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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죽음의 난장'도 잘 살기 위함이다

입력 2018-11-27 14:54 | 신문게재 2018-11-2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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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선 문화부장

최근 ‘죽음’을 소재로 한 콘텐츠들이 주목받고 있다. 죽음의 무한 루프에 빠진 진상 상사 이야기 KBS2 수목드라마 ‘죽어도 좋아’, 마지막 염을 앞둔 염쟁이의 서글픈 난장 ‘염쟁이 유씨’가 그렇다. 죽음을 앞두고 친구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는 베토벤을 소재로 한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죽음과 사랑에 빠진 황후의 위태로운 삶을 따르는 뮤지컬 ‘엘리자벳’, 죽기 1초 전에 시간여행을 떠나는 ‘광화문연가’가 그렇다. 영화와 국악극이 접목한 김태용 감독의 ‘꼭두’ 그리고 올해 시리즈 두편 모두가 1000만 영화에 등극한 ‘신과함께 1, 2’도 ‘죽음’을 소재로 한다.

시간여행으로 혹은 풍자와 해학으로 죽음을 되짚는가 하면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예술가에 빗댄다. 축제처럼 죽음을 맞이하고 망자를 보내는가 하면 사후 심판을 받는 과정을 통해 ‘죽음’을 그리고 ‘삶’을 얘기한다.

그렇게 죽음을 얘기하는 각 콘텐츠들은 ‘웰빙’에 이어 ‘웰다잉’을 추구하는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자신의 영정사진을 목도하고 유언장을 쓰고 묘비명을 고민하는 임종 체험이나 S생명사 CF 속 30년 후 모습으로 사진을 찍는 인생사진관, 가묘 만들기, 관 체험 등 역시 같은 맥락이다.



굳이 연명치료, 안락사, 존엄사 등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웰다잉’(Well-dying), 잘 죽어가기는 인생의 마지막이며 가장 중요한 단계인 죽음을 스스로 준비하는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에 ‘죽음’을 소재로 한 콘텐츠들이 전하는 공통적인 메시지 역시 “죽음과 삶은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죽음을 얘기하면서 삶을 얘기한다. 아이러니하지만 죽음은 삶과 맞닿아 있다. 잘 죽기 위해 잘 살아야하는지, 잘 살기 위해 ‘웰다잉’을 고민해야하는지 그 순서가 어떻든 결국 죽음은 삶에 달렸고 삶은 죽음으로 내달린다.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을 헐뜯고 밟고 올라서야 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점점 더 수위가 세지는 갑질 소식이 전해진다. 약자를 향한 묻지마 살인과 폭행, 상식을 넘어서는 정치공방, 타인의 ‘웰다잉’ 권리를 빼앗는 악플과 막말들, 여자친구 몰카 인증 릴레이를 이어가거나 페미니즘을 가장해 남성 혐오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커뮤니티들, 청산되지 못하고 켜켜이 쌓이는 부조리들, 노령화 사회, 1인가구의 증가, 무연고사회, 빈번한 고독사 등이 난무하는 이때에 죽음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에서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죽음을 예감하고 친구에게 마지막 편지를 쓴다. 그 내용은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회한으로 점철된다. 그를 연기하는 배우 정의욱은 “마지막 편지의 내용은 별로 안변할 듯하다. 대부분 ‘고마웠다. 미안하다. 후회한다’일 것”이라며 “이 극을 준비하면서 루드윅처럼 후회와 용미안함을 안남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털어놓는다.

어떤 극에서는 외친다. “악플 달지 마. 다 남아.” 또는 염원한다. “차곡차곡 쌓여 죽음이 되고 모든 변화는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 보태져서 이루어지는 것인디…죽는 게 뭐가 무서워. 잘들 살면 돼. 잘들 사셔야 돼.”

 

허미선 문화부장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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