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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 “나 그리고 내 음악의 거울” 베토벤을 향한 오마주 ‘때로는 자유롭게, 때로는 추구하며’ 조은화 작곡가

입력 2020-08-2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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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화 작곡가
롯데문화재단의 기획축제 ‘클래식 레볼루션 2020’에서 연주될 첼로 콘체르토 ‘때로는 자유롭게, 때로는 추구하며’의 조은화 작곡가(사진제공=롯데문화재단)

 

“사실 작곡가들은 늘 혼자 집에서 일하기 때문에 자가격리를 하나 안하나 별반 다르지는 않아요.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것과 나가고 싶지 않은 차이뿐이죠.”

롯데문화재단의 기획축제 ‘클래식 레볼루션 2020’을 위해 입국한 작곡가 조은화 독일 한스아이슬러 음대 교수는 내한에 따른 2주간의 자가격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을 떠난 지 20년이나 됐고 2주 동안 집에 있기는 처음이었어요. 생활소음이 독일보다 많아서 (사람들의) 귀가 많이 피곤하겠구나 싶었죠. 24시간을 혼자서 보내면서 뉴스를 듣곤 했는데 어느 순간에는 그 마저도 귀에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베토벤부터 베를린필하모닉 디지털,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트로트 등 음악을 들었죠. 이 시간을 같이 보내줄 음악이 필요하겠구나를 뼈저리게 느꼈어요.”

그리곤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에 대해서는 “저에겐 항상 거울 같은 존재”라며 “제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라고 표현했다.  

 

조은화
롯데문화재단의 기획축제 ‘클래식 레볼루션 2020’에서 연주될 첼로 콘체르토 ‘때로는 자유롭게, 때로는 추구하며’의 조은화 작곡가(사진제공=롯데문화재단)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면 내가 이것까지 이해하고 있구나 싶거든요. 베토벤의 음악은 항상 새로워요. 매년 더 좋아지는 것 같아요. 이번 자가격리 중 TV를 많이 보면서 ‘역주행’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배웠어요. 베토벤은 저에게 매년 ‘역주행’하는 음악가죠.”


◇베토벤 ‘첼로 소나타’ 5번에서 시작된 질문 ‘때로는 자유롭게, 때로는 추구하며’

“2009년 독일문화원 50주년 기념 음악회를 위해 위촉받아 초연된 작품이에요. 그때도 포펜 선생님의 지휘로 연주됐는데 이번에도 함께 하게 됐어요.”

30일 예술감독 크리스토프 포펜(Christoph Poppen)이 이끄는 서울튜티챔버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될 그의 첼로 협주곡 ‘때로는 자유롭게, 때로는 추구하며’(Tantot Libre, Tantot Recherch)는 2009년 시작된 연작 ‘차이의 향유’(Jouissance de la Difference)의 6번째 작품이다.

“올 초 작품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공식석상에서 전곡을 들어봤어요. 지난 2009년부터의 시간이 들려지는 것 같았죠. 2009년에는 저런 어린 생각을 했구나, 내가 배운 것만 썼구나, 지금 이 순간에는 내가 생각하는 걸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구나…. 저의 10년을 듣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반갑고 당시 일이 생각나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어요.”

스스로가 “제 10년 생활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시리즈”라고 표현하는 연작 중 ‘때로는 자유롭게, 때로는 추구하며’는 그의 전언처럼 “어느 날 우연히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5번을 듣고 제 상상과는 전혀 다른 악보를 확인하는 순간 그리고 읽히지 않는 주제에 대한 ‘이건 뭐지’라는 물음에서 시작한 작품”이다.

“제가 베토벤과 대화를 시작한, 저에겐 아주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죠. 작곡가들은 음악을 들으면서 습관적으로 악보를 떠올리곤 해요. 그날도 습관적으로 베토벤의 후기작인 ‘첼로 소나타 5번’을 들으며 분석을 시작했죠.”

