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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영원한 권력은 없다> 김종인

입력 2020-03-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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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가장 지상발령을 많이 받는 정치인’으로 꼽힌다. 정권을 가리지 않고 장관, 경제수석 등 요직을 두루 거친데다, 위중한 상황이 오면 여야 없이 앞다퉈 구원투수를 맡기려 한다. 저자는 좌우, 여야를 가리지 않고 오로지 ‘대한민국’만을 위한다는 소신을 강조한다. 그런 그가 이 책에서 “나는 국민들에게 두 번 사과해야 한다”고 적었다. 박근혜 정부가 태어나도록 했던 일, 문재인 정부가 태어날 수 있도록 한 일이 그것이란다. 저자는 “오늘도 역사 앞에 큰 죄를 짓고 살아가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왜 상생과 타협의 정치 드라마가 만들어지지 않는가”라며 울분을 토한다. 대통령이 되는 순간 모든 것을 가져가는 승자독식의 정치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박근혜의 비극’은 되풀이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런 그가 이번에 또다시 야당의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정치 전면에 섰다. 그가 앞으로 펼쳐가려는 정치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짐작해 보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추천한다.



* 정치인의 약속과 야욕 -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이 3당 합당을 할 때 이른바 ‘내각제 각서’ 받아 놓은 것에 대해 저자는 여러 차례 “믿지 말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그 사람들이 안 한다고 고개를 돌리면 그만인 것을 왜 그렇게 맹신하느냐”고 탓했다고 한다. 결국 김영삼 대통령이 그 합의를 깨버렸다.

* 후배 정치인에게 하고 싶은 말 - 저자는 할아버지(가인 김병로) 비서로 24세부터 정치권을 경험하면서 정치권의 유혹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할아버지 이름을 팔아 정치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며 거부했다고 한다. 실제로 할아버지 사망 직후 즉시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누구 계파의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하라”는 말을 다른 무엇보다 강조한다고 전한다.

* 교수를 잘 믿지 않았던 박정희 - 재임 기간 내내 교수들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지하경제 양성화 효과가 클 것이란 교수들의 강권에 못 이겨 전격실시했던 화폐개혁이 사실상 실패로 끝난 것을 계기로, 교수들은 이론만 알고 현실에 동떨어진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 ‘민심 이반’을 불러온 부가가치세 정책 - 박정희 정권은 증가하는 재정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부가세 세율을 16%까지 차근차근 인상하려는 계획을 세워두었다고 한다. 기본 세율을 12%로 하고 거기에 세금을 약간 깎아 10%, 반대로 약간 올려 16%까지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다 도입 초기 국민들의 반발을 의식해 일단은 최저 세율인 10%로 시작했던 것인데 40년 넘게 오늘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철저한 준비 없이 1977년 7월 시행했다가 이듬해 치러진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민심의 이반까지 나타났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 노동관계 관계법 손질 못한 게 가장 아쉬워 - 저자는 과거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대한민국을 위해 다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 자문한 뒤 “정책적인 측면에서 노동관계 법령과 제도를 바로 잡는 일, 사회적 대타헙을 이끌어 내는 일을 꼽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는 1970년대까지는 산업노조 체제로 되어 있었는데 1981년에 노동법 개정을 통해 오늘과 같은 기업노조 시스템으로 전환되었다. 저자는 이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아쉬워한다. 저자는 산업별 직능별 노조를 기본 골격으로 하면서 기업에는 노동조합이나 외부 노조의 지부가 존재하지 않으며 기업가와 화이트칼러, 블루칼라 3자가 모두 참여하는 노사협의체를 바람직한 모델로 생각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어떻게 내 생각과 똑같을 수 있냐며 기뻐하면서 주무장관과 협의해 그런 식으로 법을 만들라”고 지시했다고 전한다.

* 기업들이 자초한 기업노조 체제 - 당시 전경련은 산업노조가 아니라 기어노조 방식이 훨씬 기업에 유리할 것이라고 오판했다. 기업 노조 시스템으로 가도록 허락해 달라고 읍소했다. 기업이 자기 노조 정도는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한 것이다. 저자는 노조는 산업별 직능별로 ‘외부’에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기업노조 하에서는 단일 기업의 파업에 정부가 개입하는 일이 사실상 3자 개입으로 비쳐질 소지가 있고, 이를 빌미로 내부 시설을 부수거나 고공농성 파격 행위 서슴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었다고 한다. 노총도 대기업이 분담금을 많이 낼 수 밖에 없어 대기업 이익만 대변할 가능성 크다고 우려했다. 결국 노총은 자기 존재감을 과시하려다보니 정치적 투쟁이슈 찾는데만 골몰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도 했다. 비정규직 문제도 그래서 풀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만악의 근원이 기업 노조에 있다”고 말한다. 대기업 총수들도 노조 정도는 자기들이 구워삶을 수 있다고 자신했으나 결과는 지금 그대로다.

