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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칼럼] 이념 논쟁 프레임의 반성과 당면과제

입력 2019-04-29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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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택
김우택(한림대 명예교수, 경제학)

경제사상사 강좌 첫 시간은 보통 학생들의 동기 부여를 위해 왜 사상사를 공부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이유를 맛깔나게 설명하는 인용문이 있다.

“경제학자와 정치 철학자들의 사상은 그것이 옳건 그르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갖는다. 사실 그것 외에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별로 없다. 어떤 지적인 영향으로부터도 완전히 자유롭다고 자부하는 현실적인 사람들도, 이미 고인이 된 경제학자의 정신적 노예인 것이 보통이다. 하늘의 계시를 듣는다는, 권좌에 않아 있는 미치광이들도 그들의 미친 생각을 수년 전 어떤 학구적 잡문에서 추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사상의 점진적인 침투에 비하면 기득권의 힘이 너무 과장되어 있다.”

이 인용문의 핵심 메시지는 장기적으로 현실 정치에서는 “사상이 기득권보다 더 영향력 있고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80년 전에 쓴, 이 내용을 전달하는 수사(修辭)들이 오늘의 우리 정치 현실을 어찌 그리 잘 보여주는지 놀랍다. 지금 국민들의 밤잠을 설치게 하는 경제 상황 악화의 주범인 소득주도 성장,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탈원전, 4대강 보 철거, 대기업 다스리는 수단으로 전락한 국민연금 등이 오래 전에 용도 폐기된 사회주의 이론에 미련을 못 버린 정신 나간 나름 ‘경제학자, 사회학자, 지식인, 예술가’ 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잡문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정책들이 아니던가.

이는 데이비드 흄 이래 위 인용문의 필자인 케인스에 이르기까지 하인리히 하이네, 빅토르 위고, J. S. 밀 등 수 많은 선현들이 되풀이 해 강조한 사상의 중요성을 간과한 채 ‘한강의 기적’이라는 과거의 경제성장 신화에 도취되어 있던 한국 보수우파의 안이함이 불러온 결과이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의 이념적 쟁점은 남북관계의 설정을 둘러싼 안보문제와 성장이냐 분배냐를 다투는 경제문제였다.

좌파들은 안보문제도 ‘반통일 대 통일’과 ‘전쟁이냐 평화냐’의 구도로 만들어 경제문제에서와 같이 가치 선점을 통해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동시에 이들은 상대를 도덕적으로 타락한 비윤리적 세력으로 몰았다. 성장 우선은 물질만능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자본주의로 매도했다. 반면 분배는 정의, 평등,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수단으로 포장했다. 보수우파들이 일찍이 이탈리아의 혁명가 마찌니(Mazzini)의 다음의 경구에 귀 기울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사상들은 세상과 거기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지배한다. 혁명은 이론이 실현되는 통로이다. 사람들이 무어라 하든, 물질적 이해관계가 혁명을 야기했던 적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물질적 이해관계로는 큰일을 도모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747’을 국가의 비전이라고 내세운 정치세력이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를 내건 세력에게 적폐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반성에서 얻은 교훈이 도움이 될까? 문제는 패인을 알았다고 그로부터 바로 좋은 해결책이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상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이 패인이라고 현 집권 세력의 사상에 초점을 맞춰보면, 그런 것이 있는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그들의 말과 행동이 다르기 때문에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 즉 어떤 나라를 만들려는 것인지조차 분명치 않다는 말이다.

이 같은 혼란은 그들의 행동이 집권 전과는 크게 달라져서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강령이나 집권 이전 야당 시절의 행동, 현 정권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노무현 정권의 정책들을 근거로 그 사상 스펙트럼을 평가한다면 남북화해에 환상을 갖고 있는 사회민주주의 정당 정도로 분류할 수 있지만, 집권 후 지난 2년간의 행적은 그 연속성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

표리부동하다면 강령이나 공식선언은 잊고 그 속마음을 알아내야 한다. 경제학의 현시선호이론을 원용해 추론해보자. 그들이 선택해 보여준 행동이 무엇인가? 이미 추진하고 있는 위에서 열거한 경제를 위기로 몰고 가는 정책들, 전 정권을 적폐로 몰아 경쟁자들 매장시키기, 공영방송 장악하고 언론통제하기에 요즘 새로이 내년 총선용으로 급조된 지역숙원사업의 타당성 조사 없이 예산배정하기, 국채 발행하면서 복지예산 늘리기, 또 제1야당의 동의 없이 패스트트랙으로 공수처를 설치하고 선거법을 바꾸려고 군소정당과 야합해 지금 국회에서 벌이고 있는 날치기 꼼수 등이다.

이들을 종합해보면 그 속마음은 보다 분명해진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선거에서 이겨 합법과 민주적 절차를 가장한 정권 연장이 단기 목표이고 그 성과를 발판으로 장기 독재정권을 실현하겠다는 것이 궁극적 목표가 아닐까 하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미 국회에 ‘독재타도’ 구호가 등장한 것을 보면, 제1야당 지도부도 이 같은 추론의 토대 위에서 투쟁을 시작한 듯하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지키는 일은 시간과의 싸움이 되었다. 집권여당의 숨겨진 목표인 공포정치 체제 구축의 일차 관문이 1년 앞으로 다가온 총선이기 때문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들의 총선 승리를 위한 정지작업 -경기규칙을 바꿔서라도 이겨보겠다는- 이 이미 시작되었음은 현재 진행형의 ‘동물국회’가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현 한국의 정치구도는 국민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초유의 판이어서 선거결과 예측도 그 어느 때보다 어렵다. 지금까지는 경합하는 정치세력들의 정체가 분명했고 그래서 전선도 뚜렷했지만, 현 집권세력의 정체가 모호하다 보니 일부 국민은 그 실체를 꿰뚫어 보지만, 일부는 언행일치에 헷갈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다른 일부는 정치에 무관심해 아직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듯하다. 관건은 내년 선거까지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그 정체를 알게 되느냐 이다.

사상의 중요성을 소홀히 여기다 정권을 빼앗긴 보수우파를 자처하는 제1야당이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헌법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좌파 포퓰리스트 현 정권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내로남불 정권’이라는 별명을 얻은 부정직한 저들의 민낯을 모든 국민들이 볼 수 있도록 하는 도덕적 접근도 효과적일 수 있지만,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딛고 새로이 태어난 개혁 정당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에 걸맞은 미래비전을 제시해 정권욕에 눈먼 좌파정권이 망쳐놓은 나라를 다시 바로 세울 수 있는 능력도 갖추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김우택(한림대 명예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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