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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벤더향 넘치는 경관농업의 노스탤지어, 일본 후라노(富良野)와 비에이(美瑛)

옥빛과 파란빛 섞인 아오이이케, 팜도미타·샤토후라노·사계채농원 등 전원적 풍경, 광고서 본듯한 평원의 나무들

입력 2016-11-1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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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 도미타’의 형형색색 꽃밭

지난 8월말 홋카이도 여행 2일차는 삿포로 외곽의 비에이와 후라노였다. 삿포로에서 약 155㎞떨어진 후라노는 홋카이도의 정중앙에 가깝게 위치해 있다. 비에이는 후라노에서 다시 동북쪽으로 30㎞ 더 가면 위치해 있다. 패키지여행이든, 개인여행이든 보통 후라노(富良野)와 비에이(美瑛), 다이세쓰산(大雪山)을 묶으면 삿포로에서 왕복 400㎞를 넘어가고 주마간산 격으로 구경한다해도 14시간이 훌쩍 소요된다.


필자도 아침 6시반에 일어나 8시에 집결해 후라노로 향했다. 약 2시간을 달려 제일 먼저 들른 곳이 후라노 호수공원이다. 폭풍우가 지나간 지 며칠되지 않아 흙탕물이 바닥에서 올라와 호숫물이 탁했다. 옆에 대형 공룡 조형물이 있지만 방치된 듯 좀 으스스하다. 아무래도 화장실도 들를 겸 잠시 멈춰 선 곳인 듯하다.
정말 비경은 낙엽송 자작나무 등 죽은 수몰나무들이 서 있어 물 색깔이 옥빛과 파란색을 섞어놓은 듯한 비에이의 ‘청(靑)의 호수(池), 아오이이케)’이다. 도카치타게(다이세쓰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 十勝岳, 해발 2077m) 분화 이후 콘크리드로 둑을 쌓으면서 호수가 조성됐는데 인근 시로가네 온천의 알루미늄 성분이 흘러들어와 비에이가와 강과 섞이면서 생성된 알루미늄 콜로이드가 빛의 산란을 일으켜 푸른빛이 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필자가 간 시점에는 홍수가 나서 가지 못한다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또 하나의 호수 비경은 삿포로 남서쪽으로 1시간 이상 달리면 나오는 도오야(洞爺)호수다. 도오야호수는 백두산 천지처럼 화산활동으로 생긴 칼데라 호수로 둘레가 43㎞에 달해 작은 바다에 가깝다고 한다.


관광객이 흔히 가는 곳이 후라노의 메론농장, 라벤더꽃농원인 팜도미타(Farm Tomita) 등이다. 사실 메론으로 후라노보다 더 유명한 곳은 후라노에서 남서쪽으로 떨어진 인접 소도시 유바리(夕張)이다. 이 곳에서 양질의 메론을 홋카이도는 물론 일본 전역에 대량 공급한다고 한다. 필자가 숙박한 호텔의 조식에서도 유바리 메론은 무제한으로 제공됐다. 하지만 따로 사먹으려면 매우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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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세쓰산 산자락의 시로가네 온천계곡으로 흘러내리는 시로히게노타키(흰수염폭포)


후라노와 비에이는 전형적인 홋카이도의 농업도시이며 경관농업관광의 중심지이다. 마치 북유럽의 평원처럼, 어떤 면에서는 제주도 중산간 목장 같기도 하고, 또 달리 보면 강원도 고냉지 재배지 같기도 하다. 다만 지평선이 거의 어느 곳에서나 아주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보이기 때문에 평안함을 선사한다. 경관을 파는 관광지라고 하지만 그래도 이곳은 엄연히 치열한 농업생산기지다. 밀·보리·옥수수·감자· 해바라기·콩 등이 해마다 번갈아 기계화로 대량 재배된다. 순무 등 양질의 푸성귀도 생산해 도시에 댄다.


라벤더꽃농원의 절정기는 7월말에서 8월초여서 필자가 간 8월말에는 다 지고 몇포기 잔영만 남아 있었다. 가이드는 라벤더꽃을 머리 속에 넣고 머리속으로 수백번 복사하면 전체 꽃밭이 라벤더로 만발하게 느껴지지 않겠냐며 상상력을 가져보라고 위로했다. 하지만 비단 라벤더꽃이 아니더라도 샐비어, 차이브, 아이슬란드양귀비, 해당화, 클레오메 등 다양한 빛깔의 꽃들이 후라노와 비에이를 수놓고 있었다.
라벤더꽃은 일본의 대표적 자생식물이 아님에도 경관 조성을 위해, 라벤더향을 향수·비누·향주머니(포푸리)·드라이플라워·착향료 등으로 상품화하기 위해 재배되고 있다. 필자는 라벤더향이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어봤다. 향기는 기대 외로 약했고 오히려 메론 아이스크림이 더 낫다는 생각이다. 왜 이리 빨리 녹는지, 그게 흠이다. 오히려 휴게소에 먹은 갓 딴 생옥수수가 달달하고 청량감으로 갈증도 달래 더 깊게 인상이 남아 있다.


이곳은 축산물과 유제품도 이름이 나 있다. 청정지역에서 방목하는 젖소의 육질과 맑고 풍부한 우유가 좋다고 한다. 실제로 하얀 우유를 사 마셔보니 1970년대 어렸을 적에 처음 먹어본 바로 그 느낌이다. 당연히 양질의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과 치즈도 품질이 뛰어나다는 게 이곳 사람들의 자랑이다.