* 반대파를 옆에 두려고 한 전두환 -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사람을 한 두명씩 옆에 두려는 기질이 있었다고 저자는 전한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배짱과 아량 혹은 융통성을 보여주려는 듯한 일을 계속 반복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아량은 딱 그 정도였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막상 저자가 국회의원이 되어 자꾸 정부 입장에 맞서는 주장을 하자, 소속 상임위를 강제로 옮기게 해 손발을 묶어 버렸다고 비판한다.

* 민심 분노 덮으려는 ‘조급정책’의 결말은? - 1982년 5월에 장영자·이철희 부부가 어음사기 사건으로 구속되며 민심이 흉흉하자, 정부는 7월3일 기자회견 열어 금융실명제 실시 계획을 전격 발표했다. ‘사회정의’가 대의명분이었다. 권력을 앞세운 범죄 사건을 ‘제도의 문제’로 호도하고 본질을 흐린 전형적 정치 수법이라고 저자는 혹평했다. 최근 조국 법무장관의 잘못된 행적이 드러나 국민 실망과 분노가 하늘을 찌르자 이 정부도 그런 범죄 행위가 잘못된 입시제도 때문이라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 본질을 흐리려는 어설픈 노력을 하고 있다고 저자는 강하게 비판한다. 급기야 대입 전형 방법을 바꾸고 전국 자사고 폐지 등 몰상식한 방식까지 동원했다며 강하게 질타했다.

* 전두환보다 더 단순한 문재인? - 전두환은 새로운 무언가를 받아들일 때 불문곡직 앞으로만 나가려는 단순한 성향 있다고 전한다. 물가를 지켜야 한다며 예산을 동결하는 극단의 정책을 펴 1987년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재정수지 흑자까지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물가상승률이 2~3%대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었음에도 ‘이미 열 내린 사람에게 지독한 해열제를 처방한 꼴’이라고 비판한다. 저자는 “비슷한 유형의 대통령이 또다시 발견된다”며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해괴한’ 용어를 내건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한다. ‘예산을 동결하면 물가가 잡힌다’는 전두환과 ‘임금을 올리면 성장이 이뤄진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똑같은 단순함에 일침을 가한다. 오히려 전자가 논리성에 있어서는 근거가 있어 보인다며 소득주도성장론을 몰아세운다. 문 대통령 실명을 직접 연급하진 않았지만, 일자리 만든다며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으로 국가개정을 쏟아부어 자잘한 노인 일자리만 만들어내고 그런 통계수치를 근거로 실업률이 개선되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다고 혹평을 퍼붇는다.

* 노태우의 미국 국빈방문 뒷얘기 - 우리나라는 1991년에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쿠웨이트 해방을 위한 다국적군에 참여했다. 미국의 줄기찬 요구를 이겨내지 못했다. 하지만 수송기가 중동에 착륙한 이틀 후에 전쟁이 끝나버렸다. 우리는 비행기 연료 값 정도만 지불하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시회에 상당한 생색을 낸 셈이다. 그 해 7월 노태우 대통령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미국을 국빈방문하게 된 결정적 이유였다고 저자는 전한다.

* 당선 전과 후가 달랐던 노무현 - 노무현이 2001년 1월 해수부 장관 시절 “대통령이 되고 싶다. 도와달라”며 저자를 찾아왔다고 한다. 솔직하고 소탈해 보여, 이따금 만나 조언했고 노 전 대통령은 “당선되면 김종인 같은 분을 총리로 모시겠다”고 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서 처음 독대했을 때 처음 들은 이야기는 “저희랑 코드가 맞지 않으신 것 같더군요”였다고 한다. 저자를 친미 성향으로 파악하고 거리두기에 나섰던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노무현에게 반미 감정을 갖는 것은 좋은데 대한민국을 이끄는 지도자로서 절대 그것을 외부에 표출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자신을 당선시킨 정당을 버리고 새로운 정당을 만든 것이 갈등을 키웠고, 탄핵 등 우여곡절 끝에 총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차지하는 대반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저자는 노무현의 승부사 기질이라 평가하는 이 부분에 대해 “정치가 그런 아슬아슬한 게임장처럼 되어도 괜찮은 걸까” 의문을 제기한다.

