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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 오왠 “상상 속 사랑노래가 오히려 쉬웠어요”

입력 2020-07-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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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오왠 (사진제공=디에이치플레이엔터테인먼트)

싱어송라이터 오왠(26·본명 신진욱)의 EP ‘사랑했던 날부터 이별했던 날까지’는 사랑의 기승전결을 망라했다. 첫 곡 ‘러브유’가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다면 타이틀곡 ‘붙잡을 수가 없잖아’는 이별 후 떠나간 연인을 차마 붙잡지 못하는 심경을 노래했다. ‘같은 사람’에서는 격해진 이별의 감정을 토로하고 마지막곡 ‘론리’(Lonely)에서는 이별의 후유증으로 사랑을 거부하는 아픔을 담았다.

정작 수록곡의 작사·작곡을 맡은 오왠은 20살 이후로 연애를 멀리한 채 살아왔다. 오왠은 “예전에는 내 경험을 토대로 곡을 썼는데 이제 경험담이 떨어졌다”며 “내가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관점으로 곡을 썼다”고 말했다.

“계속 똑같은 얘기로 쳇바퀴 돌 듯 곡을 쓰는 게 지겨웠어요. 어쨌든 곡의 화자는 저 자신이니 경험과는 다른 곡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죠.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지만 제 얘기가 아니다보니 처절함이 줄어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는 팬들이 늘었어요.”



혈기왕성한 27살 청년, 그것도 자유분방한 이미지가 강한 싱어송라이터지만 오왠은 자기관리가 철저하다. 이성에게 다가가는 것도 조심스럽고 술자리에 ‘여사친’(친구관계인 여성을 일컫는 신조어)이 있으면 일찍 집에 들어간다. 그나마 술도 22살에 끊었다. 마지막 연애는 7년 전인 20살이다. 그 이후 이성과 진지한 만남을 갖지 않았다.

“아직 연애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어요. 이성에게 다가가는 게 조심스럽더라고요. 연애보다 혼자 이어폰을 끼고 강아지와 산책하거나 볼링을 치는 게 좋아요. 외롭지 않고 편하고 재밌던데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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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오왠 (사진제공=디에이치플레이엔터테인먼트)

 

데뷔 전 부산에서 버스킹을 할 때도 함께 사진을 찍자는 뭇여성들의 요청을 거절하기 바빴다. 그는 “음악을 하고 싶어 버스킹을 시작한건데 마치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어 음악을 하는 듯한 인상을 남기기 싫었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꿈을 이룬 김해 청년 “출발선 다르니 포기하지 말라”
 

경남 김해가 고향인 오왠은 어린 시절부터 무대 위의 가수를 동경했다. 흡사 연사가 웅변하는 것 같지만 리듬과 멜로디를 탄 가수의 음악은 웅변과는 다른 카리스마였다. 

 

하지만 김해는 대중문화와 거리가 먼 조용한 도시였다. 가수 세븐이 신어 서울에서 난리가 났던 바퀴달린 운동화 ‘힐리스’도 1년 6개월 뒤 김해에 상륙했고 그 흔한 패스트푸드점이나 대형마트도 2010년 이후 생겨나기 시작했다. 소년 오왠은 고교시절 짝꿍이 들려주는 그린데이와 국카스텐, 데이브레이크, 검정치마의 음악을 들으며 홀로 꿈을 키워나갔다.

철도 공무원이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동양대학교 철도운전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학교보다 창고에 고이 모셔둔 어머니의 기타를 독학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결국 1년만에 자퇴한 뒤 군에 자원입대했다.

2014년, 부산 동래구 먹자골목 앞 한 공원에서 첫 버스킹을 시작했다. 대도시 부산의 기세에 주눅 든 청년은 모여든 인파를 차마 보지 못하고 “처음이라서...”라며 우물댔다. 그럼에도 음색이 좋다는 시민들의 칭찬에 용기를 얻었다. 동래에서 버스커들의 성지인 해운대로 진출했다. 빈 자리가 없어 구석 모래사장에 터를 잡았다. 나중에는 휑한 모래사장에서 노래 부르는 게 그만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버스킹을 시작하고 6개월이 지나면서 스스로 확신이 생겼다. 더 이상 모래사장이 아니라 무대에서 밴드와 함께 노래하고 싶다는 소망이 자라났다. 평소 팬이었던 빌리어코스티 소속사 디에이치플레이엔터테인먼트에 데모 파일을 보낸 그는 가능성을 인정받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가수의 길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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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오왠 (사진제공=디에이치플레이엔터테인먼트)

“대학 입학 이후로 인생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은 게 처음이었어요. 더욱이 제 스스로 추진한 게 이뤄지니 절반의 성공을 한 것 같았죠. 하하”

물론 서울생활이 녹록한 것만은 아니었다. 경남권에서 생활한 탓에 길눈이 어두워 한강공원은 무조건 여의도에서만 가는 줄 알았다. 신촌과 홍대를 구분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오왠은 “마치 ‘응답하라1994’ 주인공처럼 서울 시내를 헤맸다”고 웃었다.   

 

오왠은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감사해 한다. 코로나19가 발병 전까지 유수의 페스티벌 무대에 섰고 단독 콘서트도 개최하며 팬들을 만났다.지난해 SBS ‘더 팬’을 통해 대중적인 인지도도 높아졌다. 정규 1집 ‘ROOM O’을 발표했고 ‘동백꽃 필 무렵’을 비롯한 인기 드라마의 OST에도 참여했다. 그는 자신처럼 기회를 얻지 못한 지방의 후배들에게 “사람마다 출발선이 다르니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고 했다.

예명인 오왠은 ‘오른쪽, 왼쪽’이란 뜻이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말자는 뜻으로 스스로 지었다. 오왠은 “예전에는 가수로 목표가 거창했지만 이제는 지금의 목소리가 잘 유지되서오랜 시간 노래를 했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자기관리 끝판왕’다운 청년의 대답이었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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