조은화
롯데문화재단의 기획축제 ‘클래식 레볼루션 2020’에서 연주될 첼로 콘체르토 ‘때로는 자유롭게, 때로는 추구하며’의 조은화 작곡가(사진제공=롯데문화재단)
그가 기억하는 10년 전 “유난히 작곡 작업에 집중이 안되는 날”이면 늘 그랬듯 피아노를 연주하던 그런 날이었다.

“제1주제가 나오고 제2주제가 나와야하는데 들리질 않았어요. 절망했고 굉장히 당황했죠. 정박에서 시작하는지 못갖춘마디로 시작하는지도 정확하게 들리질 않았어요. 다양한 연주가들의 연주를 들었는데도 여전히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악보를 구해 확인했죠. 제 상상과는 전혀 다른 악보더라고요.”

그리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강약 중강약으로 표현되는 액센트가 이렇게나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음을, 우리가 가장 심플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베토벤이 어떻게 활용해 작곡했는지를 깨닫고 감탄했다”고 털어놓았다.

“베토벤 후기 작품인 첼로 소나타 마지막 악장을 포함해 함머 클라비어 소나타, 현악 사중주 ‘대푸가’ 등에는 푸가 기법이 많이 사용돼요. 첼로 소나타 마지막에 푸가가 나오는 특별하면서도 (고정된 형식에서) 탈피하는 점이 재미있었죠. 푸가는 제1주제가 있고 에피소드가 있고 제2주제와 에피소드가 반복되면서 발전하거든요. 쉽게 얘기하자면 질문과 응답의 반복이죠. 내용은 같지만 조성이 다른, 일종의 변형된 반복이다 보니 들을 때마다 신선하게 들렸고 ‘반복’에 대해 고민하게 됐죠.”

그의 전언처럼 “모네의 ‘수련’ 연작은 매 작품이 특별한 느낌을 주듯 음악도 그런 식으로 연작을 쓰면 어떨까 싶어” 시작된 ‘차이의 향유’ 연작 중 유일하게 부제가 있는 ‘때로는 자유롭게, 때로는 추구하며’는 ‘대푸가’의 부제를 따온 것이다.

“주제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해 자유롭게 해보기도 하고 특별하게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 보기도 했거든요. 제 작업방식과 유사한 ‘대푸가’의 부제를 인용했죠.”


◇최근 관심사…소리의 흐름과 공간 그리고 함머플루겔, 국악기

조은화
롯데문화재단의 기획축제 ‘클래식 레볼루션 2020’에서 연주될 첼로 콘체르토 ‘때로는 자유롭게, 때로는 추구하며’의 조은화 작곡가(사진제공=롯데문화재단)

 

30일 연주될 ‘때로는 자유롭게, 때로는 추구하며’에 대해 조은화 작곡가는 “이번 페스트벌을 위해 다시 편곡했다”며 “작곡가에게 몇 년 지난 작품을 다시 편곡하는 건 좀 어려운 작업”이라고 말을 보탰다.

“지금 제 관심사는 전혀 다른 곳에 있는데 당시 관심사를 쫓아야 하거든요. 이번 편곡을 위해 고민하던 때에 코로나19가 시작됐어요. 집에서 작업을 하면서 유튜브를 통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죠. 하지만 관객들이 유튜브에만 만족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도 들었어요. 현장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뭐가 있을까 고민했고 ‘연주되는 공간’과 ‘일회성’이라는 데 초점을 맞췄죠.” 

