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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돼지들’에 대한 진영 논란…최영미 시인 “위선에 진보 보수 따로 있나?”

[트렌드 Talk]

입력 2020-02-14 17:00 | 신문게재 2020-02-14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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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담회하는 최영미 시인
‘돼지들에게’ 개정증보판 발간한 최영미 시인(연합)

 

“모델이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시대의 오물을 뒤집어쓰고 그 시들을 썼다는 것.”

2017년 고은 시인을 ‘미투’(#Me Too) 고발했던 최영미 시인이 2005년 시집 ‘돼지들에게’를 개정증보판으로 출간하면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언급한 성폭력 사례들이 진보와 보수 ‘진영 논리’로 확산된 데 대해 SNS를 통해 다시 한번 핵심을 짚었다. “제 시들을 진영논리로 접근하지 마세요. 위선에 진보 보수 따로 있나요? 운동권 전체를 성추행 집단으로 몰지 마세요”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표제작 ‘돼지들에게’를 비롯해 ‘돼지의 본질’ ‘돼지의 변신’ 등 ‘돼지’ 관련 시들을 쓰도록 동기를 제공한 사람을 “2004년 즈음 만난 문화예술계 인사” “그 동네에서 한 자리를 하던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더불어 1987년 대통령선거 당시 진보진영 단일후보 캠프 내 성추행, 학생운동 당시의 사례들을 들며 사회 곳곳에 만연한 성폭력의 부당성을 설명했다.

“불러내고서 뭔가를 기대하는 듯한, 나한테 진주를 기대하는 듯한” 태도로 일관하는 “2004년 즈음 만난 문화예술계 인사”에게서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말라’는 성경구절을 떠올리며 ‘돼지’ 관련 시들을 썼다고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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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이 떠올렸다는 성경구절 중 ‘돼지’와 ‘진주’ 같은 일들은 문단 내 뿐 아니라 사회 곳곳 어디에서나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위계에 의한 성폭력은 문단 내에서 바로 잡아야할 부조리, 문학권력 등의 일부일 뿐이다. 지난 1월 수상거부사태, 2019년 대상 수상작가의 절필까지 부른 이상문학상의 부당한 저작권 계약이 그랬고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문학계 대필 및 표절 의혹들이 그렇다

최영미 시인은 최근 불거진 이상문학상 사태에 대해 “문단이 정말 깨기 힘든 곳인데, 여성 작가들이 용기를 내서 문제를 제기했다는 건 굉장히 고무적이었다. 2016년의 미투 고발이 없다면 가능했을까? 제가 약간의 균열을 냈구나 싶어 뿌듯했다”며 “젊은 작가들은 더 이상 나 같은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작품만으로 승부를 볼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고은 시인에 대한 미투 후 명예훼손으로 소송 당해 3년여의 재판을 끝내고 2005년 시집 ‘돼지들에게’에 ‘착한 여자의 역습’ ‘자격’ ‘ㅊ’의 개정증보판을 출간한 최영미 시인은 그렇게 또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최영미 시인의 항변처럼 ‘모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행한 부조리의 문제다. 학생운동시절 성폭력 피해 사실을 털어놓는 그에게 “네가 운동을 계속하려면 이것보다 더 심한 일도 참아야 한다”고 조언하는 여자 선배를 만들어낸 시스템과 사회 분위기의 문제다. 최영미 시인의 전언처럼 지금 필요한 건 피해자의 자격을 따지거나 15년 전 ‘돼지들에게’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핵심이 됐던 “왜 진주를 줬냐”는 꾸짖음이 아니다. “왜 진주를 달라고 하느냐” 되물어야 할 때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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