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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꼰대를 위한 작은 변명

입력 2018-12-04 15:16 | 신문게재 2018-12-0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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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석 금융증권부 부국장1
조동석 금융증권부장

5060 중장년층은 그들의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아버지는 늘 하늘같은 존재였다. 아침 일찍 출근하시고, 밤늦게 귀가하셨다. 가까이 할 수 없었다. 가까이 하려 하지도 않았다.


5060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정을 책임졌다. 부모도 모셨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자녀에는 무관심했다. 사랑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일하시느라 관심을 가질 수조차 없었다. 그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지금 5060이 된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시대가 낳은 무관심.

5060의 부모는 우리나라 산업화의 주역이다. 1960년대 개발경제를 이끌었고, 일부는 1970년대 중동으로 넘어가 건설현장에서 피땀을 흘렸다. 그 결과 1980년대 들어 3저(低) 호황의 달콤한 열매를 맛봤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눈 앞에서 보며 조국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워했다.

이들의 자녀인 5060도 3저 호황의 혜택을 잠시나마 누렸다. 취업난은 거의 없었다. 5060은 또 1987년 민주항쟁의 주역이다. 1990년대에는 IT붐의 선봉대였다.



이처럼 5060과 그들의 부모 세대는 민주화와 산업화의 1등 공신이다. 그들은 그러나 1997년 찾아온 외환위기로 설자리를 잃는다. 한순간에 직장이 사라졌다. 거리가 집이었다.

이어 찾아온 벤처 붐도 한순간. 거품은 순식간에 꺼졌다. 소비진작을 위해 마구 발급받아 사용한 신용카드는 부메랑이 됐다. 거리에는 외환위기 노숙자와 플라스틱 버블 노숙자가 섞였다. 물론 5060 전부 다 그랬다는 건 아니지만, 그들이 달콤한 시절만 보낸 건 아니다.

5060은 당시 3040이었다. 한창 자식 키우던 때라 돈이 많이 필요하던 세대였다. 이후 20년 넘게 버텼다. 신성장동력 산업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구조적 문제다. 못나서, 버티고 싶어 그런 게 아니다.

일부 2030은 5060이 자신의 일자리를 침범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다. 직장에서 버티지 못한 사람들은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 100살까지 살아야 하니 닥치는대로 일해야 한다. 자식은 아직 품안에 있다.

한집 건너 치킨집과 커피숍, 편의점이 즐비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업종의 생존율은 초라하다. 이런 세태를 보면 세대 갈등이 누그러들지 모른다. 그들은 바로 2030의 부모이거나 삼촌, 고모·이모다.

버텨 살아남은 5060, 그들은 직장에서 꼰대다. 스펙 없지만 이를 뛰어넘는 ‘버티기’ 스펙으로 중무장했다. 요즘 아빠와 엄마가 아이 손잡고 놀러가는 모습에 5060은 익숙하지 못하다. 그들은, 그들의 부모와 살갑게 보낸 시간이 많지 않다.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근엄하신 부모 밑에서 자란 그들도 근엄해 하고 싶어 한다. 아버지 월급봉투는 거룩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5060, 월급봉투 만져본 적 없다. 용돈받아 쓴다. 5060도 가장이지만 그들의 아버지 같은 가장이 아니다. 다(多)스펙으로 무장한 2030에게 잔소리한다고 섭섭해 하지 말라.

무관심 속 어린 시절을 보낸 5060, 은퇴해서도 맘 편히 못쉬는 운명이다. 시대의 아픔도 가슴에 담고 있다. 요즘에는 SNS 못한다고 구박받는다. 그들도 아프다.

 

조동석 금융증권부장 dscho@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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