 

조은화
롯데문화재단의 기획축제 ‘클래식 레볼루션 2020’에서 연주될 첼로 콘체르토 ‘때로는 자유롭게, 때로는 추구하며’의 조은화 작곡가(사진제공=롯데문화재단)
이어 “초연 당시 음악 애호가인 지인의 ‘쓰나미 같다’던 감상평을 떠올렸다”며 “제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공간의 효과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공간에서의 울림에 포커스를 맞춰 봤어요. 전부 다 쓰나미로 고쳐보자 했죠. 한 사람의 연주자를 포인트 삼아 소리가 옮겨가다 보면 홀 전체를 다 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편곡 당시에는 대편성이었지만 (코로나19로) 규모가 좀 줄어서 그 효과가 날지 모르겠어요. 언젠가는 제가 원했던, 홀을 타고 다니면서 내는 소리와 울림이 관객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어 “소리가 어떻게 공간을 흐르는가에 대해 좀더 깊이 들어가 보고 싶다”는 조은화 작곡가의 또 다른 관심사는 베토벤 중, 후기에 주로 사용했던 건반 악기 ‘함머플뤼겔’(Hammerflugeln)과 국악이다.

“얼마 전 함머플뤼겔 작품 작곡을 위촉 받아서 많이 듣고 고음악 악보들을 찾아보고 있어요. 그 시대 소리가 어땠는지, 고악기를 지금 연주할 때는 어떤 걸 제시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고민 중이죠. 더불어 제가 항상 관심을 두고 있는 건 국악기예요. 사실 저에게 편한 언어, 테크닉은 서양악기죠. 하지만 한국 전통악기의 잠재력이 크다는 걸 항상 느끼고 있어요. 제가 앞으로 가져가야 할 것은 국악 관련 작업이 아닌가 생각해요.”

이어 조은화 작곡가는 “(서양의) 고음악을 하면서 한국 음악과 유사점이 많다는 걸 발견했다”며 “결국 사람에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에 공통적인 것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 국악기에 관심이 많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좀 다른 점도 있죠. 서양음악은 기본적으로 기억을 바탕으로 구성하는 형식미가 있어요. 하지만 한국음악은 그런 게 없는데도 시간이 잘 가요. 1시간이 넘는 산조도 시간 가는 줄을 모르죠. 제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설명이 안되지만 그냥 좋아요.”


◇스스로에게 정직한가 묻는 삶

조은화
롯데문화재단의 기획축제 ‘클래식 레볼루션 2020’에서 연주될 첼로 콘체르토 ‘때로는 자유롭게, 때로는 추구하며’의 조은화 작곡가(사진제공=롯데문화재단)

 

“클래식은 현장에서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매체를 거쳐 듣는 음악도 물론 좋죠. 하지만 들려주는 것만 듣게 돼요. 오페라의 경우 무대 전체를 보고 싶지만 (영상에서) 클로즈업을 보여주면 그 외 성악가들이 뭘 하는지는 볼 수가 없잖아요.”

이어 “시각적인 것 뿐 아니라 소리나 음악 역시 마찬가지”라며 “너무 작은 소리는 키우고 너무 큰 소리는 깎아서 평균치를 들려준다”고 부연했다. 그리곤 “녹음기술이 발전해 현장 느낌을 그대로 줄 수 있다고는 하지만 클래식에서 중요한 것은 공간의 울림”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어느 한 악장을 들을 때는 유튜브나 디지털 매체도 괜찮아요. 하지만 작품 전체가 주는 느낌은 받을 수가 없더라고요.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침묵’이에요. 소리가 나지 않을 때의 긴장감, 큰 소리의 떨림은 전달되지 않거든요. 코로나 19가 빨리 종식돼서 움직이는 울림을 같이 들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곤 “작곡가가 작곡가로 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털어놓았다. 그는 “연주할 수 있는 기회는 적고 열심히 곡을 써도 작품의 가치를 논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 시대와 더불어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하는, 지금 살아 있는 작곡가의 작업에도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작곡에만 몰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음악이 주가 되지 않은, 외적인 것들이 음악을 침범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토로한 조은화 작곡가는 “작곡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여전히 답을 찾고 있다”고 답했다.

“음악가로서는 좋은 작품을 쓰고 싶어요. ‘좋은 작품은 뭐냐’고 물으신다면 여전히 모르겠어요. 다만 항상 ‘스스로에게 정직한가’라는 물음을 던져요. 그런 질문을 하고 사는, 작곡가로서의 삶이 나쁘지 않아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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