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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

입력 2020-09-01 14:04 | 신문게재 2020-09-0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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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석 금융증권부장

노무현은 문재인을 친구라고 했다.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린 노무현의 서거를 알린 사람은 바로 문재인이다. 그래서 두 전현 대통령을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다.

노무현 정권 탄생 과정은 그야말로 드라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에 발탁된 노무현은 5공 청문회 스타였다. 그러면서 YS 3당 합당의 부당함을 외친 인물이기도 하다. 한국정치에서 주군을 배신하기란 쉽지 않은데도 말이다.

그런 그는 바닥에서 다시 시작했다. 민주당 출신으로 영남선거에 뛰어들었다. 바보 노무현이라고 불리는 이유 중 하나다. 2002년, 노무현은 당내 세력도 없고 대중 인지도마저 떨어지는데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 나선다. 대반전이 일어난다. 당내 경선에서 광주 민심이 노무현으로 쏠리자 이후 승승장구하며 민주당 대선 후보를 거머쥔다. 노풍이 몰아쳤다.



그래도 여권의 이회창 대세론은 견고했다. 대선 전 노무현 지지율이 급락하자 후보 교체론이 고개를 들었다. 정몽준은 2002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노무현을 뛰어넘는 야권 후보로 우뚝 섰다. 3자 구도는 야권의 필패. 야권은 노무현과 정몽준의 단일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방식은 여론조사였다. 인지도가 낮은 노무현에게 절대 불리했다. 노무현은 본선에 진출할 수 없다는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면서도 흔쾌히 수락했다. 결과는 승리였다. 승부사 기질을 발휘했다.

정몽준이 선거 바로 전날 노무현 지지를 철회하며 위기를 맞았으나, 노풍은 선거 당일 거세게 불었다. 이해찬도 유인태도 훗날 이렇게 회상했다.

그의 청와대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으로 민심이 흉흉해진 가운데 화물연대 파업으로 노동계와 각이 세워졌고, 한총련은 굴욕 외교를 비난하며 5·18 23돌을 맞아 광주국립묘지를 찾은 노무현의 앞길을 기습 점거했다. 검찰개혁은 수포로 돌아갔다. 노무현이 불법 대선 자금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가시밭길을 걸었다. 탄핵과 수도 이전 불발도 찾아왔다.

이런 노무현은 ‘FTA는 이념 문제가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라고 주장한데 이어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다. 우리 국민의 복지 청사진을 밝히면서 재원 확보는 대통령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가야할 길이기에 국민에게 양해를 구했다. 여론을 주도했다. 이념보다 실리였다.

노무현이 친구라고 했던 문재인 정권은 지금 어떤가. 더욱이 그는 친노와 박근혜 탄핵을 등에 업었다. 노무현과 시작이 다르다. 그런데 실리보다 이념이다. 친구 노무현의 승부사 기질은 안보인다. 조국백서와 조국흑서, 시무7조와 백성1조, 추미애와 윤석열, 다주택자·1주택자·무주택자, 북중러와 한미일, 반포와 청주, 이분법 뿐이다.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는 노무현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노무현과 의견이 다르면 거리로 나와 노무현을 욕했다. 하지만 문빠(문재인의 열성 팬)는 다르다. 대통령이 뭐라고 하든 ‘우리 달님’하며 떠받들지 반대할 줄 모른다(기생충 학자 서민 단국대 교수). 노무현은 ‘사람사는 세상’을 꿈꿨다. 문재인은 ‘사람이 먼저다’고 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다르게 느껴질까.

 

조동석 금융증권부장 dscho@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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