 미용실에서 파마를 하고 보자기를 쓴 채 들른 아주머니도 “고추장 만들기에 최적의 가루로 빻아준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든다.

시장 입구에서 떡볶이를 팔던 96세의 할머니는 작년에 돌아가셨다. 시장의 마스코트이자 인근 배화여고 학생들에게 영혼의 음식으로 불렸던 무심한 듯 빨간 기름 떡볶이는 이제 세상에서 맛 볼 수 없게 됐다. 바로 옆 슈퍼 사장님이 “하루에도 몇번씩 안부를 묻는 손님들이 있어서 인지 아직도 떠나신 게 믿기지 않는다”며 쓸쓸함을 토로한다. 이곳 토박이들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낙후됐던 구도심이 번성해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이르는 용어)로 이곳을 거의 떠났지만 옛 모습을 기억하는 방문객들이 도리어 예전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었다.

글·사진=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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