후라노 호수공원에서 팜도미타로 가는 길에 들른 곳이 후라노 와인공장(Chateau Furano)이다. 와인의 본 고장이 유럽과 기후와 풍토가 유사한 후라노는 포도생산의 최적지라고 한다. 여기에 품종개량, 양조기술도입, 포도재배기술 개선 등을 통해 유럽의 와인을 뒤쫓아가려 애쓴다고 한다.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이나 다 괜찮았지만 아직은 깊은 맛이 덜하다는 느낌이다. 생 포도주스도 판매하고 있다. 넓게 펼쳐진 와이너리와 인근 도카치타게 산봉우리가 어우러지는 풍광은 마음을 풍성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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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게 펼쳐진 후라노의 와이너리(샤토 후라노)와 인근 다이세쓰산 도카치타게(大雪山 十勝岳, 해발 2077m) 산봉우리가 어우러지는 풍광


와이너리와 인접해 롯카테이(六花亭)이란 일본과자 판매점이 있다. 연매출 200억엔으로 대표상품인 ‘마루세이 버터샌드’는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기념품처럼 사간다. 바삭하게 부서지는 쿠기 사이에 농후한 화이트 초콜릿 버터크림이 고급스러운 맛을 자랑한다.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지라 큰 매력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매장의 분위기가 아늑하면서도 호사롭다. 질 좋은 현지의 낙농제품 및 유기농 곡물이 뛰어난 과자맛을 내는 데 일조한다.


그 다음엔 쭉 비에이 풍경을 쭉 둘러봤다. 지평선과 파란하늘이 맞닿은 구릉진 전원에 화룡점정하듯 서 있는 나무에 의미를 붙였다. ‘켄과 메리의 나무’, ‘세븐스타의 나무’, ‘마일드세븐 언덕’, ‘크리스마스 트리’ 등으로 명명된 사진 찍는 포인트에는 사람이 몰린다. 자동차, 담배 광고 등에 배경으로 나와 인상 깊은 뒤끝을 남긴 명소라 한다. ‘마일드세븐’은 국내서도 친숙한 일본의 대표적 담배 브랜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순한 담배’라는 어감이 흡연을 조장한다고 지적해 현재 ‘메비우스’란 이름으로 사실 강제 개명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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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이의 사계채언덕(四季彩の丘) 전경


이어 형형색색의 들판에 꽃을 심어놓은 비에이의 사계채언덕(四季彩の丘)에 들렀다. 팜도미타보다 더 넓고, 다양한 꽃들이 심어져 있다. 이어 다이세쓰산으로 가는 길에 미향부동존(美鄕不動尊) 암자에 들러 약수맛을 봤다. 차를 달리니 시로가네 온천가를 따라 온천호텔이 들어서 있다. 그 대각선 방향에는 양쪽 계곡을 잇는 블루리버 다리가 놓여 있다. 다리 위에선 계곡 낭떠러지 바위 틈으로 여러 가닥 갈라져 내리는 폭포수가 보인다. 마치 흰수염 같이 보여 명명된 시로히게노타키(흰수염폭포)가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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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세쓰산 산자락의 시로가네 온천계곡으로 흘러내리는 시로히게노타키(흰수염폭포)
 


이제 날이 어둑하고 써늘한 바람이 불며 안개비마저 내려 겁이 나는 시간이다. 삿포로 돌아가는 길 마지막 코스로 도카치타게로 올라가는 표지판이 박힌 등산로 입구를 돌아봤다. 가이드는 “언제 화산이 폭발할지도 모르고 비와 눈 등이 수시로 변덕을 부려 도카치타게를 등반하려면 아무리 좋은 날이라도 마지막 저승길이 될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고 겁을 줬다. 실제로 조난사고가 종종 일어나는 등반코스라 한다. 화산이 분출하면서 쏟아진 바위 덩어리로 이뤄진 등산로가 울퉁불퉁해서 등반하다보면 무릎연골께나 아프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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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의 양고기구이 맛집인 징기스칸 다루마에 관광객들이 줄을 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늦은 저녁시간 삿포로 시내로 돌아와서 양고기 구이를 먹었다. 일본에선 양고기 구이집을 ‘징기스칸’이라고 한다. 징기스칸 다루마, 마츠오 징기스칸, 스스키노 징기스칸 등이 삿포로 시내의 명소다. 징기스칸 다루마는 등심, 안심, 다리살 등 여러 부위를 한 접시에 내놓는데 이 곳 특제 간장양념과 마늘·파·양파·고춧가루를 듬뿍 담은 요리풍은 한국인의 입맛을 겨냥한 듯 만족스럽다고 한다. 곁들이는 삿포로 생맥주 역시 그만이다.


필자는 당초 징기스칸 다루마를 들렀으나 줄이 너무 긴 데다 생후 14개월된 아기가 고기굽는 연소가스에 힘들어할까봐 마츠오 징기스칸으로 옮겼다. 쾌적한 공간에 깔끔한 인테리어가 만족스럽다. 진한 양념에 적신 양고기를 단호박 감자 양파 등에 구워먹는 스타일로 한국의 불고기와 유사하다. 직화구이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징기스칸 다루마를 선호할 것 같다.


스스키노 징기스칸은 단골손님을 위한 소박한 가게로 시작했다가 한국 여행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한국 손님이 일본인보다 많을 정도라고 한다. 아이슬란드산 어린 양고기를 써서 살짝 익혀 먹으면 부드러운 육미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마츠오 징기스칸에서 양고기 굽는 소리에 삿포로의 셋째밤이 깊어갔다.



정종호 기자 healtho@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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