* 김종인의 재벌관 - 재벌이란 남이 하는 일은 나도 모두 해야 한다는 탐욕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저자는 비판한다. 모 중공업 재벌이 백화점까지 하겠다고 해 재고를 요청했더니 “다른 재벌이 백화점에서 손을 떼면 나도 떼겠다”며 거부한 사례를 든다. 언제나 돈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는 사고방식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이들이 재벌이라고 혹평한다. ‘삼성’이라고 지칭은 안했으나 모 재벌기업이 이미 4개사나 밀집해 포화 상태인 자동차 시장에 진입하려 해 극구 말리자 “5000억원씩 10년 동안 적자를 내도 괜찮다”며 결국 관철시켰다고 한다. 이건희 회장으로 추정되는 그 총수는 가끔은 “나는 한번 하려고 하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한다”고 협박에 가까운 얘기도 했다고 전한다. 당시 대통령도 하도 로비가 심해지니 “그냥 그거 해주면 안될까?”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보기도 했다고 한다. KTX를 추진하려 하자 모 항공사 총수는 자꾸 대통령을 찾아가 딴지를 걸려 했다고 폭로한다.

* 북방정책의 숨은 공로자 ‘슐츠’ -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이 수교한 국가 15개국이다. 박정희 정부는 75개국과 수교해 경제 영토를 넓혔다. 노태우 정부는 26개국에 이른다. 저자와 친분 있던 슐츠 전 미국 국무장관을 메신조로 중국을 공략했고, 결국 대만을 포기하면서 까지 1992년 8월에 중국과 수교에 성공했다. 그해 12월에는 우리와 총칼을 겨뤘던 베트남과도 수교했다. 소련의 경우 미국에서 어렵게 노태우-고르바쵸크 정상 만남을 성사시켜 경협에 앞서 수교부터 성사시켰다.

* 역대 대통령들의 ‘전임자 콤플렉스’ - 우리 대통렬들은 모두 하나씩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바로 자신이 정치적 라이벌로 삼았던 대상자를 어떻게든 이기려 노력하는 콤플렉스라는 것이다. 김영삼의 경우 박정희가 그 대상이었다.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뛰어넘는 김영삼의 신경제 100일 계획이라는 무모한 계획도 그 때문이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 “사람을 잘못 봤다” 박근혜와의 악연 - 처음에는 배우려는 자세가 되어 있고 특히 이명박에게 당내 경선에서 패한 후 즉각 승복하고 선대위 고문까지 맡는 것을 보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가족과 친인척 문제가 없어, 일단 문제를 일으킬 조건 자체가 없는 사람으로 보고 돕기로 했다고 한다. 경제민주화에도 공감해 코드가 맞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단다. 하지만 나중에는 사전 상의도 없이 재벌 순환출자 정책에서 기존 출자분을 빼주는 등 불협화음이 노출되었다. ”박근혜 후보가 어디선가 로비를 받는 모양“이라고 방송 인터뷰에서 한 말로 사이는 더 벌어졌다고 한다. 대통령 당선 후 인수위가 꾸려지는 과정을 보면서 ”이 정부도 실패하겠구나“ 느꼈다고 한다. 박 후보가 무슨 공약을 했는지도 모르는 헌법재판소 소장 출신을 영입했고, 인수위에서 5대 국정목표를 발표했는데 경제민주화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 주변이 복잡해 걱정한 문재인 후보 -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처음 붙었을 때 박 후보가 최종적으로 이길 것이라고 저자는 확신했다고 한다. 문 후보가 박 후보보다 나아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가 지켜보니, 그를 에워싸고 있는 그룹이 어떤 사람들인지 삼척동자도 알 정도였다고 한다. 문 후보가 대통령 되면 결국 그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권력을 휘두르면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것이 뻔하다고 생각했단다. 뚜렷산 정치적 비전이나 소신도 없어 보이고 여러모로 나라를 이끌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직접 찾아와 ”박근혜 후보와 완전히 결별하고 나를 도와주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을 때 모욕감 까지 느껴 고사했다고 한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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