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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재산 미리 물려줬더니 '먹튀' 자식들… '증여 철회'는 안되나요

재산 증여·상속 후 빈곤 겪는 어르신 증가

입력 2019-01-17 07:00 | 신문게재 2019-01-1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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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

 

50대 아들과 70대 아버지 어머니가 재산을 놓고 싸우는 이른바 ‘노노(老老) 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최근에 한 해 제기되는 부양료 심판 청구 소송은 최대 300건에 이른다고 한다.

최근 10여 년 동안의 부양료 소송에서 원고의 평균 나이는 대략 77세, 피고 나이는 51세 정도로 나타났다.

소송의 절반 가량이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 장남을 대상으로 제기한 것 들이다. 선의로 재산을 물려주었는데 돌아온 것은 가족간 재산 다툼이니, 이런 불효도 없다. 때문에 일각에선 우리도 선진국처럼 ‘증여 철회’의 길을 터 주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 상속 후 급격히 가난해지는 어르신들

부양료 심판 가운데 부모가 재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준 뒤 어려움을 겪다 부양료를 내라며 소송 내는 사례가 3분의 1 가량에 이른다고 한다. 상속 혹은 증여 후 급격히 가난해 지는 이른바 ‘상속빈곤층’이 된 어르신들이 제기하는 소송이다.

주목할 점은 그 원고의 3분이 2가 어머니라는 점이다. 자식들에게 남겨줄 정도의 재산을 가진 남편이 먼저 사망하자 자신의 몫까지 모두 장남에게 물려주고 아들 내외의 보살핌을 받고자 했던 선의였건만, 장남이 당초 약속을 어기고 어머니를 방치하다 시피 해 소송을 당한 경우가 그 만큼 많다는 얘기다. 남편 보다 더 오래 사는 우리 어르신들의 고충이 그대로 묻어나는 부분이다.

최근 고령자 재혼이 늘고 있다는 점도 한 이유로 지적된다. 상속 혹은 증여 후 생계가 어려워진 새 ‘황혼 부부’가 가족들과 이해관계 갈등 끝에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제법 된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법적인 부부가 아닌 사실혼 관계를 택할 수 밖에 없어 법적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노부부와 자녀 간 갈등이 깊어지는 경우다. 새 삶을 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이라도 건지기 위해, 물려준 재산을 다시 돌려 받고 싶은 마음이 생길 법도 하다.  

 

효 2
재산을 들러싼 노노소송이 증가하면서 아랫 세대들이 어릴 때 부터 효의 가치를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 해외에서는 ‘증여 철회’도 법으로 보장

법 체계로 볼 때 가장 효자 나라는 프랑스다. 프랑스는 재산 상의 이유는 물론 부모 자식 간 기본 예절을 지키지 않을 경우 증여를 철회할 수 있는 근거를 법에 담았다. 증여자에 대한 부양을 거절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생명에 위험을 느끼게 하거나 학대 모욕의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도 이미 밝힌 증여 의사를 번복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고 있다. 독일도 비슷한 법 조항으로 ‘미래 불효’를 막고 있다. 일찍이 사회적 경제를 표방하고 복지 혜택을 부여한 나라지만, 상속이나 증여를 둘러싼 불효에 대해선 철저히 법으로 응징할 수 있도록 해 놓고 있다.

‘부모의 은혜에 보답 않는 중대한 책임이 있는 경우 증여를 철회할 수 있다’는 법 규정을 마련해 두고 있다. 독일의 영향을 받은 이웃나라 스위스도 비슷한 규정을 두고 있다. 친족법에 명기된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할 때’ 증여를 철회할 수 있도록 했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조차 건드리지 못하는 불효에 대한 단죄를 서구 선진국들이 더 철저히 지키고 있는 셈이다.


◇ 국내에선 증여 후 불효 막을 방법 요원

선의의 재산 물림 이후 자녀들이 변심해 버림받게 되는 부모들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도 독일처럼 관련 법을 고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하지만 현행법을 고치는 문제가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우리 민법 558조에는 ‘이미 이뤄진 증여행위는 취소할 수 없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때 이 조항이 국민의 재산권 등을 침해하는 규정이라며 헌법소원까지 제기된 적도 있었다. 당시가 2007년이었는데, 결론적으로 성사되지는 못했다. 의외로 사회적 저항이 컸다.

이를 인정할 경우 엉뚱한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 반대 논리의 핵심이었다. 이미 증여한 재산을 자녀가 팔았기라도 했을 경우 이를 인수한 누군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증여세 환급 문제 등 또 다른 법률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결국 현재로선 유일한 해법이 부양료 소송 밖에 없다는 얘기다. 자녀가 부양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일정 수준에 이를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그냥 소송을 내라는 식이다. 이후로도 국회에서 일부 의원들이 ‘현저하게 부당한 대우’를 받을 경우 증여 철회가 가능한 방향으로 입법화를 시도 했으나 그 때마다 반대 여론에 부딪혀 흐지부지 됐다.

효 4
연극 ‘불효자는 웁니다’의 한 장면.

 

◇ ‘효도 의무화법’은 불가능한 것일까

세대가 내려가면서 ‘효’에 대한 당위성이나 의무감이 많이 사라져 가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재산 증여 혹은 상속 때 필수적으로 효도 계약서를 작성케 해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 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물려준 재산을 두고 가족 간 갈등으로 소송이 붙더라도 사실 법원에서 인정한 부양액은 평균 월 50만원이 채 안된다는 게 법원의 통계다. 노부부는 물론 어르신 혼자 기초생활을 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금액이다. 이런 소모적 소송이 지속되지 않으려면 기본적으로 어릴 적부터 ‘효의 가치’를 제대로 가르치는 밥상머리 참교육이 절실하다.

안되면 유교의 나라 중국의 상하이의 이른바 ‘효도법’을 벤치마킹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사전 효도를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법은 2016년 5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연로한 부모를 찾아보지 않을 경우 신용등급을 낮추거나 주택 구입 등에 불이익을 주도록 하고 있다. 부모가 불효자식을 고소할 수도 있게 했다.

불효자를 단죄하는 것이 어렵다면 반대로 부모 부양을 잘 하는 자녀들에게 도 많은 혜택을 주는 것은 어떨까. 중국의 사례를 참고해 연로한 부모를 직접 모시는 자녀에게 나이를 불문하고 다양한 사회적 혜택을 주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금융기관에서 판매하는 효도 상품 정도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부모를 잘 모시는 사람들이 더 따뜻한 대접을 받고 실제 이득을 누릴 수 있도록 사회 문화를 바꿔 가야할 시점이다.

이원배·이은혜 기자 lwb21@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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