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 없이 아이를 키우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다. 조부모에게 아이를 맡기는 가정이 전체의 70% 수준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손주 봐주기만큼 힘든 일도 없다.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우리도 손주 양육을 위해 어린이 집 같은 양육시설과 적절히 연계되고 일본처럼 정부·지자체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리만 된다면 ‘손주 양육=노화 촉진’이라는 부담에서 벗어나고 출산율 상승이라는 덤까지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할머니 할아버지 없는 보육은…
보건복지부 산하 육아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자녀 양육을 조부모에게 맡기는 가정의 비율이 매년 높아지고 있다. 2009년만 해도 23.2%에 불과했었는데 2012년 35.8%에 이어 2015년에는 65.6%까지 크게 높아졌다. 2017년 기준으로는 70%를 넘어섰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할아버지 할머니 없이는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얘기다. 맞벌이가 대세인데다 우리 사회의 복지 수준이 아직은 완벽하지 못한 탓에 결국은 가까운 부모님께 아이를 맡길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나마 요즘은 양육의 대가를 공공연하게 바라는 조부모들의 니즈를 충족시켜 주고 있어 어떤 의미에선 윈-윈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자녀로부터 손주 양육비를 받는 조부모가 80%에 육박했다. ‘정기적으로 받는다’는 응답이 49.8%, 비정기적으로 받는다는 응답도 27.8%에 달했다. 밀레니엄 세대 부모들 때와는 달리 ‘무조건적인 희생’은 옛날 얘기가 되어 버렸다.
◇ 고령자 1인 가구 속증
최근 우리사회 고령화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고령자 1인 가구’의 증가세다. 혼자 살다 보니 이른바 ‘고독사’ 위험에도 노출되는 등 사회문제화되기도 한다.
통계청의 ‘2017 고령자통계’ 자료를 보면 2016년 말 현재 가구주가 65세 이상인 전체 고령자 가구 약 386만 7000 곳 중 33.5%인 129만 4000 가구가 고령자 1인 가구다. 전체 고령자 가구 173만 4000 가구 중 54만 3000 가구(31.3%)였던 2000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2000년 이후 고령자 가구 중 1인 가구 비중은 줄곧 30%를 웃돌고 있다. 그만큼 혼자 사는 노인이 증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2017년에는 고령자 1인 가구가 133만 7000가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고령자 1인 가구가 앞으로 더욱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이란 점이다. 통계청 전망으로는 2025년에 199만 가구에 이어 2035년에는 300만 3000가구로 처음 300만을 넘어서고 2045년에는 371만 9000 가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이들 혼자 사는 고령자들을 자녀가 함께 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면 노인 고독사 문제와 출산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높다. 일본에서는 실제로 그런 제도적 지원책이 이미 시행되고 있다.
◇ ‘부모 봉양’ 인식은 갈수록 희미해져
갈수록 1인 가구의 연령대가 높아져 80세 이상의 고령자 가구 비중이 속증할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은 올해 80세 이상 고령자가 가구주인 1인 가구 비중은 전체의 28% 수준이지만, 2045년에는 38.2%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65~69세 고령자 비중은 올해 25.1%에서 2045년에는 15.0%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고령자 1인 가구의 증가와 더불어 해를 거듭할수록 연령층이 높은 고령자 1인 가구가 증가할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함께 살며 부모를 봉양해야 한다는 인식은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들어선 고령자의 노후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최근 조사에서도 65세 이상 고령자는 부모의 노후를 ‘가족과 정부·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의견이 32.6%로 가장 많았다. ‘부모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응답도 27.2%로 나타났다. 가족 중에도 장남 등 특정인보다는 ‘모든 자녀’가 함께 부양해야 한다는 견해가 60.0%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고령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다.
◇ 우리도 일본처럼 ‘3세대 동거’ 지원 필요할 날이 올 듯
이웃 일본의 경우를 보자. 몇 해 전 일본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가 손주 있는 55~74세 국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육아는 조부모에 의지 않고 부모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응답이 80%나 되었다. 그 만큼 힘들다는 얘기다. 70%는 ‘힘들지만 자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렇지만 그런 일본에서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 이른바 ‘3세대 동거’다. 조부모와 부모, 자녀가 함께 사는 3세대 동거 가구가 2014년 기준으로 일본 전체 가구의 7% 가량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일본에서 3세대 동거는 손주 육아를 위한 목적이 첫째다. 덕분에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는 가구의 경우 출생자 수가 평균 2.09명으로, 그렇지 않은 가구(1.84)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한다.
지자체들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도쿄시, 지바시 등은 3대 동거가구에 가구당 최대 50만엔의 보조금을 지원해 준다. 개별기업들도 복지 차원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직원들에게 수개월의 출산휴가도 준다. ‘손주 돌봄 육아휴직제’다. 후쿠이현 같은 곳은 2015년부터 이런 기업에 장려금까지 지원해 준다.
◇ 즐거운 손주 돌봄은 건강 지킴이?
호주의 에디스 코완 대학 연구팀이 최근 70세 이상 500명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손주를 돌봐주며 사는 사람들이 다음 10년 동안 사망할 확률이 37%나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이 첫 조사 후 10년이 지난 뒤 재조사해 보니, 손주를 돌본 사람들의 절반 가량이 생존하고 있었다. 반면 손주를 돌보지 않은 조부모는 절반이 5년 이내에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긴 힘들지만 아마도 손주들의 재롱과 커가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에게 삶의 활력을 주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나치게 손주 양육에만 올인해 온 몸이 멍드는 경우만 아니라면, 손주 양육은 뉴 시니어의 삶에 원기소가 된다는 얘기다.
노은희 기자 selly215@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